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선택하는 명제. - 또 오해영 [드라마]

글 입력 2024.06.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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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살아요. 피투성이라도 살아요. 살아남는게 이기는거야.


 

‘전 결혼식 전날 차였어요. 아.. 처음 말해 본다.’

 

해영은 어딘가 모르게 본인만큼 불행해 보이는 한 남자에게 결혼식 전날 차인 사실을 처음으로 말하게 된다. 누구한테라도 털어놓고 싶었던 본인의 아픔을 나만큼 불행해 보이는 사람에게, 다시는 볼 일 없는 도경에게 말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불행과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 조차도 불행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나의 불행을 털어놓고 싶진 않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나만큼 불행한 사람 그 사람만큼은 나의 불행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훌훌 털어내고 일어나라고 위로해주지 않을까. 너 이제 어떡하냐. 불쌍하다. 등의 동정 섞인 위로 말고.

 

해영에게도 도경은 그런 존재였다. 결혼식 전날 차였다고 한심하고, 가엽게 쳐다보는 시선들, 그리고 동정들. 해영은 본인을 불쌍하게 보는 그 시선들이 싫었던 것이다. 이거 아무 일 아니라고. 빨리 일어나서 살아가라고.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해영은 도경의 눈빛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 나만큼 불행한 눈빛을 한 그라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줄 거라고. 그리고 그들은 그 속에서 다시 일어나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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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여전히.


 

‘난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랐던 거지, 그 애가 되길 바란 건 아니더라고요.’

 

학교 때 오해영은 두 명이었다. 그들을 구분 짓는 말이 있었다. ‘이쁜 오해영’, ‘그냥 오해영’. 어릴 때 해영은 이쁜 오해영을 보며 내가 저 아이였다면, 저 아이처럼 예쁘고 공부 잘했다면, 그랬다면 내가 더 행복했을 텐데. 엄마 아빠는 왜 내 이름을 오해영이라고 지어서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영은 이내 깨닫는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이쁜 오해영이 될 수 있다면.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그러기를 선택할까? 아니었다. 해영은 자신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랐던 거지 이쁜 오해영이 되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누군가와 비교당하면서, 내 스스로 비교하면서 자꾸만 이리저리 치이는 삶 말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아져서 어떻게든 힘을 내 으쌰으쌰 살아가는 그런 삶 말이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렇게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가 밥 먹듯이 하는 말과 생각들이다. 하지만 생각해본다. 정말로 내 자신이 없어지고 우리가 원하는 그 사람이 된다면 과연 우리는 행복할까? 그게 진짜 우리가 바라는 것이었을까? 우리는 늘 누군가를 동경하고 그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그 내면에는 내가 그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지금의 상황에서, 처지에서 조금만 더 나아지길, 조금만 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만, 세상이 정한 그 잣대에 자신을 자꾸만 끼워 넣기 때문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세상의 모든 오해영은 말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를.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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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네 결혼 깨고 그렇게 너 만날 거야. 미안한데, 정말 미안한데, 네 결혼 깬 거 하나도 안 미안해. 미안해 근데 이게 본심이야.


 

‘반갑다. 나만 아프면 되게 억울할 뻔했는데 너도 아파서 엄청 반갑다!’

 

도경은 헤어진 해영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칠 때의 장면들을 미리 보게 된다. 도경이 미리 본 장면 속에서 도경은 자신의 마음과는 반대인 말들만 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해영의 차갑게 식어버린 눈빛. 도경은 미래를 바꾸기 위해, 해영을 붙잡기 위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해영과 마주칠 때마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냥 다시 와 줘라.’ 도경의 진심에 해영은 흔들리는 눈빛을 하며 주먹을 꼭 쥔다. 마치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처럼.

 

도경이 미리 본 미래의 영상에서 해영은 도경의 모진 말들에 점점 더 굳게 마음을 닫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말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도경은 사랑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꽁꽁 닫아두고 살고 있다. 이런 도경의 모습은 현대인의 사랑법과 매우 닮아있다. 내 진심을 모두 보여주었다가 상처 받을까봐, 내 진심이 너무 초라해 보일까 봐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진심을 감추다가 어떤 것이 본인의 진심인지조차 헷갈려 한다. 하지만 진심을 꺼내는 것 보다 더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도경은 더 이상 해영을 잃을 수 없어 어렵게 자신의 진심을 꺼내 본다. 나에게 무엇보다 간절한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을 잃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나의 진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힘들지만 한 발을 내딛은 도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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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아니야. 100이야.


 

‘100만큼 좋은 거 아니다 89만큼 좋은 거다. 그런 거면 말해요 내가 89로 맞춰줄게. 그쪽도 100인 줄 알았는데 89로 느껴질 때마다 내가 좀 기분이 그래.’

 

발로 채일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다짐한 해영은 100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온 힘을 다해 도경을 사랑하고 있다. 죽기 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해영과의 아쉬웠던 기억들. 더 이상 아쉽지 않도록 재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던 도경이었지만 또다시 해영 앞에서 망설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온전히 다 표현하는 것은 밀고 당기기를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마음을 100% 다 표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내 마음을 다 줬다가 나중에 상처받을까, 그가 쉽게 질릴까. 사랑에도 계산적인 마음이 앞서는 현대사회의 사랑법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이기에 나는 도경의 모습을 보고 나의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 같았다. 어릴 적 두려운게 하나도 없었던 그때는 ‘마음을 잰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인데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는게 마음이라는 건데 그걸 왜 재는거지?’라는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랑에 상처받으며 이 모든게 내 마음을 다 줬기에 결국은 나에게 상처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그것을 깨달으면 더 이상 솔직하게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게 된다. 그때 우리는 깨닫는다. 마음을 잰다는 것이 어떤 말인지를.

 

‘89아니야 100이야.’ 도경은 100인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다 드러낼 수 없었다. 자신이 미리 본 미래의 영상에서 도경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해영에게 자신의 마음을 다 표현했다가 자신이 죽으면 혼자남을 해영이 더 상처받을 테니까. 하지만 도경은 사업이 망해서 ‘밥 먹는게 꼴 보기 싫어졌다’는 말로 해영에게 상처를 준 한태진을 보며 어떤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상처일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선택한다. 죽음 앞에 있더라도 해영에게 지금 내 마음을 다 표현하고 죽겠다고.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게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을 하겠다고. 죽음이 두렵고, 혼자 남겨질 해영이 걱정되는 마음보다 더 큰 건 지금 내 마음. 내가 해영을 100만큼 아니 그 이상 사랑하는 이 마음. 미래가 두렵고 불안해도 우리는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선택할 것이다.

 

 

[고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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