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작품을 향한 풍부한 시선 - 결정적 그림

화가의 시선을 담은 어떠한 순간
글 입력 2024.06.22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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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그림 | 이원율 저

영원한 예술로 남은 화가의 순간들


사진에는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제목으로 쓰인 이후 널리 퍼진 표현이다. 렌즈는 순간을 담지만 렌즈에 비치는 모든 것은 매 순간 변하고 있다. 그래서 결정적 순간은 시간을 초월한 형태와 표정과 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라고 한다. 순간에 포착된 본질의 절정. 그림에는 순간적으로 찰나를 담아내는 과정이 없다. 밑그림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하나씩 쌓아 올려 완성된다.

 

전시를 보러 다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작가에 대한 정보가 쌓인다. 얼마 전 일본에서 다녀온 에밀 갈레전만 해도 갈레의 아버지가 유리 공예가였다든가 갈레가 낭시파의 선적 역할을 했다 부수적인 정보를 가지고 돌아왔다. 책에서도 언급된 알폰스 무하의 경우 한국 전시만 여러 차례 다녀왔더니 어지간한 일화는 다 알게 되었다. 라파엘로는 바티칸 투어에서 작품 설명과 작가 소개를 함께 들었다.


정보는 남이 전해주는 게 제일 재미있다. 전시 구역에 붙어있는 작가 소개는 경직되어 있고 때론 작가 영상이 엄숙한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제작된다. 정보 전달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 눈이나 귀에 닿을 걸 염두에 둔 설명은 다른 것보다 친근하다. 몇 번을 씹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이해하기 쉬운 말과 글이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수많은 화가의 일생을 소화하고 나서 제일 흥미로운 형태로 다시 만들어냈다. 필요한 정보는 넣되, 그 설명이 지루하지도 않고 정보 과잉으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이 책은 국적과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가를 소개한다. 작가의 스타일에 맞게 그의 일생을 조명하고 소개하고 묘사한다. 종교화와 수묵화와 행위예술을 한 번에 다루는데 문체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바뀐다. 날개가 꺾인 유망주인 카미유 클로델을 소개할 때는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추사의 혹독한 삶을 묘사할 때는 강인함을 심어두었고, 르누아르를 이야기할 때는 글에 행복을 담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삶은 그녀의 예술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자아를 찾아 헤매던 시기에 들은 어떤 위로의 말은 나에게 깊이 박혔다. '쉽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이라고 시작된 문자는 화면 너머 따스함이 전해지는 것 같아서 몇 번이고 마음에 품었다. 우리는 그 감정과 상황을 안다고,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곤 한다. 온전히 이해하지도 이해받지도 못했지만 그런 식의 공감과 위로를 주고 받는다. 누군가의 일생을 몇 페이지의 글로 안다고 말하면 안 된다. 하지만 참고는 할 수 있지 않나.


학창 시절에 르누아르 그림을 좋아했다. 꽃 같고 화사한 작품은 내 안의 소녀심을 자극했고 화폭의 담긴 행복한 순간은 남의 이야기처럼 낭만적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제는 감상이 조금 달라진다. 르누아르가 녹록지 않은 삶 속에서도 고통 대신 환희를 바라보았고 행복의 찰나를 포착하여 그려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로 그의 그림은 한층 더 화사해졌고 행복과 환희를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가뜩이나 불쾌한 것투성이인 세상에서, 굳이 그림마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일부러 그릴 필요가 있을까."


공원에는 때가 되면 계절에 맞는 꽃이 핀다. 보는 것만으로도 예뻐서 카메라를 켜게 된다. 우연히 공원을 지나다가 조경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흘러 흐드러지게 핀 꽃을 마주하면 그날 본 노고가 생각나서 꽃이 주는 아름다움에 더 집중하게 된다. 배경을 알게 되면 시선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 책이 그런 작용을 한다. 작품을 좀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게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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