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질문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6.15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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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미지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요즘 유행하는 영상처럼 누군가 길에서 지나가던 나를 붙잡고 물어본다면 오후 2시의 겨울 바닷가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렇다면 만약 선천적 시각장애인에게 아름다운 이미지에 대한 정의를 묻는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소피 칼은 이를 그저 상상에 그치지 않고 행동에 옮겼다.


I met people who were born blind. Who had never seen. I asked them what their image of beauty was.

"나는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지닌 채 태어난 사람들을 만났다. 전혀 본 적 없는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 아름다움에 관한 그들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물었다."

—Sophie Calle

 

한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For me, the most beautiful thing is this painting. My brother-in-law said to me: 'It's a boat. If you like, I'll give it to you.' I had never seen boats in a picture. It has a slightly raised surface so I can feel three masts and mainsail. I often touch in the evening. On Wednesdays there are programs about the sea. I listen to the TV and I took at that boat.

The sea must be beautiful too. They tell me it is blue and green and that when the sun reflects in it, it hurts your eyes. It must be painful to look at."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 그림이다. 나의 매형은 나에게 말했다: '이건 보트야. 네가 좋다면, 이걸 너에게 줄게.' 난 이 사진 속 보트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표면이 살짝 일어나있어 나는 세 돛대와 주돛을 느낄 수 있다. 난 가끔 저녁에 이 그림을 만지곤 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바다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나는 TV를 듣고 그 배를 탔다.

바다도 물론 아름다울 것이다. 그들은 나에게 바다는 푸른색이고, 초록색이며 바다에 햇빛이 반사되면 눈이 아프다고 말했다. 분명히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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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이 말을 한 남자의 이름도, 출신도 그 무엇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노란 돛이 달린 배가 돋보이는 이미지는 이 남자가 말하는 그림이 이것이라는 듯 그 남자의 초상과 텍스트 밑에 놓여 있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런 설명 없이 자연스레 그 남자와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를 연결해 받아들인다. 소피 칼이 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소피 칼은 1953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79년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자취를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일상을 카메라로 추적한 《베니스에서의 추적 Suite Vénitienne》을 발표하면서 그는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베니스의 추적 Suite Vénitienne》(1979)을 비롯한 《호텔 L’Hotel》(1981), 《주소록 The Address》등이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작품의 시작이 '우연히'라는 점이다. 칼은 《베니스의 추적 Suite Vénitienne》(1979)에서 '우연히' 길에서 만난 한 남자를 추적하고, 《호텔 L’Hotel》(1981)에서는 호텔 객실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며 '우연히' 그곳에서 머물다 간 손님을 기록하고, 《주소록 The Address》(1983)에서는 '우연히' 길에서 주운 주소록을 가지고 그 주소록의 주인에 대해 탐문한다.


여기서 우리는 칼의 일련의 작품들이 가지는 공통점을 하나 더 알 수 있는데, 바로 대부분의 작품이 탐정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은 기록의 대상과 직접 관계를 맺지 않고 그 대상을 둘러싼 것을 탐문해 나가면서 존재를 구성하려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는 항상 기록의 대상을 '미행'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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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사진집 《블라인드 The Blind》는 미행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블라인드 The Blind》는 1986년부터 2010년까지 약 25년 간 소피 칼이 시각장애인들과 협업한 총 세 개의 프로젝트로 이뤄진 사진집이다. 비록 《블라인드 The Blind》는 다른 그의 작품과 다른 점도 있으나, 계기는 어느 면에서 비슷하다. 칼은 자신이 블라인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이처럼 설명한다.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들이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려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길을 건널 때 한 시각장애인이 다른 이에게 '아, 어제 아름다운 영화를 봤어요.'하고 말하는 걸 들어서였다."

 

《블라인드 The Blind》의 첫 시리즈, <시각장애인 The Blind>은 스물세 명의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에게 아름다운 이미지에 대한 정의를 물으면서 시작됐다. 소피 칼은 인터뷰한 사람의 초상을 찍고, 그들이 아름답다고 말한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거나 수집했다. 앞의 한 시각장애인 남자의 대답과 그 이미지가 첫 번째 작업에 해당한다. 그 남자의 경우,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림을 제시하며 그가 생각하는 그림 속 보트와 바다를 설명한다. 하지만 칼이 제시한 이미지가 시각장애인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이미지와 일치하는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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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두 번째 연작 <블라인드 컬러 Blind Color>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한 가지 색만 사용해 그린 모노크롬 회화에 대해 설명한 텍스트를 주고 실제 그들이 작품을 보았을 때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한 작업이다. 이 연작의 첫 사진은 회색 모노크롬 회화를 마주한 칼의 친구이자 시각장애인인 바시르로 시작한다. 회색 모노크롬 회화의 설명을 들은 바시르는 “그 회색은 내가 일상적으로 보는 화면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노크롬 회화의 회색과 바시르의 회색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알지 못한다.


《블라인드 The Blind》의 마지막 시리즈, <마지막 이미지 The Last Image>는 첫 작업으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이뤄진다. 소피 칼은 이스탄불에서 만난 열세 명의 후천적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이미지를 묘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묘사를 바탕으로 칼은 그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이미지를 상상해 수집한다. 하지만 이 이미지 또한 소피 칼이 그들이 보았을 법한 이미지를 상상해 낸 것이므로, 우리는 이것이 시각장애인들의 기억 속 이미지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모른다.


세 가지 작업의 공통점은 시각장애인들이 진술한 이미지와 소피 칼이 수집하거나 촬영한 이미지는 동일할 수 없고, 얼마나 다른지 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불일치를 통해 관객은 ‘보여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시각장애인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노크롬 회화를 보고 생각하는, 마지막으로 본 이미지를 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떤 설명도 없이 자연스레 시각장애인의 초상과 텍스트, 그리고 이미지를 연결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처럼 칼은 사진과 텍스트라는 두 가지 매체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간극을 표현해 왔다. 그리고 독자들은 사진과 텍스트를 통해 그 간극을 깨닫는다. 그 간극은 곧 시각장애인들이 동질적인 것이 아닌, 이질적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 간극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마다 같은 질문에도 기억하고 진술하는 이미지가 너무나 다르고, 칼이 진술에 따라 수집한 이미지조차 시각장애인들 각자가 가진 이미지와 동일한지 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책 속의 모델들은 비록 시각장애인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모두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을 ‘시각장애인’이라고 부르면서 그 당연한 불일치를, 이질적임을,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살아간다.


《블라인드 The Blind》 작업을 통해 소피 칼은 그가 꾸준히 스스로에게, 또 관객에게 질문해왔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간극을 다시 한 번 질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블라인드 The Blind》 작업만큼은 그의 다른 작업과 달리 미행이 아닌 동행이어야 했다. 그는 그간 기록의 대상을 몰래 쫓고, 사진을 찍고, 대상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만이 대상을 ‘봤고’, 대상은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블라인드 The Blind》는 자신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다가가 만나야만 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야만 하는 작업이었다. 이는 곧 기록의 대상에게 더 이상 ‘익명’이 아닌 자신을 드러내며 두 가지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그 나름의 새로운 방식이었을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나아가 소피 칼은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일 수 있도록 하면서 다시 한 번 그 간극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무엇이 보이고 무엇을 볼 수 없는지. 정말 볼 수 없는 건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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