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초보 감독의 자아 찾기 – 영화 ‘다우렌의 결혼’

다큐에 진실을 담는다는 패기
글 입력 2024.06.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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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물 아니고 메타픽션


 

 

입봉을 꿈꾸며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조연출 ‘승주’.

 

하지만 현지의 고려인 감독 ‘유라’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예정된 결혼식을 놓치게 되며 다큐멘터리 촬영에 문제가 생긴다.

 

한국에서는 연출을 해서라도 다큐를 완성해 오라는 압박을 가하는데…

 

이때 ‘승주’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돕던 ‘유라’ 감독의 삼촌 ‘게오르기’는 가짜 신랑, 신부를 구해서 결혼식을 찍자고 하며 ‘승주’가 신랑 ‘다우렌’이 된다.

 

 

라고 마무리되는 소개 글로만 보면, 영화 <다우렌의 결혼>을 전원생활을 통해 자아를 찾는 현대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힐링물이라고 상상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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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우렌의 결혼>은, 겉으로는 바쁜 한국 사회와 대비되는 카자흐스탄에서 힐링, 이색 체험을 하며 마음의 치유를 얻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 낯선 곳에서 퀘스트를 해내는 시리즈 <윤식당>이나 <비긴 어게인>, 아무렇게나 낯선 곳에서 자아를 버린 채 생활해 보는 시리즈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등과 같은 포맷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내가 여기까지 썼다는 것은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내용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화에서는 영상, 특히 다큐멘터리와 같이 상업성이 없는 영상물에 대한 창작자의 러브레터와도 같은 순수한 진심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초보 영상 제작자들에 대한 애정 어린 위로와 성장담으로 읽을 수 있는 좋은 이야기이다. 영화의 메인 배경인 카자흐스탄에 가기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아직 입봉조차도 하지 않은, 그러니까 자기 이름을 달고 찍은 영상 작품이 아직 하나도 없는 또 다른 ‘열정페이’의 희생자 승주가, 제작사의 압박 아닌 압박에 카자흐스탄 출장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매끄러운 영화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겠지만, 한국에서 방송이라는 분야에 몸을 막 담은 승주의 현실은 방송가의 그늘을 제법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드러낸다. 단순히 마감과 스케줄의 문제를 넘어서, 외주 제작사 소속 감독(도 아닌 것)의 고충 말이다. 그럼에도 승주는 자기가 만드는 다큐에는 ‘진실’을 담겠다는 꿈을 계속 놓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조연출이고, ‘입봉 시켜주겠다’는 당근에 속아 별것을 다 하게 될지라도.

 

<다우렌의 결혼>은 임찬익 감독이 대략적인 구성을 러프하게 해 두고, 지원사업의 조건에 맞춰 가며 대본을 수정한 영화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감독이 원하는 이야기를 쓴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영화제작지원을 받기 위해 어느 정도 조건(이자 제약) 역시 존재하는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승주와 ‘스태프들’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많은 감독과 창작자의 상황이 떠오르게 된다. 일종의 메타픽션이라고 조심스레 분류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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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의 본질을 찾아서


 

인생을 대하는 사람의 관점을 인생관이라고 부르고, 이걸 다큐에 적용해 ‘다큐관(觀)’이라는 단어를 만든다면, 승주의 다큐관은 ‘극단적인 리얼리즘’이다. 영화에는 승주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다큐멘터리를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청 다큐 제작업체 상사에게) 피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어쩌면 승주의 캐릭터를 조금 과장하여 재밌게 보여주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이 장면은 의외로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지점을 소개하기도 한다.

 

승주가 꿈꾸는 ’넷플릭스용 다큐‘는 제목부터가 ‘갈치의 꿈’이다. 이 다큐는 유명한 작품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 그랬듯 하나의 갈치만을 추적해 그것의 삶에서 인간세계에 적용할 만한 교훈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일종의 갈치 버전 ‘인간극장’이랄까.

 

그렇지만 이 다큐는 다소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진짜’를 보여주기 위해 하나의 갈치만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 흥미롭고 궁금해지는 기획이지만, 실현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렇듯 승주는 처음에는 무모하게까지 느껴지는 계획과 패기만으로도 충분히 현실을, 실제라는 그 불분명한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는 한편 처음에 승주는 다른 스태프의 잘못으로 알아내지 못한 현지 인터뷰이의 이름을 얼렁뚱땅 적어서 내는 잔꾀를 부리는 역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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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에 진실을 담는 법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찍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승주는 주구장창 카자흐스탄의 풍경만 촬영한다. 그는 현장에 취재를 하러 나왔지만, 여전히 외부인이고, 그의 역할은 오로지 이국적인 전통문화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렇게 소극적인 관찰자의 자세를 유지하는 승주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그는 결혼식 촬영을 하며 조금씩 유연하게 변하는 듯하다. 거짓 속에서 진실을 담아내는 내면의 혜안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사건이라 하면 당연히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가짜 결혼식을 꾸며낸다는 것일 거다. 다큐멘터리의 생명은 신뢰성과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다. 꾸며내고 연출하지 않은 화면을 보여 지적인 호기심을 가진 다수가 간접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암묵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승주, 아니 다우렌의 가짜 결혼식은, ‘가짜’ 결혼식이기는 했어도 가짜 ‘결혼식’이었다. 실제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나름 엄격하게 전통을 지키며 전통 행사를 치른 것이다. 현지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들과 라포를 쌓으며 영상 수집하고, 결혼식에서 즐거운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다.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진심으로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진심과, 이국적인 고려인들 사이에서 찾은 한인의 특징이다.

 

<다우렌의 결혼>이라는 영화는 마치 어딘가 낯선 곳에서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작품같이 보일 수 있지만, 나름대로 계보를 갖고 있는 영상이다. 임찬익 감독은 농촌 총각과 고려인 여성 간의 국제결혼을 다룬 영화 <나의 결혼 원정기>(2005)의 스태프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이 <나의 결혼 원정기>라는 영화는 다시 2002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인간극장’ 중 농촌 총각의 국제결혼을 다룬 ‘노총각 우즈벡 가다’라는 에피소드에서 시작된 작품이기도 하다.

 

<나의 결혼 원정기>와 ‘인간극장’이 모두 국제결혼이 진행되는 상황을 묘사해 농촌 고령화, 국가 주도 국제결혼의 제도적 문제점 등 한국 사회의 문제를 그리고 있다면, <다우렌의 결혼>은 아예 결혼을 ‘거짓말’로 만들어 버린다. 언뜻 보기에 한국 청년의 자아 찾기에 한정된 이야기로 보이겠지만, 카자흐스탄 시골 고려인 소녀의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도 함께 다루며 청년 보편의 이야기로 확장한다.

 

승주는 한국으로 돌아온 뒤 자신만의 작품을 위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분명 카자흐스탄에서의 경험이 없었으면 쉽게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먼 곳에 나가 많은 일을 겪고 다시 무(無)로 돌아갔다가 새로이 시작한다는 뻔한 이야기. 하지만 은근하게 튀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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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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