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외국인, 동시에 우리들 중 하나 [드라마/예능]

<비정상회담>, JTBC
글 입력 2024.06.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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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들이 세계를 논한다, 그것도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외계인 보듯 하며 칭송하거나, 혹은 아주 낮잡아보거나. 외국인을 타자화하는 우리의 습성은 비속어와 우스운 짤과 밈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니 한국인에게 외국인은 ‘아무튼 외국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우리의 시선에 슬그머니 반기를 들어 올리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JTBC에서 방영된 <비정상회담>이 그 주인공이다. ‘정상회담’에 단 한 글자만 붙여 만들어진 재치 있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대변해서 신랄한 토론을 벌인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등장하는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특히나 <비정상회담>이 큰 지지를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야말로 ‘비정상(非+頂上)’인 필자가 한마디 거들어보려고 한다.

 

 

 

명랑하고 유쾌한 말다툼


 

<비정상회담>은 자신의 원본 ‘정상회담’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우선 정상회담처럼 회의장 모양의 세트에서 촬영이 이루어진다. 회의를 진행하는 의장과 사무총장이 화면의 정면에 앉고, 각 나라의 대표들이 좌우에 일렬로 앉는다. 대표들은 국가명과 자기의 이름이 새겨진 자개 명패를 자신의 앞에 내려놓는다.

 

그러나 안건을 상정하고 각자의 의견에 따라 찬반 투표를 하고 난 순간부터 정상회담과는 구분되는 비정상회담만의 활기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때 안건은 정치, 경제, 역사와 같이 무거운 주제도 있지만, 연애, 일상, 취업, 음식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주제에서도 선정되는데, 이로 인해 토론이라기보다는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가까운 분위기를 띠기도 한다. 토론자들은 주장의 근거를 대기 위해 자국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지적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굳혀나간다. 그로 인해 지적받은 쪽에서의 반발이 시작되고, 점점 분위기가 과열되면 누군가는 (편집된 화면상에서는) 말 한마디 못 한 채 토론이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누군가의 말실수, 날카로운 지적이 모여 편안하면서도 재미있는 비정상회담만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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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캐릭터 말고, 그냥 당신


 

그렇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프로그램과 비정상회담이 구분되는 점은, 외국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자기 나라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다. 기존 프로그램에 외국인이 패널로 출연할 경우, 그들은 독특한 캐릭터를 사수함으로써 재미를 전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 뚝배기 하실래예?”로 유명한 로버트 할리나, 엉뚱발랄한 말을 내뱉는 사유리가 자기 나라의 실정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기회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외국인들이 더욱 외계의 존재처럼 보이고, 그들에 대한 편견이 강화되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미 한국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아무런 캐릭터를 뒤집어쓰지 않고도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류가 아니고, 특별한 비주류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정상회담에서는 오히려 한국인이 비주류가 된다. 눈에 익은 한국 사람이 등장하면, 저 사람이 어딘가 잘못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외국인 토론자들의 대화 내용 또한 흥미롭다. 그들은 한국을 마냥 칭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국에서 온 개인이 보는 한국에 대해 직설적으로 평가한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의 단점을 지적하더라도 시청자들은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국을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외국에서 와서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냥 어떤 사람’이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은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약점으로 작용할 것도 그 사람의 특성으로 보이게 된다.

 

그렇게 외국에서 온 개인들이 자기 나라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자국에 씌워진 편견을 벗겨낸다. 타국에서 지적받는 그 문화가 자국민들에게는 어떠한 의미이고, 어떠한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설명한다. 토론자들과 더불어 시청자들 또한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편견의 이면으로 시선을 향해본다. 그렇게 외국의 사람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외국인들은 머리에 뿔이 달리거나 음흉하게 웃는 괴물들이 아니라, 그저 우리와 조금 다른 장소에서 태어난 또 다른 우리인 것이다.

 

 

 

그들의 실수를 그리워한지 7년째


 

그래서 비정상회담에서는 마냥 말을 잘하는 토론자만 사랑받지 않았다. 한국어가 어눌하여 깊은 논리를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 자국의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나름의 매력으로 사랑받았다. 그것은 그들이 적재적소에서 재미있는 효과음을 넣어주는 패널로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한국 국적자들처럼, 자기의 약점과 장점을 모두 드러내는 그저 개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감정적인 모습과 치열한 공방전, 그러한 모습이 모두 모여서 그들의 입체성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그들은 입체적인 존재이기에 두드러지게 모난 부분에는 온갖 시선이 모이기도 한다. 가끔은 불편하다는 평을 내어놓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평가로 하여금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거대한 벽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 사회에 그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비정상회담이 시즌3을 예고하며 시즌 종영한 지 어느덧 7년째, 이제는 훨씬 더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에 있다. 그러니 이제는 그들도 다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다시금 우리 사회에 그들만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요철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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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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