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같은 것을 볼 수 있다면 - 하나 그리고 둘 [영화]

글 입력 2024.06.13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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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걸까. 삼촌의 결혼식 이후 할머니는 팅팅이 잊은 쓰레기를 버리려다 사고를 당한다. 엄마 민민은 할머니의 사고 이후 슬픔에 빠져 살고 아빠 NJ의 회사는 어려워진다. 조용하게 불행이 찾아오는 동안에도 모두 각자 몫의 삶을 산다. 다만 다가오는 할머니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조금 그늘지고 힘이 빠진 채로.


첫사랑과 재회한 NJ는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서로의 세상은 다르다는 것은 느낀다. 30년 전 서로 같은 것을 보지 못해 도망친 그는 30년 후에 당신이 한 방식으로 남겨진다. 젊은 시절에 대한 회상과 아쉬움은 그저 회한일 뿐 그들이 다시 만났음에도 결말은 같았던 것처럼 다시 돌아가도 변하는 것은 없다. 그렇지만 우린 결말을 앎에도 잘못과 실수를 반복한다. 바르게 그었다 해도 뒤돌아보면 구불거리는 선이 되는 것처럼 티끌 한 점 후회 없는 삶은 없다.


휘청거리는 어른들을 팅팅과 양양은 뒤에서 지켜본다. 아이들에게도 삶이 있다. 양양은 가족들의 뒷모습을 찍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한다. 우리는 반쪽짜리 진실만 볼 수 있는 걸까?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학교 일과 중에 필름을 사러 갈 정도로 양양에게는 가족들이 모르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할 일이다. 아마 영화의 배경은 양양이 가족들의 뒷모습을 가장 많이 본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표현하는 얼굴이 아니라 고독과 사투하는 뒷모습이 카메라에 담는다.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을 양양은 그동안 알았을 것이다. 물에 뛰어들고 다른 생각을 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지켜보고 있는 것은 양양이다.

 

반면 누나 팅팅은 사랑과 우정을 통해 세상에 손을 뻗기 시작한다. 친구 리리와 패티 사이 예상치 못한 삼각관계에 휩싸인 데다 할머니의 사고가 본인 때문이라는 죄책감까지 커지면서 마음속 소용돌이를 홀로 잠재운다. 모텔 문 앞에서 상대가 도망가 버려도 천천히 돌아가는 아이. 분노에 찬 말을 듣고도 문을 세게 닫기만 하는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떤 시간을 거쳐 어떤 어른이 될까. 나는 그가 비겁하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어른들에 가까워지길 바랐다. 혼자 꼿꼿이 서 있기보다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기대어 살기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어른이란 건 성숙한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눈을 가리고 피하기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팅팅이 패티에게 이해 못 할 분노를 받아낸 다음 날 패티는 리리 엄마의 내연남을 살해한다. 집 앞에 있는 사건 현장을 지나는 팅팅은 괜찮아 보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가 가졌을 안도감과 걱정, 후회는 앞으로의 삶에 더 자주 등장할 것이다.

 

유년 시절만의 고독이 있다. 복도를 질주하는 발 구름의 진동. 아무도 없는 집의 서늘함 같은 것. 되짚어가다 보면 과거와 끝없이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실감 난다. 하나 그리고 둘은 그 고독을 일깨운다. 앞만 보는 어른들에게 질문하면서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를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이미 NJ와 민민에 가까워진 나는 양양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것을 너는 볼 수 없고, 네가 볼 수 없는 것을 나는 볼 수 없기에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간다.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또박또박 글을 읽는 양양은 우리에게 어떤 마음이 필요한지 서툴지만, 정확히 짚어준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시간은 앞으로만 가지만 우리는 언제나 성찰할 수 있기에 서로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 나는 너를 보고 있어. 너의 뒷모습을 보고 있어. -


 

 

 

[노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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