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운 게 이거뿐이라, '정말 배움의 탓인가?' [영화]

영화 '미드 90'
글 입력 2024.06.1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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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버릇이라 할 만큼 '배운 게 이거뿐이라' 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실수를 저질러놓곤 아직 배운 게 그뿐이라는 둥 모면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배운 걸 토대로 시험을 치르면 됐던 한때와 달리, 배우지 않고도 알아야 한다는 일명 '알잘딱깔센'이 중요시 되는 여러 집단에서의 생활이 내 딴에는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설사 배웠다 한들 그 지식을 행동으로 옮길 시간조차 잘 주지 않기도 해 시험도 이런 시험이 없다고 생각했다. 군대에서도 첫 아르바이트에서도 내 머리는 밖으로는 진땀을 빼고 안으로는 물음표를 띄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 졌다지만, 분명 그것은 머리의 제대로 된 이해보다는 몸의 기억력이 비교적 뛰어난 덕분이다.

 

시간의 흐름은 날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배운 것을 실수할 때면 배웠지만 배우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배운 게 이거뿐이라 그랬다고 말하면, 그래도 혼나기보단 간단한 핀잔으로 넘어갈 수 있어서였을까. 나름대로의 사정이었던 말은 어느덧 핑계를 넘어 완전한 거짓말로 변질돼 있었다. 불행히도 거짓말에 탁월한 재능이 있던 나는 자연스레 그 방식을 발전해 나갔으며, 이는 곧 남탓이 될 때도 있었다. 치사한 내 자신이 싫어져 고쳐 먹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내탓도, 남탓도 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겨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기도 하다. 요즘 유행하는 '원영적 사고' 같은 긍정적 사고 방식이 큰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지만, 부정적인 감성을 긍정적인 이성이 이겨내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어린 나이임에도 꿋꿋이 제 일을 하는 이들은 역시 대단하다.

 

좋아하는 것에 한해서라면 배운 게 이거뿐인 순간이 즐거울 때도 있다. 힙합 음악을 유독 좋아하던 나는 몇 달 전부터 밴드 음악이나 락에 관심이 생겨 전에는 잘 안 듣던 가수들에게 푹 빠져있는데, '오아시스' 같은 전설적인 밴드도 대단하긴 하지만, 나는 '한로로'란 이름을 말하고 싶다. 그녀의 음악은 시간을 멈추는 듯한 힘이 있어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온전히 내 세계에 몰입하기에 최고다. 패션 또한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맞추거나 따라가는 재미가 있어 항상 많은 지식을 배우려 한다.

 

영화를 감상하는 취미도 이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그저 재밌기만 했던 영화가 언젠가부터 탐스러운 음식의 껍질을 까듯이 그 의도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마주한 감독의 진심은 내 마음을 녹여낼 것만 같다. 이보다 더 큰 감흥을 내게 줄 수 있다면 아마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뿐이리라.

 

영화는 배우지 않았다는 거짓말도 배운 게 이거뿐이라는 핑계나 사정도 들어주지 않는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처럼 영화도 매 분 매 초마다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헥헥거리며 그것을 따라갈 뿐이지만, 관객이 앞서 가게 두는 영화는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긴 러닝타임의 마라톤을 끝냈을 때 오는 감정을 감히 추측컨대, 이는 좋은 영화의 엔딩을 볼 때 다가오는 성취감이나 안도감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만드는 배우나 감독은 더 할 테다. 그래서일까. '포드 v 페라리 (2019)', '드라이브 마이 카 (2021)', '스프린터 (2023)'와 같이 실제로 내내 달리는 영화들이 좋은 작품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본 글에서 소개해야만 하는 영화는 따로 있다. '미드 90 (2019)'이라는 영화는 '배운 게 이거뿐이라' 라는 말을 섣불리 제 이유로 삼기 힘들게 한다. 주인공 스티비는 아빠가 없고 엄마조차 집안을 잘 신경쓰지 못해 형이 자신을 때려도 형만을 따르는 소년이다. 어느 날,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놀 줄 아는 형들에게 반하게 되고, 이들을 따라다니며 끝내 형이라는 세상에 반항한다. 그렇지만 보더 무리와 어울리는 과정에서 음주, 섹스, 흡연 등 나이대에 맞지 않는 행동들을 배우게 되는데, 관객 입장에서는 스티비의 한 줄기 빛이 보더 무리임을 아는 지라 어울리지 말라고도 할 수 없어 난처하다. 또한 보더 무리가 나쁜 애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마음을 동요시킨다.

 

무리의 대장인 레이는 어른들의 세상에서 보드 타는 양아치라고 욕 먹지만, 프로 보더가 되기 위해 보드를 착실히 배우는 중이다. 스티비가 엄마에게 무리와의 어울림을 금지 당해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레이는 자신과 무리 일원들의 삶을 얘기해주며, '다들 너보다 힘든 일을 겪은 이들'이라고 위로까지 해준다. 그의 위로가 괜찮다, 이겨내자 같은 덕담이 아닌 더한 고통을 말해주는 방식인 연유는 그 또한 배운 것이라곤 고통뿐이기에 그렇다. 그의 삶이 여러 유흥으로 이뤄진 까닭도 마찬가지일 테다.

 

영화의 최대 전환점도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스티비의 형이 스티비를 때렸던 구실은 이혼 후 외간 남자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엄마와 자란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 느끼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였다. 영화 말미에 다친 스티비를 걱정하는 형의 모습과 보드로 무척 행복해 하는 스티비 무리의 모습은 편견 어린 시선을 가진, 날 포함한 어른들이야말로 못 배운 사람은 아닐지 고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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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게 이 만큼이나 되는 '미드 90'은 그 동안의 내 버릇을 송두리채 무너뜨릴 만큼 강력한 간절함과 선함으로 무장한 영화다. 무거운 주제를 어둡게만 풀어내지 않고 90년대 힙합을 배경 음악으로 쓰거나 다양한 유머를 구사하는 등의 형태로 영화의 밸런스 또한 잡아내 나 또한 울고 웃었다. 역시 배운 게 하도 많다. 배운 게 이거뿐이라 이렇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꿈을 향한 진심은 언젠가부터 아무렴 어때 따위의 태도로 일관하던 날 마주하게 해 엉덩이를 떼기 힘들었다. 그래서 소개하고 싶었다. 모쪼록 여러분도 이 유망한 작품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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