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간과 야생동물, 명(命) [영화]

영화 ‘생츄어리’ 시사회 리뷰
글 입력 2024.06.14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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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야생동물 생츄어리를 꿈꾸며


 

상처 입은 고라니, 포획되어 비명을 지르는 고라니, 죽은 고라니들. 영화는 고라니들을 구조하고 사체를 수습하는 야생동물 보호협회 활동가들의 현장에서 시작된다. 죽은 고라니들은 이동칸에 담기고, 담기면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뼈가 드러나보이는 깊은 상처가 드러난다. 미안,이라고 작게 말하는 활동가의 목소리와 함께.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과정 속에서 관객은 사람에 의해 밀려나고 상처 입은 동물과 그런 동물들을 구조하고 수습하는 사람들을 본다.


야생 동물을 대하면서 어디까지 개입할지, 인간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명확하게 정해진 답이 없다. 영화는 인간적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의 여정을 따라간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에는 '어라, 우리나라에 생츄어리가 몇 있지 않나?'하며 새벽이 생츄어리나 제주의 말 생츄어리를 떠올렸지만 알고 보니 야생동물 생츄어리는 하나도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야생동물 생츄어리가 비 야생동물 생츄어리와 왜 다르고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생츄어리를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은 현실적인 부동산 관련 문제부터 윤리적 문제까지 두루 얽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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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의 어려운 선택과 고민들, 그리고 추모


 

윤리적 문제와 가장 복잡하게 얽힌 사안은 역시 안락사였다. 안락사 대상이 되는 동물들은 사람을 너무 좋아하거나 크게 다쳐서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거나 고통이 너무나 크다고 여겨지는 동물들이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동물들뿐만이 아니라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동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생츄어리를 꿈꾸는 사람들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동물이 고통을 느끼기 전에 안락사를 할지 혹은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뒤에 안락사를 할지 무엇이 동물을 위한 것인지 고민한다. 밥을 먹는 게, 식욕이 있는 게 생을 향한 의지인지 아닌지 아니면 고통의 크기가 더욱 큰 건지, 동물이나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에게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과연 떠나보내고 작별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얼마큼인지 인간으로서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다. 의료진은 안락사를 진행하면서 동물의 심장이 뛰는 걸 확인하고 안락사 약물을 주입하고 이후에 멈춘 심장을 다시 확인한다. 감정 이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로지 의학적으로만 보려고 노력했다는 수의사의 인터뷰 이후에 안락사 대상이 된 곰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는 장면이 있었다. 40 몇 년을 지켜봐온 곰의 죽음을 기리며 쓴 편지에는 당연하게도 의학이 아닌 사람의 마음이 있었다. 의학적으로만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 수백수천 번 있겠구나, 무어라 정리되지 않는 씁쓸함이 성큼 다가왔다. 


청주동물원은 사람들의 구경거리를 위한 동물원이 아닌 동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최대한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전문가들과 고민하며 생츄어리를 지향하는 동물원이다. 이런 청주동물원 한편에는 세상을 떠난 동물들을 기리는 장소가 있다. 생전 가졌던 이름과 종, 그리고 세상을 떠난 날짜가 적힌 현판이 벽에 걸려 있다. 결코 쉽지 않았을 선택과 선택 이후에도 기억하며 그들의 살았던 흔적을 남기는 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하나의 생명으로서 야생동물들을 기리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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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밀려난 야생동물들의 삶과 죽음,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


 

농약을 사용해서 고의적 죽임을 당한 오리들, 파리 끈끈이에 달라붙어 다친 참새, 밭에서 실에 얽혀 다친 철새 등 영화는 죽음의 모습을 계속해서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가 거의 끝나 갈 때쯤에는 야생동물보호소에서 보살핌을 받고 회복되어 훨훨 날아가고 달려나가는 동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야생동물 보호단체에서는 죽음도 삶도 너무나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를 통해 그 과정을 조금이나마 함께 보았다. 살과 뼈, 피로 이루어진 동물들의 사체를 보며 인간의 죽음을 마주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자유롭게 날아가고 달리는 야생동물을 보면서는 덩달아 해방감을 느꼈다. 동물을 셀 때 '마리'가 아닌  목숨이라는 의미의 '명'을 쓰자는 움직임이 있다는 게 기억났고, 목숨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장면들이었다.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나오는 등장 동물들의 이름과 등록 번호가 나온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생츄어리의 가능성과 그 과정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과 고민으로 뭉쳐 있는지 보았다. 

 

 

[안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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