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히로인의 조건 [영화]

글 입력 2024.06.1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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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나날들을 보내는 존재감 0%의 주부 스즈메와 무엇을 해도 행운이 따르는 그녀의 친구 쿠자쿠. 하지만 어느 날 전봇대에 붙어 있는 손톱만 한 크기의 스파이 모집 공고를 찾으며 스즈메의 일상은 달라지는데…’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서 히로인을 꿈꾸는 스즈메가 스파이가 되며 겪는 현실 속 비현실적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주인공학개론


 

하나의 서사는 단순한 줄거리가 아니다. 구성의 뼈대가 되는 플롯을 비롯하여 다양한 설정을 가진 인물, 배경, 시점 등이 조화를 이루는 덩어리로서 텍스트 기호 이상의 복잡함을 가진다. 이때 개연성을 잘 갖춘 서사는 읽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한다. 같은 이야기를 접해도 누군가에겐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읽힐 수도 있다. 그만큼 서사란 받아들이려는 이에게 열린 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개는 작가가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제시하며 해석의 가능성을 남기는 이야기의 수용성에 관심을 두기도 한다.

 

그렇다면 서사에서 가장 중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배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고, 플롯이 없다면 모든 요소가 둥둥 떠다니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공통적으로 필요로 되는 것은 서술자가 되는 ‘인물’이다. 인물이 있는 공간이 곧바로 배경이 되고, 인물이 헤쳐가는 사건들이 모여 플롯이 되기 때문이다. 픽션 속에서 구체적인 설정값을 가지는 캐릭터는 있을 법 하지만 비현실적인 존재로 이야기 속에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소설가 김영하는 한 방송에서 사랑받는 주인공 캐릭터의 조건으로 다음 3가지를 말한다.

 

1. 충분한 고통을 받을 것

2. 분명한 목표를 가질 것

3. 적어도 한 번의 기회가 다가올 것

 

이 모든 조건이 갖추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주인공의 서사에 몰입하고 응원할 수 있다. 이를 미루어 보아 ‘무결점의 완벽한 주인공이 어떠한 굴곡도 없이 왕자님/공주님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의 평면적인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흥미가 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주인공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받으며,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희박한 확률로 다가오는 기회를 잡아 성장하는 서사에 목말라 있다.

 

 

 

#참새와 공작새 – 내 친구 안타고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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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의 단순한 일상. 오늘도 나를 반겨주는 존재는 우리집 거북군밖에 없다. 그래도 오늘은 동네친구 쿠자쿠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와 나의 최애라멘집을 갔다. 얘는 매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따금 연락이 와서는 약속시간도 제대로 안 지키지만 미워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왜 그런사람 있지 않은가, 뭘 해도 일이 술술 풀리고 하는 선택마다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는 히로인같은 사람. 나 같이 적당한 사람과 적당히 결혼해 거북이 밥이나 주는 주부로 살아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닌 척 했지만 사실 그런 쿠자쿠가 항상 부러웠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산부인과 동기로 태어났지만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태생부터 정해진 운명처럼 이름부터가 그랬다. 참새라는 뜻을 가진 내 이름 스즈메, 공작새라는 뜻을 가진 내 친구 쿠자쿠. 누구는 자신을 마음껏 뽐내며 사랑받는 공작새인데 왜 나는 볼품없이 작고 힘 없는 참새인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 존재감이 그렇게 희미한가?

 

위에서 말한 사랑 받는 주인공의 3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서사를 더욱 강화할 방법은 주인공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의 적대자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를 이야기 속에 심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스즈메에게 안타고니스트는 쿠자쿠라고 할 수 있다. 적대자라는 용어 때문에 안타고니스트가 절대적인 악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확히는 주인공에게 목적의식을 갖게 하는 타인이다. 따라서 쿠자쿠는 스즈메에게 고통을 받게 할 촉매제이자 이상향 그 자체의 존재이다. 물론 주인공과 적대적 존재가 직접적인 갈등을 빚으면 효과가 더 좋겠지만, 두 사람은 친구 관계로 나름의 우호적인 유대감이 있으며 주인공이 적대자에게서 겪는 열등감이 일방적이라는 데서 이야기가 다소 담백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잔잔한 호수에 가벼운 돌멩이만 던져도 파동이 끊임없이 퍼져 나가듯 쿠자쿠의 존재는 스즈메를 주인공으로 각성시킨다.

