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리의 포장된 개선문(1961-2021) [시각예술]

글 입력 2024.06.1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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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함께하는 작품 <포장된 개선문 L'Arc de Triomphe, Wrapped>(196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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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8일부터 10월 3일까지 단 16일간 전시되는 크리스토 자바체프(Christo Javacheff, 1935-2020)와 잔클로드(Jeanne-Claude, 1935-2009)의 마지막 작품이 공개되었다. 작품은 <포장된 개선문 L'Arc de Triomphe, Wrapped>(1961-2021)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을 천으로 감싸 포장하였다. 숫자가 가득한 위의 두 문장에서 두가지 흥미로운 의문이 든다. 첫째, 잔클로드와 크리스토가 사망한 이후 올해 작품이 설치된 것이며 둘째는 작품의 제작연도이다. 이는 크리스토와 잔클로드가 대형 설치작업을 오랜기간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였기에, 작품을 준비하던 크리스토가 2020년 5월 생을 마감했더라도 작품은 그의 조카인 블라디미르 자바체브와 프로젝트 팀에 의해 완성될 수 있었으며, 작품의 연도는 그 구상기간을 포함하여 나타낸 것이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재단의 홈페이지에서는 이 작품의 타임라인과 프로젝트 히스토리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짧은 전시기간을 넘어 작품의 제작과정까지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포장된 개선문>(1961-2021)의 프로젝트 히스토리를 간략히 살펴보자. 크리스토는 1961년 초반 작업의 스케치와 포토몽타주를 만들어 아이디어를 구상했으며, 1988년경 이를 구체화시켰다. 그러던 중 2017년 파리에서 전시회를 준비하며, 개선문 프로젝프를 완성하기로 결정하고 2018-2019년에 걸쳐 정부의 허가를 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크리스토는 작품 설치를 위한 기술 점검과 테스트를 진행하고 2020년부터 독일 뤼백에서 작품의 주재료인 천을 제작한다. 그러나 프로젝트는 황조롱이 보호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두 차례 연기되었으며, 이후 크리스토의 죽음으로 중단의 위기가 있었으나 2021년 9월 작품이 설치되었다.

 

이 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들 중 하나는 이들이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대규모 스케일의 작업을 제작하기 위해 ‘스토어 프런트(store front)’를 만들어 자신들의 작품을 판매하여 자금을 마련해왔다. 1985년 완성한 또 다른 감싸기 작업인 <퐁뇌프 Pont Neuf>는 10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300명의 전문 제작자를 동원한 작업이며, 이를 위해 자신들의 드로잉과 콜라주만을 팔아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였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미술사학자 전영백은 “제작방식이 스폰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작업 노동에 의해 마련한 자본으로 진행되었다는 점, 작품의 유통이나 판매가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났다는 점에서도 이들의 사회주의 배경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불가리아 출신의 크리스토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교육 및 난민과 망명의 경험을 배경으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했다.

 

1962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을 발표하며, 살충제 남용의 위험을 알린다. 당시 무분별하고 과도한 살충제의 사용은 생태계에 죽음을 몰고왔고 카슨은 이를 연구한 저서를 출판했으며, 그 결과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은 자문위원회를 소집하고, 이듬해 미국 의회는 국가환경정책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실질적인 행동으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현재 우리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태계는 순환하고 상호작용하기에 그 문제의 시작점을 단언할 수 없으나,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쓰레기이다. 자본주의의 바퀴는 멈출 수 없기에 물건을 계속 생산하고 계속 소비해야 한다. 따라서 그만큼 쓰레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물건을 만들고 운송하고 판매하기위해 들어가는 에너지와 원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환경오염은 쓰레기를 처리할 때, 똑같이 반복된다. 따라서 소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또한 발생한 쓰레기를 잘 처리하는 것의 문제가 남아있다고 본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쓰레기의 처리에서 ‘재사용’의 가능성을 작업을 통해 제시한다. 작품의 주재료인 천은 재활용이 가능한 폴리프로필렌 재질(polypropylene, 약자 PP)로 만들어졌다. PP는 섬유, 필름, 자동차부품, 의료용품 등에 다양하게 사용하는 소재이다. 작가는 의식적으로 포장했을때 발생하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위해 재사용가능한 소재를 이용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환경보호에 대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4월에는 황조롱이와 매 등의 조류가 개선문에 둥지를 트는 것을 이유로 프로젝트를 연기시킨 것은 이들의 환경에 대한 태도를 다시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이같은 ‘재사용’의 방법은 일상에서도 ‘핫’하다. 취리히에 본사를 두고있는 의류 브랜드‘프라이탁(FREITAG)’은 대표적인‘업싸이클링(Upcycling)’패션 브랜드이다. 창업자 프라이탁 형제는 트럭을 덮고있는 방수재질의 질긴 타폴린(tarpaulin) 천에 영감을 받아 취리히의 궂은 날씨에도 사용가능한 가방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상에서 나오는 낡은 방수포와 안전벨트를 재사용하여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며,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은 똑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산업용 재료의 특성상 공정작업에 어려움이 있어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아 가격이 비싼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였으며, 최근 몇년간 한국 시장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MZ세대에 대한 논의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이 ‘가치소비’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가령 이들은 가격 경쟁력이 약하더라도,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된 커피를 소비하거나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를 위해 포장이 없는 제품을 찾는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가 보여준 ‘쓰레기 없는’ 미술 작품은 오랜시간이 지나 실현되었어도 여전히 우리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토는 <포장된 개선문>(1961-2021)의 제작에서 2018-2019년 경, 실제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테스트를 진행하며 천과 이를 감싸는 밧줄의 색상과 크기를 결정하였다. 이때, 대비를 이루는 은색과 파란색 조합의 천과 빨간 로프로 결정되었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작품에서 배색의 사용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콜로라도의 푸른 자연을 배경으로 설치한 주황빛의 <벨리 커튼Valley Curtain>(1970-1972)과 플로리다의 파란 바다와 작은 섬들을 형광 핑크색으로 둘러싼 <둘러싸인 섬Surrounded Islands>(1980-1983) 등 그러한 경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배색을 통해 둘러쌓인, 설치된 천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며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다. 또한 천은 물질성을 느끼기 좋은 재료이다. 작가는 이를 관람객이 직접 피부로 느끼도록 만드는 전시 환경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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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된 개선문>(1961-2021)은 관람객이 천을 직접 만지고, 밧줄에 매달리는 등 설치된 것의 그 자체를 느끼게 한다. 한편 이러한 유동적인 재료의 사용으로 인해 견고한 개선문은 움직이는 오브제가 된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천으로 하여, 그곳에 존재하던 모뉴먼트를 다시 보게끔한다. 그 과정에서 익숙한 건축물에서 낯선 모습을 보게되며, 포장된 천 아래의 구조와 볼륨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던 차이와 그 모뉴먼트의 장소성, 그에 담긴 역사와 사회적 논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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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들의 작업은 장소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이 대지미술 작업을 수행한 것은 잘 알려진 것이기에 ‘장소 특정성’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작가는 작품을 설치함으로써 그 공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그 공간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그들은 한시적인 설치 기간을 통해 그 장소에서의 경험이 유일하고 특별한 시간임을 상기시킨다. 작업은 철거되어 재사용되기에 소유할 수 없고, 그곳에서 향유한 공공 미술 그 자체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작업은 그 공간 속에서 시간적 제한을 갖고 관람할 수 있는 체험과 기억이 된다.



[전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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