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실을 위한 현실 너머 [미술/전시]

글 입력 2024.06.1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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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든 단어를 가볍게 내뱉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뜻을 명백하게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예술은 무엇이고, 정치란 무엇이며, 대중이란 무엇인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접한 물리적인 어떤 것은 눈, 귀, 입 등을 통해 감각으로 들어오고 뇌에서 이 감각 중 중요한 정보를 고르고 해석해 '아, 이 감각은 이런 의미인가봐'라는 명백해지지 않은 사고의 상태인 '관념'을 내놓는다. 이러한 관념들은 사람 수만큼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간의 각기 다른 관념들을 정리해 명백해진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를 '개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개념조차도 사회적으로 합의한 것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에 특정 대상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양말은 무엇인가? 사전에 의하면, 즉 사회적으로 정한 개념에 의하면 양말은 맨발에 신도록 실이나 섬유로 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우리가 양말이 양말임을 알아보는 방법은 양말과 다른 모습의 어떤 것을 보았을 때 이와 구분하며 '아, 이렇게 생긴 섬유로 짠 걸 양말이라고 부르는구나'를 여러 번 깨닫는 것이다. 즉 우리는 a와 b가 있을 때 a와 b를 감각으로 각각 받아들이고, 해석하여 서로 다른 점을 통해 a의 특성을 알게 된다. 즉 a와 b를 구분하게 만드는 것은 a가 b로부터 가지는 배타적인 특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b가 없으면 a를 똑바로 알지 못한다. a라는 개념이 가진 속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b가 필요하나, 우리는 너무나 보편적으로 퍼진 개념에 대해서는 한 번도 그 개념의 'b'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한다. 아마 대표적인 예시가 '현실'일 것이다. 현실은 무엇인가? 현실의 'b'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조차 생각해 본 적 없고, 지금 이 질문을 받았다면 떠오르는 'b'도 우리에겐 없다. 이때 우리에게 현실의 'b'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술은 존재해 왔다. 더 나아가, 이 'b'를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을 예술가라 부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전, 앞서 언급한 a와 b의 구분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연관된 서양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에 해당한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서양은 오랜 시간 대비되는 어떤 두 개념(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의 우열을 정하고 이를 강조하는 역사를 이뤄왔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나 주창했던 이성에 대비되는 개념인 욕망, 본능을 이성적으로 표현할 수 있던 유일한 창구가 예술이었다. 따라서 서구 전반을 지배하는 이원론적 개념을 무조건 긍정해서는 안 되지만 미술사의 중심이 서양이다 보니 불가피하게 전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둘째로 이원론적 세계관 하에서 미술의 역할은 자리를 잡았고,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특정 개념의 'b'를 제시하는 이 관념 자체도 이원론적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서양 중심적 사유에 매몰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사회에 널리 알려져 'a'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예술가들은 'b'를 보여주며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한다. 한 예시로 18세기까지만 해도 회화란 현실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카메라가 발명되고, 튜브물감이 발명되면서 예술가들은 기존 '회화'의 'b'를 제시한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자연의 순간적 형태, 색채를 묘사하며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생각하는 회화란 무엇인지 묻는 것이, 우리가 아는 인상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해 얘기하는 붕 뜬 것이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무엇보다 빠르게 그 변화에 질문을 던진다. 인상주의 이후 1차 대전이란 사건에도 예술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세계 대전이란 잔혹했던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알던 서구 문명의 물질주의, 사회, 도덕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고 그들은 기존의 서구 문명의 물질주의, 사회, 도덕 개념에 대해 그들의 'b'를 제시했다. 그들은 취리히, 뉴욕, 베를린 등지에서 일어났고 공통으로 제시된 'b'는 기성의 모든 사회적, 도덕적 속박으로부터 인간의 정신을 해방하고 개인의 근원적 욕구에 충실해지는 것이었다. 이들은 곧 다다이스트였다. 다다이스트들은 우연성의 원리, 즉흥성, 허무주의적 정신 등을 중시하며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알던 문명이란 건 뭐였는지, 합리는, 기계문명은 뭐였는지. 그들이 내건 'b'를 통해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던 문명, 합리성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다이스트 중 파리 다다는 또 다른 ‘b’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앙드레 브르통을 필두로 한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등은 다다와 연결해 비(非)합리를 넘어 비이성의 영역이 무의식 세계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앙드레 브르통은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며 사회의 합리적 논리에 반기를 들고 인간의 욕망과 사랑이 자유롭게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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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브르통, 초현실주의 선언, 1924

 

 

이러한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와 대립하는 'b'라고 할 수 있다. 관습을 바탕으로 이성과 도덕을 지키고, 욕망과 사랑을 절제하며 살아가는 현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현실 너머'를 바라보며 현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무엇인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또는 후퇴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가지며 어쩌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될 수도 있다. 또는 '현실 너머'에서 현실에서는 억압되었던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을 마음껏 표출하고 도덕적, 위선적 콤플렉스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처럼 초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의 'b'로 현실을 넘어선, 초(超)현실을 제시한다.

 

정리하자면, 초현실주의란 단지 비현실적인, 환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예술 활동이 아니라 어쩌면 어떤 사조보다 현실을 위했던 사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이론에 의하면 사회의 합리적 논리에 반기를 들고 인간 의식의 혁명을 이루고자 했지만, 오히려 그들은 비현실적인, 비이성적인 예술을 통해 누구보다 현실이 올바르게 서길 원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초현실'이란 것은 단지 현실의 초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이성과 비이성,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함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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