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성장의 시간

글 입력 2024.06.1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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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파수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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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홀든 콜필드에 관한 소설이다. 중심인물인 홀든 콜필드는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거름 삼아 성장한다. 


 

 

1. 피할 수 없는 감정


 

나는 ‘홀든 콜필드’라는 인물이 특출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에서는 대부분 어딘가 남다른 인물이 등장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영어를 뺀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해 퇴학 위기에 처해있었고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인물이다. 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한다. 얼핏 보면 재밌는 일들만 일어날 것 같지만 그는 대부분 모든 시간을 우울하게 보낸다.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홀든 콜필드의 ‘우울’이었다.

 

소설에서는 ‘여기서는 너무 슬프고 외로웠다.’와 같은 진술이 나온다. 홀든은 그의 학교인 펜시에서조차 외로워했다. 나는 그의 외로움이 그의 진실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그의 룸메이트인 스트라드레이터가 제인 갤러허를 만나러 나갈 준비를 했을 때 홀든은 제인을 만나러 가길 거부하지만 그 후에 결국 후회한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라는 진술은 그의 진심을 보여주는 문장일 것이다. 홀든은 본인의 진실한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마음 한 구석으로 몰아넣고 그 감정을 잊으려 애쓴다. 애클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반갑게 맞이했던 게 그 이유다.

 

이렇게 숨겨온 진실한 감정은 스트라드레이터와 싸우게 되면서 조금씩 겉으로 튀어나온다. 홀든은 겉과 속이 다른 인물이다. 거짓으로 둘러댈 때가 많고 자신의 생각을 감추려 들기 때문에 숨기려 했던 감정을 스트라드레이터에게 보였을 때 학교를 나가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홀든이 진실한 감정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을 모르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끼고 사랑했던 동생 앨리가 죽었을 때 그는 ‘차고에 숨어들어, 유리창을 전부 주먹으로 깨부’수고 ‘정신 분석 상담을 받’았다. 어른들이 어린 홀든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홀든이 점점 더 거짓으로 감정을 포장했다고 보았다. 거짓이 아닌 진심을 마주했을 때 홀든은 본인이 더 놀라고 피하려 애를 쓴다. 이런 모습은 홀든 또래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홀든이 펜시에서 느낀 외로움과 우울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라 생각했다. 다만 펜시에서 홀든에게 이러한 감정에 관해 설명해준 어른과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기에 결국 홀든이 학교를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보았다. 그가 학교에서 배워야 했던 것은 ‘작문 잘하기’나 ‘시험 잘 보기’가 아닌 ‘사람을 대하는 법’ 혹은 ‘본인의 감정을 마주하는 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2. 거짓 고하기


 

물론 거짓을 고하는 것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홀든은 어른이 아닌 어린 학생에 불과하다. 소설에서 홀든이 마주치는 인물들은 홀든이 만나고 싶어 하거나 반대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인물들로 나뉜다.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인물들 중에는 좋은 어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도 있다. 하지만 홀든은 그런 어른들에게서조차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릴리안을 만났을 때도 그렇다. 홀든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건넨다. 하지만 이 작은 거짓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말들이다.

 

홀든은 펜시에서부터 위선적인 행동을 많이 보인다. 스트라더레이터에게 제인에 대해 말했을 때라든가 애클리와 대화를 할 때도 거짓으로 꾸며낸 연기를 하듯 대화를 한다. 홀든의 이러한 위선적인 행동은 펜시를 나오고 나서도 계속 되는데 이러한 행동들은 오히려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재밌는 점은 홀든은 여러 인물을 만나 성장하면서도 동시에 우울감을 떨쳐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장과 우울을 동시에 느끼는 인물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홀든이 수녀를 만났을 때 그는 ‘이래서 내가 수녀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뽐내면서 점심이나 먹으러 가버리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슬퍼지는 것이다.’라며 우울함을 느낀다. 그가 만났던 수녀들은 그가 지금껏 봐온 인물들과 다른 인물상이었다. 그에게 있어 수녀들이란 뽐내지 않고 화내지 않고 사람들을 위하는 진실한 마음을 가진 인물들이다. 홀든은 펜시에서 나온 후 학교에서보다 더한 거짓으로 점철된 사람들을 계속해 마주한다. 어린 아이가 버티기 힘든 세상에서 홀든이 마주한 수녀들은 진실한 마음을 지키고 있는 어른들이었을 것이다.

