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없는 노출의 시대에서 사라지는 선택에 대하여 [도서]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 - 아키코 부시
글 입력 2024.06.1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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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줄근한 상태로 밖을 나섰을 때,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에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든 경험이 있나요? SNS 게시물로 셀카를 올린 후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과 게시물을 확인한 사람의 리스트를 몇 시간이고 확인한 경험이 있나요? 버스에서 정차 벨을 누를 때, 커피숍이나 도서관을 들어갈 때,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또 평가하는 시선을 느낀 적이 있나요?

 

이렇듯 우리는 하루 24시간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상태’로 존재합니다. 실제로 누군가 나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심지어는 아주 능동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남들에게 공개합니다. 하지만 남들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은 터무니 없이 부족하기만 할 겁니다. 우리는 ‘보여지는 나’가 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 마음의 일부분을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많은 시간을 공들여 화장을 하고, 유명한 셀러브리티가 입은 옷을 찾으려 구글이라 불리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몇 시간이고 헤엄쳐야 하죠. 불필요한 질투나 불안감도 잊지 않습니다. 정체성 유지를 위한 사생활 노출은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것만 같습니다. 소셜 미디어 게시물은 마치 우리를 박제한 액자인 셈입니다.

 

‘보여지는상태’가 이러하다면, ’보이지 않는 상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상황에 따라 ‘보이지않는다’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숨는 것일 수도 있고,  더욱 개성있는 나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통일된 의견 속에 녹아들어 대중과 획일화된 상태일 수도 있고,  나의 의견을 더욱 큰 목소리로 피력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에서 작가 아키코 부시는 ‘보이지 않는 상태’의 양가적인 의미 중, 값진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한 상태인지를 말입니다.

 

[보이지 않게 되는 건 품위와 자기 확신의 표시가 될 수도 있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충동은 자기 만족적인 고립이나 무의미한 순응이 아니라 정체성,  개성,  자율성,  목소리지키기와 관련이 있다.] - p. 23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되지만, 금방 홀로서기로 확장되고,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 p. 42


자연계에서 ‘눈에 띄지 않는’ 상태는 굉장한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다른 새나 사물의 소리를 따라할 수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금조나 낙엽처럼 보이는 브라질의 나비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위장하기와 흉내 내기가 돋보이는 생물의 좋은 예시입니다. 작가 아키코 부시는 이 생물들이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주변과 공존하면서 어울리는 능력’을 가진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들의 머릿속이나 마음에 어떠한 인상을 남기지 않고 주변 환경에 녹아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지요. 이와 함께 엘리자베스 셔먼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존재하지만, 나를 의식하지는 않아. 모든 걸 알고 있지만, 그것의 일부가 되지.” ‘보여지지 않는 삶’이란 정확히 이 문장같지 않을까요?

 

[가장 감동적인 경험을 할 때 우리 자신이 작아진다고 느낄 때가 너무 많아 놀랍다. 작은 물방울 같은 각자가 모여서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연대감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 우리 자리를 찾으려면 먼저 그 자리를 잃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우리에게는 이렇게 드러나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하는 환경을 헤쳐 나가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다.] - p.332

 

저는 사랑하는 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멋진 문학 작품을 감상할 때, 거대하고 압도적인 무언가를 두 눈으로 바라볼 때, 진심을 가득 담은 편지를 쓸 때, 자신의 존재를 잊고 흠뻑 빠져들곤 합니다. 이런 시간들은 저만의 ‘자르댕 시크레(비밀 정원)’에 살고있는 노출되지 않은 경험들 입니다. 노출되지 않은 경험들은 그 자체로 고귀한 성질을 지닙니다. 끊임없는 감시로 인해 사생활이 사라져버린 이 시대에 공개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경험들이란 신비하고 매혹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작가 아키코 부시의 말처럼 이 내면의 경험들은 제 안에 고독한 연대감을 만들어 줍니다. 언제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는 안정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내가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때 나의 존재를 순수한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말이 어떤 이야기보다 명료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나요. 물론 보여진다는 것, 즉 타인의 관심이나 인정은 우리 삶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시간, 사랑, 우정, 자존감, 건강한 마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보이는 것’ 이상의 진실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국의 작가 G. K. 체스터턴은 “당신의 자아가 작아질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은 얼마나 커질까? 당신은 멋진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에서 더 자유로운 하늘 아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나에게 녹아들어 이 세상에서 사라져봅시다.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완전한 투명감을 느껴봅시다. 내가 집중하는 대상과 나, 둘만이 존재하는 우주를 말입니다.

 

책 <존재하기 위해 사라지는 법>에서 아키코 부시는 바다, 자연, 심리학, 물리학, 사회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지 않는 것’의 미덕과 그들의 강력한 존재를 보여줍니다. 그녀의 다정한 위로가 담긴 책을 읽으며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사라져 보는 건 어떨까요?


 

[김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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