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10번의 ‘3분’,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점치는 시간 [공연]

국립국악관현악단 ‘2022 이음 음악제’ 중 《3분 관현악》을 보고
글 입력 2024.06.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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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분 관현악_포스터.jpg

 

 

2019년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김성진) 관현악시리즈의 하나로 공연된 《3분 관현악》이 3년 만에 돌아왔다. 2022년 9월 30일 ‘이음 음악제’의 폐막 공연으로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2022 3분 관현악》은, MZ세대 작곡가 10명의 ‘짧고 강렬한’ 국악관현악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인 시간이었다.

 

짧은 작품들이 한 무대에 오른 시간은 곧 여러 작곡가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관현악 공연에서는 작품당 연주 시간이 10~15분 정도 소요되므로 4~5명의 작곡가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3분’이라는 제목에서 직관적으로 나타나듯 《3분 관현악》에서는 작품당 시간이 파격적으로 단축되어, 한 번의 공연에서 서로 다른 작곡가 10명과 그들의 특색이 담긴 관현악 작품 10곡을 만나볼 수 있었다.

 

 

 

1. 10번의 ‘3분’, 각양각색의 작곡가들과 만나다

 

공연은 국립창극단 박성우 단원의 우렁차고 강인한 소리로 시작된 강한뫼 작곡가의 <교향적 창곡 ‘폭포’>로 막을 올렸다. 이어서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의 <구름정원>은 서양음악 작곡을 전공한 엄기환 작곡가가 자신에게 미지의 세계였던 국악을 통해 구름 너머 세계에 대한 동심을 신비로운 느낌으로 풀어낸 곡이었다. 세 번째 순서로 연주된 공혜린 작곡가의 <서울의 밤>은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한 후 돌아가는 길에 마주하게 되는 서울의 밤 풍경과 그 속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따뜻하면서도 활기차고 역동적인 선율들로 그려냈다. 독특한 제목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최한별 작곡가의 <유니뻐스(UniBus)>(‘Universe’와 ‘Bus’의 합성어)는 우주여행 안내서와도 같은 프로그램의 해설을 참고하며 작곡가의 상상력에 푹 빠져들어 감상할 수 있는 곡이었다. 뒤이어 연주된 손일훈 작곡가의 <윷놀이 ‘모 아니면 도’>는 연주자들이 두 팀으로 나뉘고 대금·피리 연주자가 각각 ‘말’과 ‘윷’ 역할을 맡아, 연주로써 윷놀이를 진행하는 형태의 작품이었다.

 

여섯 번째 작품은 백유미 작곡가의 <빗소리>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다가 세차게 소나기가 내리고, 다시 땅이 더욱 단단하게 굳는 ‘우후지실(雨後地實)’의 과정을 담은 곡이었다. 이어서 채지혜 작곡가가 바다 풍경이 달라지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감정 변화를 그려낸 <감정의 바다>와 지성민 작곡가가 국악의 특징 중 ‘헤테로포니(heterophony)’를 주제로 삼아 작곡한 <나무의 결>이 연주되었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관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이재준 작곡가의 <辛라면 협주곡 ‘라면’>은 라면을 조리하는 과정을 음악화한 곡으로, 가야금 연주자 박소희가 라면을 조리하는 과정을 선보이는 ‘라면 협연자’로 나서 유쾌함을 더했다. 마지막 열 번째 순서로는 살아있는 자연과 생명의 기운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홍민웅 작곡가의 <화류동풍>이 연주되었다.


