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SF 히어로물이 그려내는 현실 - 엑스맨 [영화]

글 입력 2024.06.15 19:1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정해진 공식을 뒤엎는 세계관 설정


 

히어로물에는 꼭 지켜져야 하는 규칙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사람들과, 이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악인, 그리고 극적인 순간에 나타나 시민들을 구해내는 히어로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슈퍼맨>, <어벤져스 시리즈> 등 흥행에 성공한 히어로물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공식이다. 그러나 영화 <엑스맨> 시리즈는 이런 통상적인 클리셰를 보란 듯이 뒤엎는다.


<엑스맨> 시리즈의 장르는 SF 히어로물이지만, 이 영화에는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과 다른 능력을 지닌 ‘뮤턴트’만 존재할 뿐이다.

 

 

돌연변이는 인간 진화의 핵심 요소다. 인간을 작은 세포에서 지구상 가장 진화된 종으로 발전시켰다. 그 과정은 매우 느려서 보통 까마득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수백만 년마다 획기적인 진화가 이룩된다.

 


이는 등장인물 중 하나인 ‘프로페서 X’의 내레이션으로 영화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중요한 대사다. 뮤턴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사회에서 돌연변이라고 불리며 저마다 특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가령 ‘진 그레이’는 염력과 텔레파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스톰’은 날씨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까지는 비범한 출생과 초능력을 갖춘 인물이 등장하는 여느 히어로물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엑스맨>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이렇듯 독특한 능력을 지닌 소수의 뮤턴트가 다수의 인간으로부터 괴물 취급을 받으며 차별받는다는 점에 있다. 시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악당을 처단하는 정의로운 히어로의 모습을 해당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이 뮤턴트를 없애기 위한 법안을 추진하거나,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려는 모습만 가득할 뿐이다.

 

 

사진2.jpg

 

 

 

다수와 소수의 대결


 

이 영화의 핵심 골자는 다수의 인간과 소수의 뮤턴트 사이의 대립이다. 인간은 뮤턴트의 능력을 위험 요소로 간주하며 이들을 사회로부터 추방하고자 한다. 물론 돌연변이를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인간도 존재하나, 극소수에 불과하다. <엑스맨> 시리즈에 속하는 총 8편의 영화에는 뮤턴트를 위협하는 다양한 요소가 등장하는데, 이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엑스맨: 최후의 전쟁>에서는 뮤턴트의 초능력을 치유할 수 있는 치료제 ‘큐어’가 등장한다. 돌연변이들은 초능력을 치료하고 평범한 인간이 되거나, 큐어를 거부하는 대신 사회에서 고립되는 두 가지 선택지와 마주한다. 계속된 차별에 무력감을 느낀 뮤턴트들은 초능력을 포기하고 주저 없이 ‘평범함’을 택한다. 반면 큐어에 반대하는 뮤턴트들은 자신의 능력이 치료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 분개한다.


 

넌 치료할 게 없어. 환자가 아니니까.



이 대사에는 사회가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여 주길 바라는 뮤턴트의 마음이 담겨있다. 비현실적인 초능력을 사용하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영화에 묘한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엑스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가 ‘다름의 공존’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사회에는 혐오가 난무한다. 사회가 정해놓은 ‘평범함’의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면 멋대로 꼬리표를 붙이고 편견의 틀 속에 가둔다.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다수와 소수의 대결 구도는 그 역사가 매우 깊다. 다수의 입맛에 맞게 소수를 변형하고 개조하려는 시도는 시대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자행돼왔다. <엑스맨>은 인간과 뮤턴트 사이의 갈등을 통해 현실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모두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획일적인 사회가 아닌, 다르기에 더욱 다채로운 사회로 나아가자는 시대 보편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사진3.jpg

 

 


다양한 인물과 함께 풍부해지는 이야기


 

계속되는 인간의 핍박에 뮤턴트들은 프로페서 X를 필두로 한 ‘온건파’와 매그니토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로 나뉜다. 프로페서 X는 규율과 도덕을 중시하며 인간과 뮤턴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꿈꾼다. 자신이 속한 집단인 뮤턴트를 무시하고 차별하는 인간과의 공존을 목표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 ‘정의롭다’는 평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반면 매그니토에게 인간과 뮤턴트의 공존은 실현될 수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 그는 계속되는 차별에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품으며 인간을 모두 없애자고 주장한다. 이로써 영화는 단순히 인간과 뮤턴트 사이의 갈등뿐 아니라 ‘공존이냐 대립이냐?’를 두고 고민하는 뮤턴트의 모습도 조명한다.


매그니토와 프로페서 X가 체스를 두는 장면은 이들의 가치관 대립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는 어느 액션신보다도 큰 긴장감을 자아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By any means necessary)

 


이는 뮤턴트 탄압 정책을 막고자 하는 매그니토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사로, 강경파 흑인 인권 운동가 말콤 X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의 차별에 대응하는 두 부류의 뮤턴트 집단을 바라보며 관객은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 누구의 희생도 없이 천천히 평화를 되찾고자 하는 프로페서 X와 피를 흘려서라도 당장 자유를 가져오고자 하는 매그니토 사이의 대립은 이 영화의 주요한 관전 요소 중 하나다.

 

 

사진4.jpg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엑스맨>과 유사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개봉하고 있다. 지난 5월 새로운 영화가 공개된 <혹성탈출> 시리즈 역시 인간과 유인원의 대립을 그린다. 해당 작품은 유인원의 압도적인 신체 구조에 위협을 느끼는 인간과 이들의 핍박으로부터 자유를 찾고자 하는 유인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전쟁 없이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는 유인원 ‘시저’와 인간과의 전쟁으로 완벽한 평화를 얻고자 하는 유인원 ‘코바’의 갈등은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를 떠올리게 한다. 6일(목) 시즌4가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투스> 또한 미지의 바이러스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종인 ‘하이브리드’와 인간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이렇듯 <엑스맨>이 사회를 향해 외쳤던 ‘다름의 공존’은 오늘날까지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제인 것이다.

 

 

사진5.jpg

 


<엑스맨>을 관람하며 관객들은 인간이 아닌 뮤턴트를 응원한다. 그러나 과연 현실 속에서도 이들은 다수가 아닌 소수를 응원하는가? 나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우리에게는 혐오와 관용의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를 편견의 틀에 가둔다면 현대 사회는 혐오와 증오만으로 가득 차고 말 것이다.

 

 

[양진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