 

이처럼 우리도 일상에서 다양한 유형의 안타고니스트들을 만난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친구가, 가족이, 그리고 교수님이 그들일 수도 있다. 꼭 드라마틱한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누구나 내 삶의 안타고니스트로써 나를 고통받게 하고, 또 깨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그에겐 내가 또 다른 각성제로 기능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낯선 듯 친근한 적대자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허물어져 간다.

 

 

 

#영웅이 된 스파이 – 빈틈 없이는 채울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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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고 챙겨온 손톱만 한 스파이 모집 스티커 속 연락처로 홧김에 수화기를 들었다. 이것이 내 무력한 삶을 구원해 줄 단 한 번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체 스파이가 하는 일이 뭘까.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총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민첩한 동작의 비밀 요원을 상상하며 들어간 면접 장소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스파이 공고를 낸 쿠기타니 부부는 의외로 내가 스파이에 딱 맞는 인재라며 별다른 절차 없이 받아줬다.

 

“너무 평범해서 반대로 비범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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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스파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평범함’이란다. 내가 평범하면 뭐 얼마나 평범했다고. 활동 자금으로 받은 500만 엔도 너무 부담스러워서 냉장고에 고이 모셔 뒀다. 평범하다는 이유로 돈을 받아 보기는 또 처음이다. 내가 받은 첫 임무는 ‘최대한 평범하게 잠복하기’였다. 환상 속 멋있는 액션신, 은밀한 첩보작전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하지만 스파이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라는 부부의 말에 멍청하게도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스파이가 된 지금도 표면적으로 바뀐 게 전혀 없다. 근데 어째서인지 마트 장보기 목록, 운전할 때 차를 모는 속도, 걸음걸이까지 평범해지고자 하니 대체 평범함이 무엇인지 자꾸 의식하게 된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서 끝내주게 청소하고 제시간에 거북 군 밥 주기까지 일련의 행동들이 스파이 활동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공기같이 지극히 가벼운 존재감이 콤플렉스였던 내게 스파이라는 타이틀은 그렇게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략)

 

스파이 소집으로 내가 살아온 동네를 떠나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은 후엔 집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역시나 오늘도 느긋하게 사료를 되새김질하는 거북 군이다. 거북 군을 풀어주는 건 평범한 주부 스즈메로서의 내 일상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집에서 가까운 강가의 다리에 서서 석양을 바라보는 순간 카토 선배의 아들이 강을 따라 떠내려왔다. 잠깐도 망설이지 않고 강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했다. 당연한 일이다. 카토 선배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도 난 몸을 던져 사람을 구했을 테니까. 그 이후로 티비를 틀기만 하면 내 얼굴이 나온다. 평범함을 지키려 할수록 평범함에서 멀어진다.

 

