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댕의 배우 수업 [미술/전시]

거절 받은 적 없는 것처럼 연기하라
글 입력 2024.06.1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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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은 늘 거절당했다. 예술학교에서 입학을 거절당했고 신고전주의가 익숙한 시대에 그의 사실적 묘사는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파리의 살롱에서도 거절당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우리가 거절 받는 대상은 가끔 장소이기도, 사람이기도 혹은 스스로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거절을 당하는 또 다른 예술은 연기이다.


배우들은 역할로부터, 작품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때로는 스스로의 선택으로부터도 거절 당한다. 연기는 단 한 가지만 보여줄 수 있다. 한 장면의 연기를 위해 배우는 인물의 목표는 무엇인지 고려해 수많은 방법을 사용한다. 상대를 설득해보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이 수많은 방법 중 최선만을 연기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연기는 수많은 낙방과 거절로 이어지고 때로는 배우의 길을 자신한 스스로의 선택으로부터 부정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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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aid(Auguste Rod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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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ss(Rodin)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어느 날, 파리 7구에 위치한 로댕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로댕의 조각상을 보았다. 그 중에서도 ‘다나이드’를 마주한 것은 영광과도 같았다. 부서지는 햇빛이 내려앉은 미세하게 빛나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등줄기는 인간의 육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했다. 남편을 죽인 대가로 벌을 받는 다나이드 그리고 작업의 덧없음을 깎아낸 로댕의 비통함과는 다르게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찬란했다. 로댕 박물관의 제 5관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키스’는 다나이드만큼이나 관능적이지만 힘이 있었다. 하얀 대리석 위에 새겨진 근육의 움직임에 따뜻한 햇빛이 앉으면 인간의 움직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근육의 역동적 곡선은 모방할 수 없는 자연에서 기인한 아름다움임을 깨닫는다.


조각을 보는 일은 인생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장들의 손길에 탄생한 조각들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조각은 회화는 줄 수 없는 생명감을 느끼게 한다. 방 안에 조각과 단 둘이 있으면, 마치 생명이 나를 포함해 두 개인 것만 같은 특별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조각가들 중 로댕의 조각은 실제로는 고귀한 적 없었던 그의 삶 속 굴곡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아하다. 상처를 덮은 그의 아름다움은 나로 하여금 배우로서 연기를 대하는 태도를 배우게 한다.


로댕의 작품은 마치 그가 거절당한 적 없는 것만 같다. 사실은 '연기하기'보다 '버티기'가 주업인 배우들에게 로댕은 좋은 귀감이다. 마치 거절당한 적 없는 것처럼 예술을 하라 : 어떤 오디션에서도 거절당한 적 없는 것처럼 보여주고, 수많은 자기 의심만 남은 장면에서도 마치 거절당한 적 없는 것처럼 연기하라.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빛에 반짝이는 살결에는 그가 받은 거절의 고통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쏟아지는 조명의 무대 아래서 거절 받았던 기억의 고통은 없는 것처럼 연기하라. 비로소 조명을 햇빛 삼아 다나이드가 될 것이니. 로댕이 가르쳤다.


 

[김은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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