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봄을 살아냈듯 여름을 잘 살아 보기로 해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6.22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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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 두 숨. 숨을 들이쉴 때마다 더운 공기가 폐부 가득 차오른다.

 

온도의 단위가 ‘도(°C)’가 아닌 ‘숨’이 되는 계절이다. 그만큼 여름은 꽤 버티기 힘들다. 버틴다는 건 한 자리를 진득하게 지키면서 내게 오는 것들에 맞서거나 그들이 지나쳐가도록 두는 것인데 여름 더위 아래선 쉽게 쓰러지고만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여름 나기’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나다’라는 동사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여름이나 겨울과 함께 쓰이면 ‘지내어 넘기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을 잘 보내고 나면 다음 계절이 찾아오는 것처럼 결국 이 시간 안에 잘 머물러 있다가 다가오는 시간을 또 잘 맞이하는 게 바로 나는 것이다.

 

여름을 나는 법을 말하고 싶다. 당신에게 여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느껴질 수 있게. 손가락이 비치는 반투명한 종이에 예쁘게 글씨를 써서 까슬한 편지봉투에 담아 드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여러분과 나는 서로 사는 곳을 모르니 이렇게나마 글을 써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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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아진 밤을 아껴 보기. 여름에 낮이 길다는 말은 곧 밤이 짧다는 말이다. 나처럼 밤낮이 바뀐 사람들에게는 더욱 여름밤이 짧게만 느껴진다. 여름 낮 동안에는 느릿느릿하고 어딘가 몽롱했다면 밤이 되면 털끝이 바짝 솟고 머리에 피가 돈다. 더위도 조금 가시고 달도 떴겠다, 늘어져 있는 시간을 주워 담아 황진이처럼 구뷔구뷔 펴리라. 짧은 밤이라 해도 못할 일은 없다.

 

소나기에 너무 크게 아파하지 말기. 어차피 지나갈 사람, 상황, 시간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그 순간은 피부를 뚫을 만큼 아프게 느껴지더라도 곧 그치는 게 소나기다. 멈출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비추기 때문에 소나기는 소나기라 불린다. 나를 지나쳐 갈 일에 우리 너무 아파하지 않기로 하자.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떴는데도 아직도 아파하지 말기로 하자. 너무 길게, 너무 크게 아파하지 말자.

 

미완성이어도 괜찮다. 1년의 반이 지났는데 왜 이거 하나 못 끝냈나,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완결은 여름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겨울의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완결은 어디에도 없을 수도 동시에 어디에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런 채로 두는 건 어떤가? 혹은 몇 계절이 지나고서야 씨앗을 거두어들여도 될 것이다.

 

무엇보다, 몸을 잘 챙기기. 잘 쉬고, 잘 마시고, 잘 놀고, 잘 먹어야 한다. 수박 한 조각 크게 잘라서 입가에 묻혀 가며 먹고. 더우면 그늘에서 잠깐 쉬고. 아플 때에는 ‘다음부턴 몸을 잘 챙겨야지’ 하다가도 다 나으면 또 잊어버리고 열심히 달리는데, 우리 그러지 않기로 하자. 정말이지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니 우리, 봄을 살아냈듯 여름을 잘 살아 보기로 하자. 다시 가을을 맞고, 겨울을 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오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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