10개의 작품 중에는 공연의 기획 의도에 부합한다고 생각된 곡도, 그렇지 않은 곡도 있었는데, 그러한 판단의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기본적으로 국악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음악 어법으로 풀어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국악’관현악 공연에서 당연히 충족되어야 하는 요소이면서도 자칫하면 간과될 수 있는 부분이다. 단순히 국악기를 ‘사용’해 작곡 및 연주되는 ‘국악기’ 관현악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국악’ 관현악곡이 본 공연의 기획 의도에 알맞은 작품일 것이다. 둘째로는 ‘3분’, 즉 ‘짧은 길이’라는 틀이 제시된다고 해서 완전히 색다른 시도를 하는 것보다, 작곡가 자신이 본래 갖고 있던 음악적 정체성과 고민을 짧은 시간 안에 농축해서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편이 기획 의도를 잘 살린 좋은 작품이라 판단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작곡가가 공연 기획 취지를 제대로 읽어내었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손일훈의 <윷놀이 ‘모 아니면 도’>와 지성민의 <나무의 결>이었다. 먼저 <윷놀이 ‘모 아니면 도’>의 경우, 겉보기에는 놀이 형식이라는 점으로 인해 재미와 상품성에 치중한 성격의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지 《3분 관현악》을 위해 구상된 작품이 아니라, 작곡가가 기존에 ‘음악적 유희 시리즈(Musical Game Series)’로 선보이던 형태의 음악을 짧게, 국악관현악으로 풀어낸 것이다. 또 작곡가의 ‘음악적 유희 시리즈’에 속하는 다른 작품들은 3분보다 훨씬 길게 작곡되었듯, 이 곡 역시 길게 편곡되어 다양하게 확장‧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추가로,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곡은 표면적으로 국악의 여러 특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곡가가 만든 선율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즉흥 연주가 가미된 음악이라는 점에서 ‘즉흥성’이, 윷놀이의 상황에 따라 대금 연주자가 “잡는다”·“업는다”·“난다” 등으로 선창하면 타악기 연주자가 후창하면서 그에 따른 리듬을 연주하는 점에서 ‘선후창 방식’이, 그리고 대금 연주자의 선창에 맞춰 관객이 같은 구호를 외치도록 한 점에서 ‘추임새’와 유사한 관객의 공연 참여성이 드러났다.

 

두 번째로 지성민의 <나무의 결> 역시 《3분 관현악》의 기획 취지를 만족하는 좋은 작품이었다. 작곡가는 서양음악과 차별화되는 국악관현악의 특징으로 ‘헤테로포니’적인 소리 구조를 꼽았고, 이를 ‘인위적 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의 왜곡-확대-축소 등을 담았다. 국악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자신만의 해석 및 음악 어법으로 풀이하려는 노력이 보인 부분이었다.

 

이와 함께, 작곡가는 기존에 본인이 갖고 있던 음악적 지향점을 놓지 않았다. <나무의 결>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콘셉트를 토대로 한” 작품이며, “왜곡과 변형 속에서도 어떤 면에서는 ‘자연적인 결합’의 특징을 유지하려 했는데, 특히 이 지점은 작곡가가 어떤 악기나 앙상블을 위해 곡을 쓰더라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중 하나다.”라는 설명이 그 근거가 된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은, 손일훈·지성민 작곡가 둘 다 서양음악 전공자라는 사실이다. 《3분 관현악》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들이 국악관현악과 만날 수 있었을까? 가능성은 있지만, 국악관현악의 발전을 주도해 온 대표 단체 중 하나인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국악 애호가’들에게 그 음악을 선보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3분 관현악》은 서양음악 작곡가들이 국악과 만날 수 있는 일종의 ‘등단 플랫폼’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2. 《3분 관현악》, ‘작곡가 발굴’과 ‘기획’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다


 

한 번의 공연에서 10명의 작곡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3분 관현악》에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키워드가 ‘3분’보다도 ‘작곡가’임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3분 관현악》의 기획 의도는 한정된 공연 시간을 최대한 다수의 젊은 작곡가들에게 분배해 그들이 국악관현악 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개성의 작곡가 여러 명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자리는 관객에게도, 관현악단에게도, 작곡가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다.

 

특히 2019년의 《3분 관현악》에서 국악계를 중심으로 활동한 작곡가 10명이 선정되었던 것과 달리, 《2022 3분 관현악》에서는 국악뿐만 아니라 양악 분야에서 활동하던 작곡가들이 국악관현악계로 초청되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기존에 국악계에서 활동하던 작곡가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국악관현악을 시도할 기회를 부여하는 한편, 양악계에서 활동하던 작곡가들에게는 ‘국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설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다.

 

 

2019 3분 관현악_포스터.jpg

 

《3분 관현악》이 여타의 신진 작곡가 발굴 프로그램과 비교하여 지니는 차별성은, 단순히 작곡가를 선정해 작품을 위촉하고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기에 ‘3분’이라는 참신한 ‘기획’의 옷을 입혔다는 점이다.

 

국악관현악은 1964년 창단된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부설 국악관현악단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6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간 악곡의 주제와 음악적 내용, 작곡 기법 등의 면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져 왔지만, 가장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는 ‘곡의 길이’ 면에서는 작곡가 대부분이 10~15분 내외를 고수해 왔다. 그러나 《3분 관현악》은 이러한 기존의 관습을 완전히 뒤집는 발상을 제시하였다는 의의가 있다.

