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합리적 의심’이 쏘아 올린 작은 공_극단 산수유 <12인의 성난 사람들> [공연 리뷰]

글 입력 2024.06.14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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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우리는 이 사회의 법을 만들고 규칙을 만든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부친 살인 혐의로 기소된 한 소년의 재판에서, 8번 배심원의 합리적인 의심과 논리정연한 반론으로 나머지 11명의 배심원이 처음의 성급한 유죄판결로부터 점차 생각을 바꾸게 만드는 내용이다. 연극은 극단 산수유 대표인 류주연이 연출을 맡았으며, 대학로 민송아트홀 2관에서 5월 1일부터 26일까지 공연되었다.

 

비좁은 소극장 무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 여러 개, 무대의 뼈대가 모두 보이는 열악한 환경, 그 위에서 연기하는 13명의 배우는 등퇴장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에 머문다. 별다른 조명이나 음향은 없으며 비좁은 의자에 모여 앉아 연극을 보는 게 전부다. 더운 여름날, 후덥지근한 실내에서 손으로 부채질하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상황과 관객들의 상황은 다르지 않고 오히려 같은 환경에서 이야기에 몰입하게 하였다.

 

무대가 시작되고, 무대 위로 12명의 배심원과 1명의 경비원이 들어온다. 모두가 각자 삶의 배경과 가치관이 있으며, 가장 중요한 발언과 판단의 ‘자유’라는 인간의 권리를 갖고 소년의 사형 집행 판결을 위한 투표를 시작한다. 앞서 재판에서 제시된 확실한 증거 자료들을 바탕으로, 당연히 유죄로 빠르게 판결될 줄 알았던 투표는 한 명의 반대로 멈칫하게 된다. 스코어는 11:1, 처음으로 무죄를 주장한 사람은 8번 배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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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희곡은 레지날드 로즈가 쓴 극으로, 연극으로 초연된 공연이 1957년 <12 Angry Men>으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역사상 위대한 영화로도 꼽히는 희곡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공간에서 12명의 배심원이 자신의 논지를 펼치고 상대방을 설득해 가는 내용이 주를 이루며 별다른 내용 전개 없이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구조는 별다른 무대 장치가 필요 없으며,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즉 텍스트에 집중해 봐야 하는 연극이라고 볼 수 있다.

 

시놉시스 또한 11:1의 스코어에서 8번 배심원이 이 판결에 대해 가진 회의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근거를 찾아 점차 사람들을 설득해 나가고, 결국 1:11, 그리고 무죄로 판결이 나는 뻔한 스토리이다. 따라서 관객들이 좀 더 무대와 가까운 거리에서 몰입할 수 있는 소극장 무대는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카메라의 기법이 없고 관객이 무대 전체를 볼 수 있는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에 맞추어 배우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조명 효과나 음향 효과는 보이지 않았으며, 앞을 의식하고 이야기하는 무대 구조는 오히려 작품을 산만하게 하는 방해 요인이 되었다.

 

원작의 스토리가 너무 강한 탓인지, 극단 산수유의 작품은 작품의 별다른 재해석 없이 극을 재현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에서는 배심원의 성별이 모두 남자인 것에 반해, 몇몇 배심원들을 여성으로 바꾸었다는 점 말고 별다른 차이점이나 특색은 발견할 수 없었다. 배심원 각각 맡은 역할이나 가진 배경에 맞춘 캐스팅은 잘 어울렸으나, 배우들의 연기는 뒤로 갈수록 이성으로 통제한다기보다 연기에 지쳐 투정을 부리는 투로 들렸다. 이는 작품 전반적으로 연기의 질을 떨어트렸으며, 구성에 맞게 연기의 톤을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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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인의 성난 사람들> 연극이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에 담긴 메시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가진 편견과 이로 인한 부당성에 다소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8번 배심원이 주인공이 되어 무죄라는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펼쳐나가 11명의 배심원을 설득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극의 주인공은 없으며, 8번 배심원은 그저 이 토론에 진지하고 진중한 자세로 임하며 이 소년이 유죄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의심한다. 그의 이러한 진지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갔으며, 모두가 진지한 태도로 대화에 참여하고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무죄라는 판단에 나아가는 과정에서 배심원 간 사고방식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모두가 각자의 가치관을 가지고, 무죄라는 판결에 설득당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8번 배심원이 제시한 근거에 동의하거나 의심해 봐야겠다는 판단이 선 사람, 그저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 사람, 판결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 그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사람, 합리적인 근거에 설득당하는 사람 등 12명의 배심원이 무죄 판결로 나아가는 과정은 편견과 왜곡이 가질 수 있는 현대 사회의 비가시적인 권력을 재조명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를 연상케 하며 민주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내비친다.

 

하지만 연극이 아닌 60년 전에 구성된 상황과 인물로부터 이러한 작품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희곡의 비중이 너무 크다는 점을 문제로 한다. 극단 산수유는 원작의 톤과 분위기, 대사 내용까지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똑같이 활용한다는 점은 현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쉽다.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나 가·무·악 일체의 창작극으로 변형하거나, 극 중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한 등장인물의 상세한 배경설정 등이 덧붙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다.

 

또한, <12 Angry Men>의 원작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는 민주주의 사회에 내제된 편견과 사실의 왜곡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의 빈민층 계층과 이민자 등의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와 사회 배경까지 담는다. 이로써 사회의 계급 차이가 빚어온 계층 간의 가치관 차이가 두드러지며, 이를 통해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배경 설정을 현시대에서 소외당하는 계층에 주목할 수 있는 내용으로 재구성하여 이 극단만의 차별성을 둘 필요가 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외, 편견, 그리고 차별은 많은 사람들이 겪는 부당함이며, 민주주의에 내제된 하나의 폭력 구조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결국 1:11에서 12:0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권력’, 그리고 ‘합리적 의심’은 믿을 수 없는 정보가 만연한 정보 사회에서 은연중에 형성된 권력에 굴복당하지 않고 합리적인 의심을 통해 좀 더 정당하고 합리적인 결론으로 나아가야 함을 상기한다.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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