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목소리 - 섬:1933~2019

글 입력 2024.06.17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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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희망은 보여져야 한다. 희망은 느껴져야 한다. 희망은 실현 가능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

 

음악극 「섬:1933~2019」은 희망을 감각하는 작품이다. 우란문화재단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었던 음악극 「섬:1933~2019」이 이번에 재연으로 돌아왔다. 전태일 열사의 일생을 다룬 1탄 「태일」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실존 인물의 목소리’를, 2탄 「섬:1933~2019」에서는 우리 주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렇기에 해결해야 할 편견과 차별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목소리 프로젝트'는 이 세상에 꼭 남아야 할 목소리를 공연이라는 매체를 통해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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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시대를 교차하여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백수선과 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리고 고지선은 모두 다른 시대를 걸어온 인물이다 그러나 이 네 인물은 각자의 시대 속에서 숱한 차별과 아픔을 마주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백수선부터 고지선까지, 아득한 1933년부터 현대의 2019년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기간으로 따지면 한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세월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이 작품이 각각의 시대를, 다른 삶을 살아온 네 명의 사람들을 조명하고 있는 것일지 의문이 들 것이다. 세 개의 시대와 시점이 교차하는 말하기 방식은 자칫하면 관객이 공연의 흐름을 놓치기 쉽다. 관객들의 혼란스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세 시대를 말해야만 했던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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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이 서로 다른 세 개의 시점과 배경의 교차를 통해 더욱 깊은 의미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억압과 차별은 늘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처음 우리는 이를 감각하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했으나 이는 갈수록 무뎌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무뎌짐을 계속해서 반복해 온 결과, 그 고통에 점점 더 무감각해지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타인의 고통에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현대 시대에 더 이상 고통 받는 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말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이는 고통 받는 이들에게 커다란 폭력으로 다가갔다. 「섬: 1933~2019」은 이 같은 고통이 아주 오래전에 나타났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백수선과 마리안느, 마가렛의 장면을 보던 관객들은 고지선의 이야기가 나오자 순간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최첨단 과학기술이 발달한 2024년에 1933년과 1966년은 다소 먼 옛날처럼 느껴지기에 안전거리를 둔 채 관람이 가능하다. 여기서 '안전거리’란, ‘나와는 관련이 없는 허구의 내용이니 연극을 보는 관객의 위치에서만 공감하자'는 마인드이다. 사실 이러한 마인드는 며칠 전 공연을 대하는 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공연은 어디까지나 창작이고 허구의 영역이니 아무리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그 순간, 그 극장 안에서만 적당히 인물에게 이입하고 슬퍼하게 되는 것만 같았다. 극장 안을 벗어나면 나에게 남은 건 그저 ‘집에 돌아가서 저녁 뭐 먹지’, ‘내일 아침에 일어나려면 오늘 몇 시에 자야 되지’ 따위의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달랐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각 인물의 고통은 국립정동극장 무대 위에서만 일어났다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고통이며, 우리가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서도 안 되는 현실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부정하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이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게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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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절대 이 작품이 마냥 어둡고 슬프다고만 말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 작품이 슬프기만 한 극이냐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인생에는 슬픔과 비극만 연달아 일어나지 않는다.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소록도 사람들과 고지선의 삶에도 슬픔만큼이나 강한 기쁨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다. 누군가는 섬 안에서 사랑을 나누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녀와의 소중한 시간을 공유한다.


늦은 저녁, 오랜만에 덕수궁 돌담길을 느지막이 걸었다. 늘 그렇듯 돌담길 옆에는 주황빛의 조명이 줄지어 있었고 연인이나 가족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에 남기기 바빠보였다. 여름의 밤공기가 가슴 안으로 들이치는 순간, 나는 백수선을 생각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 소록도 사람들을 천천히 떠올렸다. 그리고 고지선의 일생을 조심스럽게 머금었다. 덕수궁의 밤 풍경을 봤을 때 왠지 모르게 나는 그들의 지난 삶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앞으로 살면서 종종 이 작품 속 인물들이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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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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