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은 없다 - 퍼펙트 데이즈 [영화]

글 입력 2024.06.2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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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 즉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말은 곱씹을수록 의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씻고, 끼니를 챙긴 후, 바깥으로 나간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드는 것 중에 내 의지와 노력 없이 행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일상은 단순히 가만히 있거나 멈춘 상태가 아닌, 움직이는 행위 전체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일상이란 품이 많이 들면서도, 삶 전반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일상 안에 벅참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에겐 반복 자체에도 벅찰 수도 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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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유능한 청소 노동자이다.

 

그는 매일 일찍 일어나, 미리 준비된 물건을 챙기고, 집 앞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사 마시고,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들으며 출근한다. 늘 지정된 화장실에 들려 깨끗이 청소한 후 목욕탕에서 깨끗이 씻고, 단골 식당에 들어가 식사하고, 스탠드 빛에 비추어 책을 읽다가 잠든다. 이 모습을 영화 내에서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이 삶 자체가 히라야마의 일상이 된다. 그 과정은 하라야마의 행동만으로 재현되고 있다.

 

과묵한 히라야마가 입을 여는 순간은, 일상에서 변수가 생겼을 때이다. 예컨대 평소처럼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을 때 말이다. 그는 묵묵히 일하던 일상을 멈추고, 아이에게 친절히 말을 건넨 후 아이의 곁을 지킨다. 보호자가 아이를 찾고, 감사 인사 없이 그를 ‘더러운’ 존재로 취급했음에도, 아이의 손 인사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히라야마를 낭만(浪漫)을 잃지 않은 인물처럼 보인다. 아침형 생활 습관에, 매일 식물을 가꾸고, 굳이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취미는 필름 카메라로 풍경을 찍는 것이며, 요즘 수가 줄어드는 목욕탕을 여전히 다니고, 편의점 대신 동전을 넣는 자판기를 애용하고, 어두운 밤 스탠드 빛에 의지해 활자를 읽는 삶은 ‘아날로그 감성’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상이 ‘아날로그적인’ 낭만의 삶이라기보다는, 그 이전부터 히라야마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일 뿐이다. 그 반복적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히라야마의 꾸준함이 역설적으로 히라야마를 낭만을 잃지 않은 인물로 보이게 한 것이다.

 

히라야마의 캐릭터성은 영화 속 공간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히라야마가 근무하는 시부야는 매일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도쿄의 중심지 중 하나이다. 그의 근무 시간대인 이른 새벽의 시부야에서는 그 전날 밤부터 술을 마신 청년들과,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현대인, 여행객, 노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 도심 속에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카세트테이프를 즐겨 듣는 히라야마가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이는 화면 비율에서도 마찬가지인데, 16:9 화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4:3 비율의 화면에 담긴 히라야마를 담음으로써 그가 마치 다른 층위에 있는 인물로 보이게 한다.

 

그런 히라야마가 다시 일상을 바꾸게 된 계기는 그의 조카 ‘니코’와 만나고 나서이다. 이전처럼 일찍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고 출근 준비를 하다가도, 니코를 깨우지 않기 위해 소리를 죽이고, 늘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사다가도 편의점에서 니코 몫으로 우유를 산다. 이 과정이 영화에서는 일상의 균열이라기보다는, 일상의 변화로 읽혔다. 그리고 그 변한 일상이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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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는 종종 중지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히라야마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 소리와 함께 영상 대신 흑백 사진이 멈춘 상태로 있고, 그가 출퇴근 차 안에서 음악을 들을 때면, 그 음악이 멈춤으로써 화면이 전환된다. 영화는 이 멈춤을 사용하여 서사를 미루면서 이어간다.

 

4:3 화면 비율로, 장면의 반복과 빠르지 않은 속도감으로 이어가는 영화가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낭만, 느림의 미학이나 슬로우 시네마와 같은 용어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감상을 남긴다. 다만, 동전 대신 카드형 자판기가 생기고, 목욕탕 수가 줄어들고,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기존 카메라의 기능을 뛰어넘고,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소장하는 현대에서 히라야마의 삶은 일상이자 비일상이다.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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