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통을 통해 이겨낸 게임 - 이미테이션 게임 [영화]

아무리 아름다운 세상이라도 소통 없이는 무용하다
글 입력 2024.06.1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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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AI 기술 전쟁의 시대다. 지난 6월에는 야구 경기에서 인공지능이 심판을 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AI가 게임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됐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한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중이다.

 

우리 삶에서 인공지능이 차지하는 분야가 점차 넓어질수록 앞으로 도래할 미래에 관해 다소 뻔하지만, 꼭 필요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바로 ‘그 미래에 상호 간 소통은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다. 야구 경기에서 인공지능 심판의 존재는 꽤 객관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오판이 났을 때 선수와 심판 간에 소통이 이뤄지고, 이를 통해 문제 해결로 나아가는 ‘인간적인’ 장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호 간 대화는 우리에게 왜 중요한 걸까.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을 보며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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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게임>은 히틀러의 유럽 침공이 이뤄지던 제 2차 세계대전 속, 이에 맞서 싸운 수학자 앨런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학, 암호, 공식, 기계 부품들로 가득한 영화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필자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앨런이 주변과 소통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당신한테 바라는 건 진정성이에요.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것.

 

 

앨런이 해야 할 일은 독일군의 암호인 ‘애니그마’를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연구 과정에서 동료들을 철저히 도외시해버린다. 앨런은 작업실 사용, 연구 과정, 혹은 밥을 먹을 때조차도 주변과 소통하지 않는다. 혼자서 풀어낼 리 만무한 암호의 연속 속에서 그는 기계와 단둘이 외로운 사투를 벌일 뿐이다. 그는 직접 개발한 암호 해독 기계인 ‘크리스토퍼’에 관해 비판을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그의 의견을 동료들에게 관철하지도 못한다. 비판도 설득 능력도 부족한 그의 소통 방식은 팀 전체에서 그를 고립시키고, 연구 결과 역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해당 장면을 보며 책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2011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애덤 리스’는 본인의 수상 이유로 팀원들과의 신뢰와 소통을 꼽았다. 그에 따르면 연구에 있어 문제를 발견할 때 비판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한사람이 모든 부분을 담당해 100퍼센트 결과를 도출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이란 곧 소통으로 진행되며, 이는 비판에 노출될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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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앨런이 끝까지 비판도 설득도 포기한 채 혼자 일하기를 고집했다면 어땠을까. 잠시 대화할 동료 하나 없이 기계들에 둘러싸여 일하는 고독한 풍경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지 생각해보자. 정확한 기계의 지시에 따라서 보다 쉽게 결과에 이르렀을지는 모르나 그 결과의 의미나 해법 도출 과정에서의 성장은 존재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그는 동료 조안의 조언을 받아들여 점차 동료들과 가까워진다. 그렇게 형성된 인간관계는 그의 연구에 가속도를 붙이고, 가끔은 친구들과 웃고 농담도 하는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준다. 기계에 대한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고,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충분히 설득하는 과정 역시 거치게 된다.

 

또한 그는 기계 설정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역시 펍에서 만난 헬렌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다. 이는 문제에 관한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타인과의 소통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가 잘 안 풀릴 때는 카페도 가고 산책도 좀 하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닌 셈이다. 때로는 그런 새로운 공간에서의 우연한 만남, 우연한 소통이 예상치 못한 생각을 하게끔 돕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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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앨런의 변화는 단순히 주변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로도 확장된다. 전쟁상황에서 자칫하면 수천 명의 민간인과 병사들을 잃을 뻔한 엄청난 사고를 막는 것. 깊은 애국심과 옳은 일이라는 믿음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일 같으나 영화 초반의 앨런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왜 국가를 위해 일하고 싶냐는 상사의 물음에 뻔뻔하게도 그러고 싶지 않다고 주장한다. 영화 초반 앨런이 애니그마를 해독하는 작전에 지원한 유일한 목적은 오로지 수학이었다. 수학적 지식을 통해 암호 해독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을 뿐, 이 거대한 작전이 가진 인류애적 목표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조안, 휴, 피터 등 주변 동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생활에 스며드는 과정을 통해 그의 생각 역시 점차 변화한다. 동료들과의 우정이 결국 사회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수학만이 힘겨운 작전 참여의 유일한 동기였던 이전과 달리, 그는 훗날 이 작전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음을 시인한다.

 

앨런의 수학적 지식은 단순히 암호 해독 기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기계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다. 앨런이 긴 시간 연구소에 틀어박혀 해낸 일은 전쟁을 2년간 단축한 것, 전쟁에서 전사했을지 모를 사람들에게 일상을 선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그가 동료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이뤄냈기에 가능했다.

 

 

[양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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