 

또한, 이러한 기획은 현대의 문화적 흐름 및 소비 방식, 즉 숏폼(short-form) 콘텐츠를 선호하는 트렌드와 닮아있다. 오늘날 ‘짧음’은 각종 콘텐츠의 미학으로 여겨진다. 틱톡(TikTok), 유튜브 쇼츠(Shorts), 인스타그램 릴스(Reels) 등 ‘짧음’을 내세운 SNS 콘텐츠의 인기와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튜브에서는 ‘1분 미만’, ‘5분 예능’ 등 많은 내용을 짧은 시간 내에 압축해서 전달하는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느린 사색과 사유에 잠기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매체인 책조차, 분야를 불문하고 너도나도 ‘하루 1페이지’와 같은 키워드를 제목에 넣어 소비자의 주의를 끌고자 한다.

 

이렇게 수많은 짧은 콘텐츠가 유행하는 가운데에도 여전히 “짧은 것은 긴 것보다 내실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라는 통념이 있다. 그러나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짧다’가 ‘깊이 없다’는 뜻으로 통용되던 시대는 지났”음을 《3분 관현악》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고자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기존 국악관현악이 지니는 무거운 이미지를 탈피하여 국악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음악평론가 윤중강은 “관현악단은 기획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국악관현악계에 일침을 가한 바 있다. “악단마다 기획을 보강해야” 하며, “더 이상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의미한 자기복제만을 지속하는 작곡가에게 계속 작품을 위촉한다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하므로 “작품 위촉에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는 지적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3분 관현악》은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곡가 발굴’과 ‘신선한 기획’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3. 《3분 관현악》으로 본 국악계 창작 지원 현황과 미래


 

국악은 양악과 비교하여 전통적으로 레퍼토리의 수와 다양성이 매우 부족하고, 예술가의 대부분이 내국인으로 한정되는 특성상 활동 인구가 현저히 적다. 따라서 국악계에서 잠재 가능성을 지닌 뛰어난 창작가를 발굴 및 양성하는 작업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며, 그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현재 국악계에서는 각종 기관마다 신진 창작가 양성을 위한 활발한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국립극장에서 2022년부터 ‘가치 만드는 국립극장’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작창가 프로젝트(국립창극단), 안무가 프로젝트(국립무용단), 지휘자 프로젝트(국립국악관현악단)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서는 2019년부터 지휘자·협연자·작곡가 등 신진 예술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청춘, 청어람>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그 결과물을 기획공연으로 선보이고 있으며, 무용단에서도 안무자 육성 기획공연 <춤, 심보심작尋寶心作>을 무대에 올렸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3분 관현악》 역시 이러한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움직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얼핏 보면 ‘3분’이라는 확실한 표제를 내세워 작품의 특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듯싶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세미 ‘작곡가 프로젝트’라고 명명할 수도 있겠다. 맛보기(?) 식으로 관객에게 작품을 선보이며 반응을 살핀 후 작곡가들과의 후속 작업을 이어나간다는 점은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와도 유사하다.


한편 작곡가뿐만 아니라 관현악단에게도 《3분 관현악》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본 공연의 위촉 작곡가들은 프로그램 디렉터인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과 송현민 음악평론가에 의해 선정되었는데, 모두 현재 국악 또는 양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역량을 인정받아왔다. 따라서 이러한 새로운 작곡가들과 악단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은, 이들의 협업 및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한 네트워크 형성을 가능케 함으로써 악단의 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리라 기대된다.


2019년의 《3분 관현악》에 이어 《2022 3분 관현악》에서도 차세대 국악관현악을 이끌 새로운 작곡가들을 만남과 동시에 국악관현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만남이 단발성 이벤트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극장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작곡가들이 작품을 발전시켜 더욱 긴 분량과 깊이 있는 호흡의 작품들이 나올 수 있도록, 위촉의 기회 제공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또 향후 《3분 관현악》 형식의 공연이 계속될 경우, ‘3분’이라는 분명하고 매력적인 표제가 단지 관객을 일회성으로 모으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나 전략으로 전락하지 않고 초기 기획 의도와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국악계에서 《3분 관현악》처럼 신진 예술가 양성 프로젝트에 다양한 기획의 옷을 입히는 시도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최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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