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니멀리즘과 모노하 [공간]

현대인의 자기결핍 인식을 통한 공간인식
글 입력 2024.06.1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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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공간을 바라보고 채워 나가는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행위마저도 선택의 영역인 한편, 개개인이 공간에 갖는 관심이 배는 늘어난 지금은 그 중요도가 확장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현세대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에는 특징적인 규칙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순수성’ 혹은 ‘관계’를 중시하는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동양의 모노하라는 두 미술사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데서 더 나아가 앞으로 현대인들의 공간인식 방향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까지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이는 현대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시대의 흐름을 돞아보며 시대적 환부를 드러내게 할 뿐만 아니라, 공간인식이 우리의 전반적인 삶에 미치는 영향력 체감을 통해 미래를 건설할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데서 큰 의의가 있다.

 

 

 

미니멀리즘과 주거공간


 

‘미니멀리즘’이란 단어는 더이상 우리에게서 낯선 단어가 아니다. 통상적으로 미니멀리즘적인 디자인이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빠진 형태나 사물의 가지 수 자체를 줄이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를 좀 더 미술사조 ‘미니멀리즘’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공간 자체의 외적 분리와 내부적 사물의 배치 측면에서 알아보자.

 

공간의 구획 - 우리는 햇살이 잘 드는 집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 남향 집을 선호하고, 창이 넓은 집을 찾아 나선다. 이는 결국 주거건축에서 공간의 확장성이라는 측면으로 드러난다. 절제를 통한 건축의 본질을 추구하는 최소화의 의미를 뛰어 넘은 ‘최적화’로서의 확장은 다양하게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사례를 들 수가 있다.

 

먼저 공간 내부의 경계를 조작하는 일이다. 여기서 조작이란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된 단어가 아닌, 우리 눈을 속임으로써 더 효율적이고 본질적인 공간 구성이 가능해짐을 의미한다. 경계를 조작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역설적으로 경계를 소멸시켜 시각적 연속성과 내외부의 역전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니멀리즘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사각공간의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다. 예컨대 불과 몇 년 전에는 평범한 가정집에서 잘 찾아볼 수 있었던 문지방을 바닥 높이와 맞추거나 아예 없애 버리는 것도 그에 포함된다. 물론 안전상의 문제로 없어졌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한정된 크기의 공간에서마저 경계를 지어버리는 것이 미니멀리즘적으로 공간의 일체감을 해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실과 같은 뚫린 공간을 나누기 위해서는 시선을 일방적으로 차단시켜 버리는 커튼이나 발보다는 책상이나 협탁 등을 공간의 경계에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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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견고하게 맞물린 느낌의 모서리를 여는 것도 키포인트다. 모서리를 열기 위해서는 벽면 한 쪽을 통창 유리로 사용하여 모서리의 질감이 투명한 소재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반면 재질을 변경하지 않더라도 모서리나 벽 부분에 조명이 설치되면 공간의 한계가 확대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열린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모서리가 주거자에게 인식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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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효과를 더욱 살리기 위해선 반복성이 필수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태, 공간, 재료, 색 등의 구성요소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옷을 입을 때도 한 패턴의 롱 원피스를 입으면 키가 커 보이기도 하고, 누드톤의 신발을 신으면 다리 길이가 발의 바닥 끝까지로 보이는 착시현상처럼 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높이에 바로 걸리는 벽면의 색상, 패턴이나 재질이 반복적으로 길게 이어진다면 같은 공간이라도 더 하나의 긴 공간으로 환원하여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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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배치 - 예술에서 미니멀리즘은 화가는 회화의 본질만을 남기기 위해 자기규정적으로 작업을 하며, 관람객들은 그것을 대상으로써 경험한다. 이런 구조는 건축의 미니멀리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건축가가 건물의 존재 자체만의 본질을 위해 건물을 지으면 거주자는 자신의 신체로 ‘경험’하며 거주하게 된다. 따라서 건축 또한 예술에서의 미니멀리즘의 슬로건처럼 ‘하나의 건물을 존재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기준을 찾는 작업’으로 보게 된다 따라서 물질성, 사실성, 명백성을 밝히고자 하는 미니멀리즘적 건축은 자기참조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물질주의(materialism)적 관점은 ‘거주하기를 전제로 한 짓기’와 ‘사물을 위한 사물’이라는 표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물을 위한 사물은 오브제를 최소화 혹은 단순화 시켜 사물 본질, 즉 최소한의 존재 조건만을 살려야 한다는 뜻으로, 기하학적으로 단순하게 생긴 조각 등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미니멀리즘적 주거환경에서는 이러한 심플한 오브제를 오히려 장식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복잡한 현대인들의 삶에서 거의 유일한 휴식공간인 집은 비움의 미학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있지만,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로 공간을 꽉 채우는 게 유행인 때도 있었다. 그러므로 현대의 경향도 유행처럼 지나가는 현상일 수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이 계속된다면 빠른 시일 내의 일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주거공간의 사물 배치는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로 하여 필요한 자리에 올려놓은 듯 가볍게 배치된다. 이때 사용되는 가구 등의 사물들은 한 마디로 단순한 형태와 색을 띈다. 이는 순수 사물의 특성만을 남기기 위한 미니멀리즘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장식성이 떨어진 것이 아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진정한 본질에 집중하여 사용자에게 피로감을 덜어준다는 데에서 현대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뚜렷하다.

