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삼손

글 입력 2024.06.1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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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우울해 보이는 사진이 있었다. 주변과 다르게 흑색의 벽에 커다란 액자 하나가 벽을 외로이 차지하고 있었고, 사진 속에는 고릴라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밖에 존재하는 관람객으로서 무엇을 응시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떤 목적의식이 있어 뚜렷한 생각을 쥐고 있다기보단, 그저 눈동자를 둘만한 곳을 찾고 찾다가 아예 몸을 돌려버린 것만 같은 고단함이 느껴진다. 자연과는 반대되는 메마른 풍경. 풀이나 나무라고 할만한 것 하나 없고 심지어 사진상에는 생명 존속을 유지해 나가는 데 필요한 먹이나 물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나치게 깨끗한 타일 바닥과 삶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청결한 평상에 고릴라 한 마리가 발을 붙이고 앉아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인위적이라 사실은 동물의 탈을 쓴 사람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까지 얽매여오는 듯한 부자연스러운 기분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고릴라 삼손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삼손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대전 엑스포시민광장 아트센터에서 열린 라이프 사진전이었다. 미국의 라이프지에 게재된 사진 중 시대를 대표하는 100장의 사진을 엄선한 이 전시는 포토저널리즘의 정신을 담아 ‘THE LAST PRINT’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찍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흑백 사진들이 주를 이루었고, 정치적으로 큼지막한 사건들이나 문화의 신드롬을 일으키고 오마주로 자주 쓰이는 수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동적이고 생생한 자태로 삶의 정취를 풍기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비인간이었다.

 

고릴라 삼손은 밀워키 카운티 동물원에 있던 고릴라 중 가장 큰 개체였다. 콘크리트 전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이 거대한 동물은 1살이던 1950년에 아프리카에서 포획되어 워싱턴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9년간 3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맞이하며 마스코트와 다름없는 인기를 얻었고, 밀워키 카운티 동물원으로 다시 한번 거처를 옮겼다. 명성이 자자한 거구의 영장류를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삼손의 모습을 구경하려는 관중들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떼를 지어 서 있다. 얼굴만 내놓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람들은 삼손에게 초파리처럼 보일 터였지만, 여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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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의 박동이 멈출 때까지 두꺼운 유리 벽과 타일로 둘러싸인 공허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삼손은 때때로 유리창을 두드리거나 부수려는 행동을 했다. 일부 전문가는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동물의 행동이라고 해석했지만, 그 행위의 진정한 의미는 삼손만이 기억할 것이다. 평생 짝을 맺지 않은 채 일생을 보낸 이 고릴라는 1981년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불과 1살에 아프리카에서 포획된 이후로 유리 벽을 통과하기까지 꼬박 32년이 걸렸다. 현재 삼손은 밀워키 공립 박물관에서 박제된 채 사람들을 맞이한다.

 

동물원에 가면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다. 사냥꾼의 총에 맞고 날개에 장애를 얻게 된 독수리를 보호하는 경우도 있지만, 영문도 모른 채 한국의 더운 여름을 얼음덩어리 하나로 견디는 북극곰도 눈에 띈다. 물론 동물원에 대한 인식이 전보다 개선되어 생태 보전의 의미를 지니는 생츄어리에 중점을 둔 곳도 증가하는 추세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은 곳이 훨씬 많다. 얼마 전 사자 ‘바람이’가 햇빛조차 들지 않는 지하 전시장에서 거점동물원인 청주 동물원으로 이사하는 영상은 많은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메마른 사자 한 마리가 뱃가죽이 들러붙은 채로 힘없이 숨을 몰아쉬며 푸른 들판으로 향했다. 밀림의 왕이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는 쇠약한 모습이었다. 반년이 훨씬 지난 지금, 바람이는 전문가들의 보살핌과 관심으로 기력을 되찾고 더 나아진 환경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간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상이라는 댓글이 많았지만, 어느 곳에 더 심각한 동물들이 학대받고 있으니 제발 구출해달라는 댓글들도 줄지어 이어졌다. 장소는 전국 각지로 다양했다. 동물들의 종류도 제각각이었다. 이미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야생 동물을 다시 자연이나 자연과 유사한 환경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경제적인 조건과 맞물려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채 방치된다. 의견을 내지 못하는 동물이라는 이유로 인간은 비인간을 쉽게 차별하고 억압해 왔다.

 

몇 년 전, 대전 동물원에서 퓨마가 탈출 한 일이 있었다. 국가 재난 문자로도 발송되었던 이 사건은 관리자의 안전불감에서 시작되었다. 외부와 연결된 출입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퓨마 한 마리가 나왔고, 사태가 알려지자, 순식간에 일대가 혼비백산해졌다. 결국 생포는 실패했고 퓨마는 사살되었다. 시민들은 따분한 일상 속의 이벤트 정도로 치부했고, 퓨마는 몸이 차갑게 식은 채 트럭에 실렸다. 이후 국립중앙과학관은 박제를 목적으로 대전 도시 공사에 퓨마 사체 기증을 문의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물의 박제로 교육용 모형을 만든다는 목적이었다. 사살된 퓨마의 박제 기사가 나자, 비난의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제명을 다하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한 동물에게 박제는 생명 윤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연이은 부정적인 반응으로 박제 계획은 취소되었고, 퓨마는 절차에 따라 소각장으로 이동되었다. 한국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한 역사가 없는 퓨마의 마지막 결말은 뜨거운 불길 속이었다.

 

우리는 동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비인간이기 때문에 삶의 터전에서 인위적으로 옮겨 와 멋대로 이용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지 되짚어 보아야 한다. 수많은 동물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생명을 잃었다. 관람객이 줄고 경제적으로 수익이 줄어들어 먹이조차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가장 기본적인 생존할 권리조차 빼앗겼다. 지난한 3년이 지나고, 코로나가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여전히 동물원으로 나들이를 다니고, 동물들은 여전히 전시장에 갇혀 관찰을 당한다. 변함없는 진리이자 참이라는 탈을 쓴 이 괴이한 현상을 이제는 인간이 직접 멈춰야 한다.

 

 

[조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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