우리는 의외로 완벽하기만 한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 헐렁하고 챙겨주고 싶은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행동은 솔직하고 정의로운 의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즈메가 평범하고 우유부단해도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예컨대 스즈메가 스파이 활동 자금과 카토 선배의 아들을 구하고 받은 사례금을 모두 냉장고에 넣어두는 행동에서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돈과 명예를 목적으로 시작한 활동이었다면 우리는 그녀의 행동에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순수한 행동이 바라보는 관객에게 색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마음 한편에서는 쿠자쿠에게 열등감을 느꼈지만, 스파이 활동이 끝난 이후에는 그녀를 따라 파리로 향하는 장면에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쿠자쿠만 없었더라면 스즈메는 자기 삶에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엔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평범함이란 콤플렉스를 수면 위로 드러나게 한 건 쿠자쿠가 맞지만, 삶에 극심한 무료함을 느끼던 스즈메는 어떤 계기로든 곪아 생긴 염증이 드러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즈메는 친구를 미워하기보다 고마운 점들을 떠올리며 빚을 갚으려 하였다. 꼼꼼하고 계산적인 사람이라면 어려운 결정일 것이다. 그러나 스즈메는 조금은 단순하고 즉흥적이지만, 친구와의 관계를 져버리지 않는 결정을 통해 열등감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바라보는 우리에게 마음의 짐을 남기지 않았다. 이런 결정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쉬워 보이지만, 현실 속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는 현대인들에게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이 영화의 카타르시스는 바로 이런 점들에서 오는 것이다. 비극 속 주인공의 상황을 공감하고 자신의 감정적 배설물들을 정화하며 얻는 쾌감은 자극적인 쾌락을 반복하는 것보다 지속력이 좋다. 스파이가 되고, 또 영웅이 되면서 자신에게 취해 살아갔다면 우리는 그녀를 온전히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즈메는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크고 작은 빈틈들이 있었기에 자신을 채워갈 수 있었다. 그녀의 그런 성정은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행운을 잡았을 때 더욱 진가를 보였다.

 

 

 

#거북이는 여전히 헤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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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컴에 얼굴을 알리게 되며 사례금으로 500만엔을 받았다. 처음 스파이 활동자금을 받았던 그 때처럼 말이다. 등가교환의 법칙인지 내가 유명해지면서부터 스파이 활동은 할 수 없게 됐다. 쿠기타니 부부가 항상 말하던 스파이로서의 “구체적인 움직임”에서도 배제됐다. 다른 스파이들과 꽤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내게 남은 건 스파이 중 한 사람이었던 최애라멘집 사장님의 어중간한 라멘 레시피밖에 없다. 집에 돌아와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어중간한 맛이 나서 왠지 눈물이 났다.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는 더이상 스파이가 아니니 더 써내려갈 만한 이야깃 거리도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스파이 모집 스티커를 발견하기 전처럼 무색무취의 삶을 살아갈 것 같지는 않다.

 

스즈메는 스파이라는 이름표가 없으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자꾸 일상에 특별한 무언가를 욱여넣으려고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무엇을 더하며 삶을 채우려 할수록 자기 안의 벽을 느끼고 자꾸만 무너졌다. 참새가 공작새 걸음을 따라 하면 다리가 찢어지는 법이니까. 그러나 평범한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던 그녀가 스파이가 되고 나서는 자기 안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는지에 집중하게 됐다. 그렇게 원하던 주인공의 자리는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을 더해야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 안의 내가 더 또렷하게 보일 때까지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교훈은 비현실적 ‘스파이’가 아닌 현실의 ‘스즈메’로 돌아와서도 그녀를 공허하게 만들지 않았다. 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거북이는 땅에서 느리게 걷지만, 바닷속에서 헤엄을 치는 상황에서는 우리 예상보다 빠르다. 땅이 아닌 바다에서는 그 속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느린 천성을 가진 한 사람이 어디선가 쓸모없이 느려 터진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어디선가는 그 느긋함이 빛을 발하는 조건과 환경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을 자세히, 애정을 갖고 바라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아차릴 수 없다. 거북이가 느리게 걷든, 빠르게 헤엄치던 타인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남이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사소하고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이라도 차분히 살펴보자. 그리곤 남의 눈에 들기 위해 빠르게 달려 나가기보다는 다가올 터닝 포인트에서 나에게 필요한 방향과 속도를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비행의 과정이야말로 히로인의 조건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쿠자쿠의 삶을 동경했던 스즈메는 특별한 사람은 아닐지 몰라도 특별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주인공이 되기 위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기 보다 자기 안의 가능성을 믿는 마음에서 가능했다. 당신도 거북이처럼 좀 느리고 답답할지 몰라도 애정을 갖고 자기 안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순간들이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갈 테니까.

 

 

[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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