사랑의 철학

사랑은 무한하게 실재할 수 있을까?
글 입력 2024.06.15 23:3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young-couple-holding-hands-walking-away-together.jpg

 

 

영원한 것은 있는가? 영원은 철학의 측면에서 초월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그 자체로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인 것이다. 현 인류에서 소멸에 이르지 않는 생명체는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한 형태가 있는 물체의 경우에도 언제까지나 처음의 모습으로 온전하게 보존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감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감정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특히 인간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감정 중 하나이며 철학의 오랜 탐구 주제이기도 한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영원의 유사어로 ‘무한’을 제시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 무한은 ‘제한이나 한계가 없음’을 뜻하는데, 여기서 한계의 의미를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해석에 따라 사랑이 지속되는 유효기간에서의 한계로 볼 수도 있지만 사랑의 정도, 즉 한 사람이 체험할 수 있는 감정의 양에 한계가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관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사랑을 인격화하여 그 감정의 생명이 영원할 수 있는지의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1.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의 무한성의 여부를 언급하기 전에 먼저 사랑이 무엇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해석이 일관적일 수 없는 주제인 만큼 전승되고 있는 개념도 다양하다. 먼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떤 사람이나 존재, 사물이나 대상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 표현한다.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으로 정의하기도 하는데, 후술할 것이지만 이는 가장 보편적이고 저명한 사랑의 형태일 뿐 사실은 그보다 훨씬 광활한 범위의 사랑들이 존재한다.

 

철학자들은 사랑을 어떻게 규정했을까? 기원전 로마 시인인 오비디우스는 ‘사랑스러움’이라는 감정을 온순함, 순종, 연민 등과 같은 것으로 정의했다. 칸트는 사랑에 빠지는 행위가 비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만들며 위험한 맹목으로 이끄는 심란하고, 우매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칼 야스퍼스는 사랑을 ‘황홀한 마음’이라고 표현하며 사랑에 빠지는 행위 자체가 가치롭다고 했다.

 

현대의 사랑도 과거의 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누군가를 소중히 하며 이해하는 모든 긍정적인 감정을 사랑이라고 통칭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현대에서는 소수 집단만이 행하는 사랑도 인정하며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랑의 대상은 연인, 가족, 친구, 동물과 사물, 공간 등 제한 없이 다양하며 이는 문학과 음악, 영화나 드라마 등의 다양한 문화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표현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랑과 그 의미에 관한 방대한 연구 및 표현에서 우리는 사랑이 철학적 가치가 있는 주제이며,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감정임을 알 수 있다.


 

 

2. 사랑과 무한성


 

무한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그 사랑은 어떻게 무한할 수 있었을까?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이 굳건한 신뢰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일까? 대상들의 끈기가 대단했기 때문일까? 서론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소멸하지 않는 생명체는 없는데, 그들이 무한하게 사랑했다는 증명은 누구로부터 얻을 수 있는가? 사랑은 기본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어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대상들 중 대표적인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을 임의의 모델로 설정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두 사람이 있다. 둘은 각자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변하지 않고 상대를 사랑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그 사실을 스스로 확신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두 사람은 본인들의 생 내에서는 종말 없는 사랑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한하다’는 정의에 걸맞게, 주체들이 소멸한 뒤에도 그들이 나눴던 사랑의 감정은 계속 남아 있어야 사랑의 무한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타당해진다. 아무리 깊고 굳건한 사랑을 영혼의 소멸 직전까지 유지했다고 한들,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는 감정을 당사자들이 아닌 타자가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대이기에 기계를 통해 사람의 감정이나 마음을 재현하는 것도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인간의 감정을 합리화하여 출력할 위험성이 있기에 순수하고 주관적인 감정인 사랑의 재현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신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정말 논리적으로 타당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무한한 사랑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3. 니체의 사랑철학


 

철학자 니체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가장 바람직한 사랑을 우정이라고 칭했다. 니체가 말한 우리가 배워야 할 사랑은 축약하여 ‘아직 오지 않은 곳,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에 대한 사랑이다. 물론 니체가 말한 먼 곳에 대한 사랑은 미래에도 철학과 인생의 과정을 계속해서 실현하고 진화시키라는 의미겠지만, 나는 아직 도달하지 않은 곳을 사랑의 종말의 지점이라고 재해석하며 니체의 입장에 동의하고 싶다. 니체의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미래의 어떠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도 사랑의 새로운 형태가 된다. 사랑이 소멸되더라도 영원한 사랑을 이루고자 했던 간절한 바람과 마음은 또 다른 사랑으로 지금의 감정에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사랑을 시작한 이상 환경과 마음의 변화에 의해서든, 육체의 소멸에 의해서든 감정의 최후는 찾아오게 된다. 보이지 않는 형태로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가정하여도, 상식적으로는 확인될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끝마치게 될 그 먼 지점까지 사랑으로 품는다면 결국 삶의 마지막까지 사랑에 파묻히는 것이니, ‘무한하게 존재하는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어도 ‘충만한 사랑을 누린 삶’의 수식어는 충분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니체는 긍정의 철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득하고 낯선 천상의 행복과 은총과 은혜를 꿈꾸며 학수고대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더 살고 싶어 하며, 영원히 그렇게 살고 싶은 것처럼 그렇게 살 것!”

 

 

사랑이 무한하게 존재할 수는 없으나, 사랑의 지속을 믿는 믿음과 지향은 우리의 현재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며, 차고 넘치는 결말과 마주하게 할 것이다.

 

사랑은 보편적이면서도 무겁고 복잡하여 정의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매일 비슷한 삶을 반복하며 낭만을 잃어가는 일상 속에서도 현대인들이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을 살게 하는 존재가 바로 사랑이다. 그 가치를 단순한 문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지금을 산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삶의 종말을 두려워한다. 인생이 마무리되면 소중히 지켜오던 사랑 역시 끝맺음을 겪는다. 이 세상이 품고 있는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끝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허무와 절망에 무엇보다 가깝게 맞닿아 있는 지점이 바로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의 마지막까지 유한한 것들을 무한한 마음가짐으로 사랑해 볼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이자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세계적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로고테라피’라는 개념을 통해 끝으로 상징되는 ‘절망’을 사랑할 방법을 설파했다. 그는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어떤 극악한 비극에서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이 의미가 나에게는 ‘현재의 사랑과 미래에 대한 소망이 가져다주는 평생의 행복’으로 다가온다. 지금을 사랑하고, 다가올 언젠가를 사랑한다면 결국 삶 전체는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다. 사랑으로 충만하게 채워진 삶은 분명히 행복하다. 이 순간의 행복을 충실히 누리며,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직 도달하지 않은’ 어느 곳까지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이 곧 무한에 가까운 사랑의 삶이 될 것이다. 또한 존재하는 시대의 관점에서는 유한할지언정, 우리의 삶 하나를 작은 세상으로 볼 때 그 안에서는 분명히 영원했던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와 환경을 타지 않는,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이자 개인마다의 고유한 감정인 사랑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 삶을 밝히는 빛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한다.

 

 

[박시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