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엄마가 나를 보러 왔다, 열두 시간을 날아서

글 입력 2024.06.22 11: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050541976_PErR3qzc_airplane-7429725_1280.jpg


 

엄마를 다시 만났다. 무려 하루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액정 너머로 보았던 엄마가 내 눈앞에 있다. 엄마는 나의 마지막 학기를 함께 보내기 위해 열두 시간을 걸음 했다. 해외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나는 학부를 졸업하기 전 마지막으로 실기 시험이자, 연주회를 진행한다.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내 음악을 펼쳐내야 한다. 이 시간은 나 자신과 길고 외로운 싸움이기도 하지만, 엄마도 객석 저편에서 나를 응원하고, 엄마만의 해석을 담아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짧지 않은 시간을 분주하게 보낼 것이다.

 

나의 졸업 연주 관람이라는 분명한 방문 목적은 어쩌면 얼굴만 봐도 좋은 우리가 만나기 위한 좋은 구실이었다. 엄마와 나는 다른 점이 많아서 싸우기도 곧잘 싸웠지만, 그만큼 푸는 시간도 짧았다. 한 명이 장난을 걸며, 넌지시 말을 걸면 금방 풀리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같은 관계이다.

 

비행기 안은 춥다. 엄마가 오기 하루 전날, 문득 반나절 동안 불편한 자세로 제대로 못 쉬었을 엄마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시장에서 통통한 홍합을 사서 끓여 먹은 미역국, 한 입 먹자마자 입맛이 싹 돌았던 불고기. 내가 최근에 맛있었다고 생각했던 음식들이 떠올랐고, 곧바로 시장에 갔다. 언제부턴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좋아할 엄마의 얼굴을 생각하며 힘을 내서 찾아간 홍합 코너에는 아뿔싸, 빈 껍데기 세 개만이 애처롭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때마침 직원분이 도움이 필요한지 여쭤본다. 사정을 알고 보니, 공휴일이라 새로 들어온 해산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홍합 미역국은 물 건너갔지만, 뜨끈한 국물은 있어야겠다 싶어서 계란 감잣국으로 노선을 바꿨다. 하지만, 한꺼번에 두 가지 메뉴를 한다는 것은 꽤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불고기를 만들고, 저녁을 먹고는 국을 끓였다. 국을 올려놓고 할 일을 하다 보니, 국은 조림에 가깝지만, 조림이라고 하기엔 국물이 자작한, 뭐라 이름을 붙이기 곤란한 두 요리의 중간 단계 정도의 형태로 변해있었다. 어쨌든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좋을 것 같아 불을 끄고, 한 김 식힌 후 반찬통에 꽉꽉 눌러 담았다.

 

 

IMG_9759.JPG

 

 

다음 날 엄마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고, 우리는 대청소를 계획했다. 엄마의 짐을 새로 들여야 했기 때문에, 나의 짐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침대도 한 번 털어내기로 했다. 그 전에 먼저 밖에 나가 중국 면 요리를 먹었다. 싸고 맛있기로 유명한 집인데, 어쩌다 보니 처음 먹어보는 것 같다. 나는 매콤한 단단면, 엄마는 맑은 해산물면, 그리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던 만두까지 나눠 먹고, 비행기에서 커피를 마시지 못한 엄마를 위해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들고 야무지게 집에 돌아왔다.

 

청소는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나도 나름대로 자주 치우고 산다고 살았는데, 확실히 엄마의 기술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손길이 닿은 곳은 바로바로 티가 나게 변해갔고, 청소 이후에도 우리는 커피를 한 잔 더 사 오고, 아침마다 내려 먹을 원두도 사고, 마트에 가서 물을 몇 병 더 샀다. 우리의 대청소는 그러고도 한참 더 지나 저녁 먹을 시간이 돼서야 막을 내렸다.

 

일하고 먹는 저녁은 더욱 맛있었다. 계란 감잣국, 아니, 조림은 물을 더 넣고 한소끔 펄펄 끓여 다시 국이 되었다. 싱거워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어쩜 간도 딱 맞던지 입에 술술 들어갔다. 따뜻한 밥에 불고기 한 점을 얹고, 살짝 텁텁해질 때쯤 며칠 전 만들어둔 상추장을 먹으면 이런 게 행복이지 싶었다. 이것저것 맛있게 먹었지만, 평소보다 먹은 양은 적었는데 포만감이 빠르게 몰려왔다. 심리적인 안정감이 채워져서였을까? 씻고 정리된 침구에 누우니 잠이 솔솔 왔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의 노고가 보송한 침대에 녹아내리고 눈꺼풀이 감겨왔다.

 

우리는 타지에서 함께 보낼 앞으로의 시간과 당장 다가오는 내일의 밝은 태양을 기대하며 곤히 잠들었다.

 

 

 

명함 컬쳐리스트.jpg


 

[원정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