 

홀든은 매번 여러 상황에서 갑작스레 우울감을 느낀다. 나는 이 그러한 장면들을 읽으면서 홀든의 우울이 공통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했던 ‘거짓’이 그 이유일 것이다. 홀든이 마주했던 세상은,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와 같이 거짓으로 꾸며낸 말을 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홀든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홀든은 그 사람들 사이에서 더 우울함을 느꼈던 것이다. 홀든은 평범하고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홀든이 거짓에서 벗어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3. 가상의 호밀밭


 

홀든이 샐리를 만나고 나서 샐리에게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있다. 지금껏 속으로 생각해오고 감췄던 홀든의 진심을 말하는 장면이다. 그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사람들로 인해 일어나는 일 역시 정말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꿈꾸는 곳에는 사람들이 없고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혹은 그가 사랑하려 노력하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홀든은 누구나 어렸을 적에 꿈꾸었던 상상을 샐리에게 전한다. 이 장면에서 홀든의 진심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리고 싶어 한다. 어린 아이일 때는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살 것이라는 꿈을 한 번씩 꾸곤 한다. 누구나 생각해봤을 평범한 꿈이다. 하지만 샐리는 그러한 꿈을 꾸는 홀든이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샐리는 남들과 비슷한 어른이 되고 나서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말하지만 홀든은 ‘모든 게 변할 테니까.’라며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유일하게 달라지는 게 있다면 우리들일 것이다.’, ‘그저 우리는 늘 변해간다.’라는 문장이 소설에서 나온다. 홀든이 변해간다고 말했던 건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사람들과 그 과정에서 잊어버리는 어릴 때의 진실한 감정, 순수함 같은 것이었을 테다.

 

그가 우울감을 느끼지 않았을 때는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아이의 모습을 봤을 때였다. 정확히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다. 홀든은 호밀밭을 떠올리며 그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을 상상한다. 그는 어린 아이들이 나오고 그런 아이들이 위험할 때마다 도와주는 본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모습에서는 위선적인 모습도 볼 수 없고 그저 순수하기만 한 홀든의 모습만 볼 수 있다. 우울감을 느낄 수 없는 곳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호밀밭일 뿐이다. 그는 피비를 떠올리고 앨리를 떠올릴 때 행복을 느끼고 진실한 감정을 마주한다. 집에 몰래 들어오고 나갈 때 ‘어떻게 보면 날 붙잡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라고 생각한 이유는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을 해 본인에게 관심을 주고 어린 아이로 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홀든은 술집에서 술을 시키며 어른 같아 보이려 행동을 꾸몄지만 결국에 그가 원했던 것은 어린 아이로 남아 순수한 꿈을 꾸는 것이었다.

 

결말부에서 홀든은 이야기에 언급했던 사람들이 그리워졌다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홀든 또한 변했다고 생각했다. 홀든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는 전과 같은 어린 아이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결말부에서 홀든은 변하는 중일 것이다. 어린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누군가는 ‘성장’이라 부른다. 어쩌면 홀든은 이 성장을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거부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여러 사람들과 마주하고 대화를 나눈 이상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저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 읽은 후에야 깨달았다. <호빌밭의 파수꾼>은 어린 아이가 성장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모습을 담아낸 소설이다. 홀든이 어떤 식으로 성장했든 홀든이 겪었던 2박 3일 간의 이야기는 그의 성장을 돕는 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김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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