 

 

 

모노하와 인스타그래머블 플레이스


 

MZ 세대들에게 인스타그램은 예쁘게 꾸민 다이어리와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며 채워 나가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큰 차이점은 인스타그램의 가장 큰 특징이 타인에게 보여지는 시각성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잠깐 거리를 걸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어디 올릴 만한 사진을 찍을 타이밍이 없나 고대한다. 그러한 흐름에서 요즘 떠오르는 것은 일명 ‘인스타그래머블’ 플레이스다. 쉽게 말해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맛집, #분좋카(분위기 좋은 카페), #OOTD(outfit of the day) 등 쏟아지는 해시태그 속 ‘힙한’ 장소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어딘가 마감이 덜 된듯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과 의자들이 사진 속에 여기저기 보인다. 어쩌다 이런 디자인이 유행하게 된 걸까?

 

 

 

키치 혹은 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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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힙한’ 카페의 모습이다. 콘크리트나 나무 판자들의 마감이 덜 된 날 것 그대로 혹은 미완성의 공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왠지 모르게 멋지고 새롭다는 반응을 얻으며 각광을 받고 있다. 한눈에 봐도 청결하기 보다는 먼지가 날릴 것 같고, 장시간 앉아 있기도 불편한 이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노(もの)에 대한 실천적 연구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이우환과 스가 키시오를 비롯한 작가들로 구성된 ‘모노하’라는 작가의 집단을 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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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모노하 중 한 명인 스가 키시오의 작품이다. 회화는 당연히 아니고, 조각이라 하기엔 작가의 손이 특별히 탄 곳이 없어 보인다. 그저 입체적으로 잘린 돌 덩어리를 여기저기 흩어지게 배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눈에 띄는 질서 없이 미완성으로 보이는 작품이 우리가 방금 본 인스타그래머블 카페와 겹쳐 보인다. 이는 모노란 ‘정확히 정의 내려질 수 없는 것’으로 돈, 유리, 철판, 밧줄, 흙 등의 자연물 또는 가공물로 이미 존재하는 일상의 구조들을 가리키며, 모노하의 예술작품들이 그 구조들의 ‘만남’을 중시하여 설치미술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계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석에 앞서 거기에 있다 [...] 실재는 기술해야 하는 것이지 구성하거나 구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 메를로 퐁티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에서도 그렇듯이 모노하의 작업에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양식이 표출되지 않는다. 양식이 없고 제작의 흔적이 거의 없는, 그저 사물들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있는 작업 풍경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모노하의 양식은 “세계를 포용도 소유도 하지 못하는” 모호한 의식에 의해 신체가 그것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의해 현시된다. 따라서 모노하의 작업은 서로와 관계를 맺으며 보이지 않던 공간의 직조를 드러내는 상황을 제시한다. 작업에 차용된 각 사물(모노)은 접촉하거나 깨뜨리고 당기고 변형시키는 등의 흔적을 남기는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를 드러내고, 전시공간의 벽이나 바닥과 관객이 참여하는 관점 이외의 관점들로 관객을 인도하기 위해 제시된다. 일상의 한 비규정적 장소, ‘거기’ ‘그’ 위치에서 ‘그 자체로 특유한’ 상황이 경험되는 순간을 찾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작업은 작품과 나의 관계를 형성하게 하며 매 순간 갱신되는 주시를 필요로 하며 그것을 주시하고 재빨리 종합하여 시간을 형성해 나간다. 따라서 공통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사용자에게 경험하게 하는 인스타그래머블 플레이스도 모노하의 작업 정신의 맥락에서 같은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자기결핍과 공간인식 경향


 

미니멀리즘에서 최소화는 추구방향이 아닌 결과일 뿐이다. 또한 모노하에게 질료들의 배치는 관계를 느끼게 할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정은 생략하고 발현된 결과물만을 숭상하며 소위 ‘있어보이는’ 모습으로 타인에게 비춰지길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접한 사람들은 아무런 되새김질 없이 그 모습을 따라한다. 이는 마치 소화없는 배설의 굴레이며, 수치심 없는 시뮬라크르들의 자기위안이다. 우리에게 왜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현대인들의 생활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기(self)’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단순히 반복되는 삶은 하나의 게임과 다름없다. 나 자신의 안녕보다는 내게 주어진 퀘스트를 깨고 앞으로의 퀘스트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전전긍긍하는게 더 익숙할 수 밖에 없다. 이때 소멸하는 자기를 달래주는 일들은 기호화된 혹은 가상화된 자극제다. 게임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가족들과 여행을 하며 힐링하는 모든 과정이 과정보단 결과물로 남겨지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경험하지 못한다.

 

그 경향은 그대로 현대인들의 공간에서 투영된다. 미니멀리즘과 모노하의 실제적인 정신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것을 통해 재현된 형상만을 구현하여 유행에 편승한다. 내가 없는 나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지일 것이다. 한마디로 정말 ‘키치한’ 삶에 심취하여 자신에 대한 진정성은 신경쓸 겨를이 없다. 물론 키치함을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하여 배척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답을 찾아온 우리들의 공간은 단순한 미술적 효과의 모방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갈 필요성이 있다.

 

 

[김영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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