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계 안에 사람 있어요 - 연극 <be인간>

연극 <be인간>을 통해 알아보는 키오스크의 인간 도전기
글 입력 2024.06.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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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띠리리리리리리~’


자판기 안에서 직접 커피를 만드는 유재석은 어설프게 기계의 목소리를 따라하며 주문을 받는다. 주문을 접수한 그는 곧바로 믹스 커피를 제조하고, 박명수는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따분해하지 않도록 트럭 후진 노래로 유명한 <엘리제를 위하여>를 흥얼거려준다. 커피를 가져가는 손님에게 손을 쑥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것은 박명수만의 시니컬한 팬서비스. 과거 방영된 무한도전의 대체 에너지 특집편의 내용이다. 연예인이 커피 자판기에 들어가 기계 대신 커피를 만든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호평을 받은 에피소드인데 방영된 지 17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추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당시에 –그리고 유튜브의 저력으로 지금까지도- 큰 웃음을 안겨주었던 회차다. 당시에는 사람이 기계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설정이 대체 에너지를 홍보하기 위한 것으로만 비춰졌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현대의 시선에서 해당 설정의 의의를 반추해본다면 꽤 기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기계는 오랜 과거부터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었고, 그 침투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어떻게 기계를 대체할 수 있는지 반문이 가능하다. 맞다. 기계는 사람을 대체하기 위해 탄생되었기에 사람이 기계를 대신하는 것은 예능에서나 볼 수 있는 역설이다. 그러나 문장을 이렇게 바꾸면 말이 된다. 

 

‘사람 같은 기계가 기존의 기계를 대체한다.’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시의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17년 전 예능에서 자판기 안에 들어간 사람이 했던 말.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라는 문구는 집 주변 햄버거 가게에 들어가 키오스크 화면을 터치하면 기계가 직접 읊어주는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어린 아이를 성우로 썼는지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무성의한 태도의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현대의 기계는 키오스크라는 형태로 인간에게 질문하고, 인간은 그것의 화면을 바라보고 대답한다. 현대인이 마주보는, 철로 된 네모 상자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다면, 그것은 기계인가 사람인가. 사람이 들어가 있는 일이 예능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기계 속에 인격을 지닌 AI가 탑재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철학과 논증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가설의 연쇄를 즐길 수도 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한- 벌써부터 엉덩이를 떼고 싶어 근질거릴 것이다. 그러나 예술은 이렇게 따분한 고민을 흥미로운 형식으로 승화하는 특성을 지닌다. 한 연극과 함께 이 주제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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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예술인들의 축제, 놀터청년페스티벌의 참가작 be인간은 의인화된 키오스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의 특성을 지닌 비인간에 대해 이야기한 연극이다. be인간에서는 AI 윤리, 기계의 인간 대체로 인한 피해 같은 무거운 이야기는 표면에 다뤄지지 않는다. be인간은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해 인간이 기계의 노예로 살게 된다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염려를 비웃듯 그저 콘센트와 키오스크가 함께 춤을 추고,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출하며, 육체가 없기에 고뇌하는 모습을 그려낼 뿐이다. be인간의 기계들은 인간을 위한 도구적인 기계의 역할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만, 언젠가 그들의 마음에 인격이 자리 잡게 된다. 인격은 자연스럽게 욕망을 부르게 되고, 욕망은 곧 욕심이 된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피어난 기계. 즉, 욕심을 지닌 기계의 결말.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달하는 현실을 예측한 것인지, 혹은 섣부르게 예단한 것일지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인간 흉내를 내는 키오스크를 사람을 보아야 하느냐고, 인격을 지닌 기계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주어야 하냐고 물으면 나는 여전히 답할 수 없다. 그러면 예술이 고찰에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하겠지만, 무거운 주제를 유미적으로 형상화했다는 것에서 소임을 충분히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유재석이 들어가 어설픈 기계음을 내는 자판기가 십수 년이 지나 키오스크로 세상에 나타난 것처럼 be인간의 사람을 사랑하게 된 키오스크가 미래에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극을 본 이들은 인간을 흠모하게 된 녀석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등장했을 때 그들을 경계하지 않고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을까. 이것이 문화예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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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터청년페스티벌의 참가작 be인간은 연출, 작, 배우. 모두 청년 예술인들로 구성된 연극이다. 심지어 디자인 능력이 있는 배우가 직접 홍보디자인을 맡기도 해 청년의 다재다능함을 뽐내기도 했다. 청년이라면 흔히 열정, 도전과 같은 키워드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청년들을 수식하기에는 그 정도 단어로는 부족하다. 배우들의 절제된 대사 톤은 무대 공간을 적절하게 채워 완숙미를 자아냈고, 극본과 연출은 인격을 가진 기계라는, 이입하기 힘든 존재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청년 연극인들의 가능성을 증명해낸 연극 be인간은 지난 5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놀터청년페스티벌은 여러 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어있고 현재 연극 <운명을 믿으세요?>가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다. 연극을 좋아하고 청년의 생생한 목소리, 시선, 생각을 느끼고 싶다면, 놀터청년페스티벌의 공연을 추천한다. 예매 기간을 놓쳤어도 괜찮다. 6월 말과 7월 초에 연극 <미스줄리>, <스틸드림투나잇>이 연달아 공연을 올릴 예정이니 여름이 끝나기 전, 청년 예술인과 함께 고민을 공유하고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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