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직 당신과 나만의 - 펀치 드렁크 러브 [영화]

폴 토머스 앤더슨, <펀치 드렁크 러브>(2002)
글 입력 2024.06.23 13: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크기변환]31424.jpg

 

 

평소와 같은 어느 아침, 도로 위를 달리던 승합차가 크게 뒤집힌다. 그를 뒤따라오던 밴은 카메라 앞에 멈춰선 뒤 돌연 문을 열곤 풍금을 내려놓는다. 떠난다.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도, 나타나지도 않는다. 이 무책임하고도 강렬한 오프닝에 매료되었던 것도 잠시, 영화는 오프닝보다 강렬하고, 환상적이고, 불안한 호흡을 유지하며 러닝 타임 내내 보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펀치 드렁크 러브>가 이토록 정신없이 구는 이유는 단 하나, 차 사고만큼 강렬하고 모든 것을 압도할 만한 ‘사랑의 힘’을 연설하기 위해서다.

 

결국 사랑의 힘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흔한 이야기가 이토록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가진 천진하고도 우스운 낭만 때문일까. 사랑보다 달콤한 로맨스의 가공된 맛을 알고 있기에 더욱이 믿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도 이런 방식이라면 한 번쯤은. 모른 척 속아 넘어가고 싶어진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54_15.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47_17.jpg

 

 

<펀치 드렁크 러브>의 주인공 배리는 일곱 명의 누이를 둔 소심한 남자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진심이 드러날까 걱정하며 지나치게 움츠러든다. 자신을 들키지 않고자 하면서도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누군가에게 자신의 전부를 털어놓고자 하는 일반의 인간이기도 하다.

 

일곱이나 되는 누이들은 그를 지나치게 간섭하고 놀려대기에 바쁘고, 용기 내어 자기 안의 문제를 터놓아도 이는 금세 공유되어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외롭고, 불안하고, 슬픈 그의 눈에 들어온 폰섹스 광고. 곧장 수화기를 든 것은 일차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에겐 속내를 터놓을 사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또다시, 그의 진심은 폰섹스를 가장한 사기에 휘말려 금방 무력해진다.

 

그러다 어느 날, 오프닝의 차 사고와도 같은 강렬한 사랑이 그에게 찾아온다. 그 사랑의 이름은 레나. 사랑의 등장과 증폭된 불안감은 의도치 않게 맞물려 급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배리는 계속해서 혼란스럽다. 그의 혼란하고 억압된 내면세계는 자꾸만 이상한 방법으로 외부에 표출된다. 그는 가족들이 다 모인 식사 자리에서 유리창을 깨부수고, 레나와의 데이트 중 식당의 화장실을 파손하다 쫓겨난다.

 

레나는 이처럼 ‘사랑스럽지 않은’ 배리를 곧은 시선으로 응시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48_43 (1).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2_03_48.jpg

 

 

배리에게 있어 비밀은 곧 진심이다. 자신의 비밀이, 혹은 진심이 누군가에 의해 누설되고 이용당하는 순간 그는 폭발해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그 비밀스러운 거짓 진심은 레나의 곧은 시선 앞에선 도저히 숨길 수가 없어진다.

 

하와이 출장을 계획하고 있는 레나는 배리에게 하와이 여행을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마침 배리는 푸딩을 사면 마일리지를 준다는 판촉 행사의 마케팅 실수를 파악하고 이를 사들이고 있었다. 이제 배리는 사랑을 맺기 위해 필요한 단 한 발자국만 내딛으면 된다. 그의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한가득이지만 결국 그는 용기를 내어 사랑이 있는 하와이로 떠난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50_33.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50_52.jpg

 

 

<펀치 드렁크 러브>의 이야기는 이게 전부다. 어딘가 억압되고 결핍된 소심한 남자가 갑작스레 찾아온 여인에게 사랑에 빠지고, 그로부터 얻은 사랑의 힘을 통해 이전의 자신과는 전혀 다른 누군가로 탈바꿈한다는 것. 성긴 사랑의 서사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믿어진다. 아니, 사실 믿어지지는 않더라도 믿어보고 싶어진다.

 

영화는 오프닝의 강렬한 시퀀스 이후 곧장 레나를 등장시킨다. 사고처럼 등장한 그 묘령의 여인은 곧장 배리에게 말을 걸고, 이후의 만남에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배리 또한 그 여인을 마주한 첫 순간에 사랑에 빠진 듯 쭈뼛댄다. 두 인간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그 과정의 시작이 이상할 만큼 빠르다. 마치 ‘사고’처럼, 그들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서로에게 반해버리고 만다.

 

서로의 어떤 부분에 끌려 마음이 열리게 된 건지, 서로의 결핍을 어떤 측면에서 마주하게 되는 지와 같은 지난하지만 애틋한 사랑의 과정들은 <펀치 드렁크 러브>엔 없다. 적어도 이 영화가 연설하는 사랑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닌, 마치 사고처럼 어쩔 수 없는 충격 반응일 뿐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51_11.jpg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51_34.jpg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할 장면을 떠올려본다. 하와이에서 재회한 배리와 레나는 침대에 누워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당신 얼굴은 아주 귀여워요. 피부랑 뺨도 깨물어주고 싶어요. 잘근잘근 씹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워요. / 난 당신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어요. 당신 얼굴은 쇠망치로 묵사발을 만들고 싶을 만큼 예뻐요. / 난 당신 얼굴을 씹어 먹고 눈알을 파내 빨아먹고 싶어요. / 그래요, 바로 이거예요. 너무 근사해요.

 

 

누군가 들으면 섬찟할 이 대화들. 그들의 세상 안에선 한없이 달콤한, 사랑의 언어들이다. 배리와 레나의 만남과 사랑의 과정은 그다지 설득적이지 않다.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누군가도, 그다지 설득적이지 않은 사랑의 순간들도, 모두 타인의 납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펀치 드렁크 러브>는 매력적이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 이 영화만의 ‘이상한’ 낭만이 있기 때문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57_44.jpg

 

 

누군가에겐 풍금이었을 어떤 것은 그들의 세상에선 피아노가 된다. 누군가 들으면 섬찟한 대화도 그들의 세상에선 사랑의 밀어가 된다. 그것이 실제로 무엇이든 간에, 오직 당신과 나의 언어로만 규정되는 이 세계는 그 자체로 온전하고 안전하다.

 

이 사랑 영화는 잘 납득되지도 쉽게 믿겨지지도 않지만, 그것이 온전한 그들의 영역이자 사랑의 언어임을 깨닫고 나면 그저 끄덕이게 된다. 왠지 모든 것이 엉망이고, 혼란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계속 믿어보고 싶은, 기묘하고 강렬한 사랑의 힘이다.

 

 

[크기변환][포맷변환]screencapture-watcha-watch-mM5rDjO-2024-06-23-01_52_50.jpg

 

 

[차수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