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청춘공동체를 잃어버린 청년의 낭만이란 [도서]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읽고
글 입력 2024.06.13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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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대학가의 편의점에는 라면국물냄새가 빠짐없이 진동하고 김밥과 샌드위치류가 벌써 동이 났다. 대학은 취업률이 낮은 문과가 소멸되고, 취업박람회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심지어 2010년대에 다시 돌아온 ai혁명 및 열풍은 특이점이 도래해, 청년세대의 취업희망과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사실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공부도 일하지도 않는 고립, 은둔 청년은 2022년 기준 51만 6천명으로 추정된다. 주식과 가상 화폐의 급격한 투자열풍을 보면 현재의 존립과 유지의 비중이 커지고 현재보다 나빠질 미래를 대비할 준비에 바쁘다. 미래라는 지평을 개척하던 적극적인 자세가 닥쳐올 미래를 방어해내는 수동적인 자세로의 변화하게 된 특이점은 『침이 고인다』의 배경이 되는 1997년 IMF이후 경제불황이 일상화된 2000년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2005년부터 2007년동안 문학잡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수록한 단편집이다. 신빈곤서사란 비평어가 주요 키워드일만큼 그는 사회의 현실을 가계부처럼 적어낸다. 본질 앞에 실존을 논했던 과거에서 다시금 본질의 문제로 돌아간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직해 역주변의 전셋집을 얻고 건강보험료를 체납하지 않으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는, 완전한 자립을 이뤄낸 정상사회에 진출한 이들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라는 안정감이 훈장처럼 내려진다. 김애란의 소설은 386 세대가 주창한 국가와 정치적 담론에서 도피한다. 작가는 오랫동안 청년이라는 화자라는 공간안에 갇혀버린 듯이 주체들의 세밀하고 분열된 감정에 집중한다는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감이 느껴질 정도로 화자의 관점으로 깊게 파고들지만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고 불분명하다. 즉, 화자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완숙하지 못하다. 사건의 나열을 통해 감정을 소극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묵묵히 체념한 모습을 그려, 사회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던 청춘들의 모습과는 다른 동시대 청년세대의 자화상을 그린다. 또한 「도도한 생활」은 침수된 반지하 안에서, 「침이 고인다」는 후배와 헤어지고 다시 홀로 남겨진 자취방에서, 「네모난 자리」는 선배가 떠나가고 남은 빈 방안에서 결말에 도달한다. 결론적으로 소설은 성장하지 못하는 청년을 화자로 내세움으로써 더 이상 청년문학이 성장서사를 갖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진 동시대의 세태를 보여준다. 청년의 상징이었던 ‘청춘’들은 전세대가 갖고 있던 시대의 문제, 데모, 반항이란 타이틀을 잃고 개인화되며 청년이 가지는 공동체란 청년 자체가 아닌 각각의 관심사로 퍼져 나간다.


이렇게 파편화된 퍼즐조각 같은 사회에서 존재를 표출하고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가능성의 지표사이에서 청년들은 개개인만의 독자성을 원하면서도 다른 청년세대와 관계되고 싶은 이질적인 두 욕망의 충돌이 일어난다. 끊임없는 변화만이 유일한 진실인 시대에서 막 사회로 진출한 청년들은 어떻게 진실된 자신을 찾을 것인가? 이에 대해 김애란은 소설속의 배경으로 서울이란 지표를 반복적으로 가져와 무심하게 지시한다. 김애란의 서울이란 계속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지리적인 위치다. 반지하 안에서의 서울은 “어쩐지 여기, 서울 같지 않아.”(「도도한 생활」, p. 28)와 같은 형식으로 이상적인 상상의 서울과 현존하는 현실의 서울이 계속 충돌한다. 서울은 사람이 없는 곳이 없다. 그것은 곧 계속하여 타인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타인으로 하여금 실존의 증거를 망각한다면 타인은 비교와 충돌의 대상이 된다. 후배라는 낯선 타인과의 동거 생활이 화자에게 습관처럼 느껴질 때, “그것은 그녀가 퇴근 후 현관에 서서 ‘지금 저 안에 후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그즈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 그러나 그녀가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건, 후배가 자신을 따라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침이 고인다」, p. 66-67) 서울은 선망, 좌절, 충돌, 비교, 시기, 충격, 다양성이 집대성된 공간인 만큼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따라하기도 한다. 그 결과로 타인의 존재자체로 지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화자가 다시 홀로 남은 자취방에서 씹은 후배의 인삼껌은 타인과의 관계처럼 달콤 쌉싸름한 맛을 남기는 존재의 증거다. 김애란의 소설이 확실한 고통을 겪고 확실한 변화를 겪는 성장소설은 아닐지라도 화자들은 혼잡스러운 세계속에서 자신만의 궤도를 희미하게 지키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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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노선도

 

 

흔하디 흔한 인물군상을 필두로 일상을 이야기하며 현실을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을 뿐인데,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하거나 비루해 보인다. 평범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정차할 정거장을 찾지 못한 채 계속하여 환승하게 되는지에 대한 대답은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애란은 계속하여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이런 삶이 정말 행복한지 되물으며 반복되는 타성들을 재고한다.


소설가 최인호(1945-2013)가 한 일간지에 기고한 「청년문화 선언」의 “고전이 무너져 간다고 불평하지 말고 대중의 감각이 세련되어 가고 있음을 주목하라”라는 그의 발언은 1970년대의 기성세대가 우월했던 문화적 분위기를 저격했다. 다양성이 중요가치로 부각된 현재로선 이 경구는 큰 경종을 울리지는 않는 듯하지만 독자의 방향이 청년을 향했을 때, 그것은 계속하여 흔들리고 실패할 가능성위에 놓이는 사회의 안팎에 있을 청년들의 불안 모티프에 대한 공감과 그들의 독자적인 문화가 지속됨에 대한 응원이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청춘이라는 단어는 그것을 이미 지각한 자들에 대한 위로이자 그럼에도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노스탤지어를 느끼며 자라나기 시작한 새롭고 연약한 낭만들에 대한 안녕의 기도이다.

 

 

[변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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