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본 미술관 방문기 - 쇼토 미술관

유리의 천재, 에밀 갈레展
글 입력 2024.06.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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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20주년 에밀 갈레展

Emile Galle: The Inspirational Glass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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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다.

 

도쿄에서 열리고 있는 유수의 전시회 중에 쇼토 미술관의 에밀 갈레를 선택한 이유는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 여기가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전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같은 맥락에서 고야의 단독전도 후보에 올랐지만 에밀 갈레의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낯선 것을 마주하기로 했다.


쇼토 미술관은 시부야의 구립미술관으로 도쿄의 대표적인 부촌인 쇼토에 위치해있다. 번잡한 시부야역 주변을 벗어나 조용하고 깔끔한 주택가에 진입했으면 미술관까지는 금방이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저택이 많아서 한남동의 미술관이나 평창동의 문학관 가는 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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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천재, 에밀 갈레 서거 120주년 전시


에밀 갈레는 19세기 말 유럽에서 꽃피운 예술 사조인 '아르누보'의 중심에 있던 공예가이다. 갈레는 화초, 곤충 등을 모티브로 한 아름다운 곡선과 선명한 색채가 특징인 유리 작품을 다수 제작해 유리 공예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우아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갈레의 작품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아 많은 컬렉터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갈레의 서거 12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그동안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개인 소장가의 귀중한 작품을 중심으로 갈레의 발자취를 소개하고자 한다. 예술은 물론 문학, 식물, 광물 등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유리공예가, 아트디렉터, 식물학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친 갈레. 다양한 작업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열정과 신념을 잃지 않았던 갈레의 삶은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전시는 총 세가지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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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색다른 디자인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신예 공예가 등장

 

갈레의 초기 작품은 중세, 르네상스, 로코코 양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과 중국 등 동양 문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 뿐만 아니라 갈레만의 세계가 담긴 도자기까지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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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촬영할 수 있었던 작품은 제1장에 등장하는 고양이 작품 시리즈 중 하나였다. 그 중 이 꽃무늬 고양이는 초록색 유리 눈과 곱슬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이 고양이 시리즈도 어떤 기법을 가지고 어떤 사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간략한 소개가 있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본어로 적혀있었기에 그 정도만 기억하고 있다. 고양이 외에도 꽃무늬의 퍼그들도 있었는데 모든 작품을 다 보고 나니 도자기 동물 작품은 어떤 의미로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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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깊이를 더하는 사색의 조형

 

19세기 프랑스에서 탄생한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아 '이야기하는 유리'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셰익스피어와 보들레르 등의 시문 일부를 유리에 새겨 넣었다. 이를 위해 갈레는 회화적인 표현이 가능한 그라뷔르 조각 기법을 추구하게 되며, 이와 동시에 식물학에 대한 조예도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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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e, "GEOLOGIA", 1889

 

 

두 번째 섹션에서는 섬세하게 제작된 유리 작품이 등장한다.

 

특히 에밀 갈레를 생각하면 떠오를 만한,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유리 작품이 전시되었다. 다양한 기법으로 제작된 수십 점의 유리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살면서 본 화병보다 이날 본 화병이 더 많았다고 할 정도로 다채로웠다.

 

유리에 이렇게 다양한 색과 기법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지 않게 깨닫게 되었다. 전시된 백여 점의 작품 중 다수를 차지하는 화병을 보다보니 나의 취향도 발견하게 되었다. 섬세함이 돋보이는 투명한 유리 작품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제3장: 꽃피는 아르누보 양식

 

1890년 경 유럽 각지에서 아르누보의 유행이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었다. 갈레도 1890년대 들어서며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강화하여 식물과 곤충을 더욱 정교하게 표현하게 된다. 말년에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램프 제작에 몰두하였다. 이러한 갈레의 작품은 그의 사후에도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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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e, Sago cycad, 199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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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p, Swallow, 1902-1904

 

 

이미 한차례 감탄하면서 관람했는데 갈레의 작품은 점점 더 섬세해졌다.

 

자연적인 모티브를 구현한 화병도 굉장했지만 램프를 보지 않고 갈레를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램프 작품이 강렬했다. 모든 램프가 인상적이라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점이 아쉬웠는데 공식 홈페이지에 이미지가 제공된 작품이 하나 있어 다행이었다.

 

유리를 밝히는 전구의 빛을 석양처럼 표현하여 이국의 경치를 만들었다. 전구의 주황빛을 말을 탄 기사의 후광처럼 재현한 작품도 있었다. 유리는 소재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갈레는 그 한계를 넓혀가며 작품활동을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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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술관이라 영문 설명은 전시 소개와 작가 약력 정도에 그쳤다. 작품 기법은 상세하게 일본어로 설명되었는데 촬영금지라 직원이 돌아다니며 안내하고 있어서 이미지 번역을 하면서 관람하는 게 괜히 눈치가 보여서 빠르게 포기하고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했다. 멋대로 알아서 받아들이는 이런 관람이 오래간만이라 새로웠다.


그렇다고 눈으로 본 것만 가지고 돌아올 수 없어서 유리 공예 기법을 적어놓은 걸 그대로 적어서 돌아와서 다시 찾아봤다. 인상적이었던 건 우선 그리자이유 기법으로 회색조의 색채를 써서 유리면에 그림을 그려 구워 붙인 것, 그리고 오버레이(혹은 커버) 기법으로 색이 다른 유리를 얇게 겹쳐서 만드는 가공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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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토 미술관은 건축가 시라이 세이이치가 설계했는데 중앙 통창과 지하 분수와 중앙 다리라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다. 내부의 나선형 계단까지 포함하여 건물 자체가 미술관이 주는 엄숙함을 담고 있었다.

 

조용하게 관람하고 난 뒤 분수를 잠깐 구경하고 돌아나와 미술관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커다란 문과 창문이 없는 화강암 벽, 그리고 둥근 지붕이 이곳이 비일상적인 공간이라는 걸 확실하게 만든다.

 

혼잡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살짝 벗어나면 마주할 수 있는 고유의 분위기. 아마 이래서 이 미술관이 더 마음에 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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