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극복기

글 입력 2024.06.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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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을 다시 시작했다.

 

드럼을 처음 배운 건 대학교 2학년이었다. 제대된 악기 하나쯤은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객기와 오기로 무장한 21살의 나는 무작정 학교에 존재하는 밴드 하나를 찾아가 드럼 파트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드럼을 왜 배우고 싶냐는 면접에서 이렇게 답했다.


“음악을 만들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비트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의 뒷받침이 되는 악기를 다루고 싶습니다. 맨 뒤에서 조화롭게 받쳐주는 드럼으로써의 역할을 잘 소화해 내고 싶습니다.”

 

면접에 합격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드럼 채를 구입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드럼을 가르쳐주는 선배가 좋다는 드럼 스틱을 추천받아 곧바로 주문했다. 면접 일주일 후, 곧바로 맹훈련에 돌입했다. 당시 코로나19로 동아리방에 출입이 힘든 시기여서 드럼을 연습할 수 있는 장비는 오로지 손바닥만 한 드럼 패드가 전부였다. 다른 밴드 악기와 다르게 초보 드럼 연주자가 가질 수 있는 개인 장비는 드럼 스틱밖에 없다. 실제 드럼 세트에는 최소한 7개의 각기 타악기가 존재해야 하고, 연주를 위한 위치도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나 한 번도 드럼 세트를 다룬 적이 없었던 나는 높낮이 없는 비트만을 연습하기에 바빴다.

 

2학기가 되자 연말마다 진행하는 밴드 공연을 계획해야 했다. 그때까지도 실제 드럼 세트에 앉아본 적이 손에 꼽힐 만큼 적었지만, 동아리에서 매년 있었던 전통 있는 행사이기에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그야말로 지나친 도약이었다. 비트만을 연습하던 나에게 갑작스러운 합주 제의가 들어왔고, 곡과 조원이 빠르게 정해졌다. 처음 해본 합주는 엉망이었다. 경력 있는 선배들과 제대로 된 드럼 세트를 처음 다뤄본 나의 연주는 어느 곳 하나 어울리지 않았고, 아직 저조하기만 한 드럼 실력은 조화로운 합주의 발을 잡았다. 실수가 늘어나면서 조원들의 눈치가 보였고, 부족한 자신을 탓하기에 바빴다. 

 

연말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드럼 연습은 취미가 되기는커녕 처리해야만 하는 과제로 다가왔다. 무대에서 실수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변수였다. 스스로를 옥죄이며 지나친 완벽주의를 추구하자 심리적인 부담감은 어느새 강박증세로 나타났다. 어쩌다 보니 학교 수업보다 드럼 연습이 더 중요한 일이 되어버려 매일 드럼 세트에 앉아 홀로 시간을 보냈다. 오로지 연주 날을 제치기 위해 기다리며 속을 썩였다. 대중 앞에서 첫 공연은 그렇게 끝이 났고, 나의 드럼도 끝을 맞이했다.

 

‘드럼에 이골이 나다.’ 라는 것이 1년 동안 드럼을 귀동냥으로 배우며 느낀 전부였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가끔 대중 매체에 드럼이 나올 때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발로 박자를 타고 있었고, 이럴 때는 이렇게 쳐야지. 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했다. 시간의 공백으로 드럼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고 둔해지던 때였다. 가끔은 다시 드럼을 배워볼까, 하는 마음가짐을 다졌다가도 시작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는 핑계로 내면을 외면했다. 

 

공교롭게 친한 친구가 취미로 드럼을 배운다는 소식을 접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을 계기로 내 삶에 드럼이 다시 개입하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부정적인 반응을 기대하며 후기를 물어보았을 때 돌아온 답은 “너무 재미있어. 스트레스도 풀리고 음악을 듣는 것도 즐거워.”였다. 그 말을 듣자 일말의 희망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드럼을 배우면서 즐거워할 수도 있다는 것에 호기심이 들었다. 

 

다시 드럼을 다뤄보면 나도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한 줄기에서 시작된 생각은 커지고 부풀어 올라 결국 머릿속을 잠식시켰다. 끝내 드럼을 다시 배워보자, 라는 다짐을 굳히게 만들었다. 한 달만 해보고 그만두자는 것이 스스로가 타협한 마지막 약속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잠재우고 학원에 들어서자, 성인 드럼반 수강생들의 연습 소리가 귓가를 울려왔다. 그 소리에 홀린 듯이 학원 등록을 마쳤고, 겸사겸사 드럼 수업도 들었다. 오랜만에 앉아보는 드럼 세트였다. 베이스 드럼의 킥을 차는 몸짓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했지만 동시에 둥둥거리는 저음의 북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왔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막상 드럼 실력은 예상보다 더 저조했고, 마음대로 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를 딛고 다시 일어섰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들었다.

 

지금은 6개월째 드럼 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새로운 곡을 연습하는 것이 즐겁다. 모르는 박자를 연습하는 것이 재미있다.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버리니 비로소 드럼이 취미로 다가왔다. 실수하면 뭐 어때, 박자를 놓치면 어때.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인데. 연습을 다 마친 곡은 연주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 그러다  어딘가 걸리는 구석을 발견하게 되고, 그 부분을 집중해서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곡 하나를 정복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신을 다치게 했던 무언가가 있다면 다시 한번 고개를 들고 다시 한번 승부해 보자. 예상보다 덜 아플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자. 어쩌면 남은 삶 동안 든든한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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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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