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겹치면 짙어지는 삶들 - 퍼펙트 데이즈

눈 앞에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이 있고.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삶이 있다.
글 입력 2024.06.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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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제목 그대로의 영화였다. 내가 바라던 삶의 모양은 저런 것이다. 잔잔하지만 빛나는 하루하루. 반복적이고 안정화된 루틴에서 얻어내는 행복감. 내가 평생을 걸쳐서 쟁취해 내고 싶은 것은, 서울의 펜트하우스나 값비싼 외제차가 아니다. 그저 사소하고 단단한 나의 일상, 그리고 그 일상에 만족하며 만끽할 수 있는 건강한 마음.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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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뿐'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굉장히, 매우, 몹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쿄 공중화장실 청소 일을 하며 살아가는 히라야마는 나의 이상(理想)이다. 바닥을 쓰는 빗자루 소리가 그를 깨우고, 아침밥을 먹는 대신 화분에 물을 먹인다. 집 문을 열면 비추는 햇살과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캔 커피, 그리고 트럭에 카세트를 넣자 울려 퍼지는 더 애니몰스의 는 이상하리만치 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정말로 완벽한 하루들이구나.

 

시부야 부근의 공중화장실에 도착하자, 익숙한 솜씨로 청소를 시작한다. 직접 제작한 청소 도구로 구석구석 손 닿지 않는 곳이 없게 신경 쓰는 히라야마를 보다 보면. 단순한 청소라기 보다는, 자아의 실현에 가까워 보인다. 길 잃은 꼬마의 엄마를 찾아준 대가로 돌아오는 건 물티슈로 꼬마의 손을 박박 문질러 닦는 경계심일지여도. 여전히 꼬마의 눈을 바라보고 웃으며 인사해 준다. 술에 취한 것인지, 삶의 무게가 그를 짓눌러버린 것인지 모를 노숙자의 움직임에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릴지여도. 히라야마는 계속해서 눈에 담고 인사하고 소통한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면, 간단한 식사거리를 사 들고 근처 신사로 올라간다.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히라야마는 그 광경을 보고, 그 광경을 매일 같이 보지만 언제나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며, 필름 카메라를 꺼내 소중히 담아낸다. 옆자리에 앉은 머리가 긴 남학생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나무 주변에 새로 피어난 새싹을 주변 흙과 함께 집으로 데려와 키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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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가 끝나고 난 뒤 히라야마는 수건을 챙겨 동네 목욕탕으로 향한다. 햇살이 들어오는, 작고 한적한 목욕탕에서 몸을 씻어내리고는. 자전거를 타고 단골 선술집에 간다. 오츠카레사마- 라고 외치는 주인과 야구 경기로 웃고 우는 사람들을 사이에서 술 한잔을 하고 나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 스탠드 불빛에 기대어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읽는다. 눈이 뻑뻑해지고 점점 졸음이 밀려오면 또다시 찾아올 내일을 위해 바르게 누워 잠을 청한다. 한 번도 빠짐 없이 등장한 그의 꿈은.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처럼. 언제나 일렁이고 자유롭고 생생하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온 그의 조카 니코는 히라야마의 삶에 작은 변화를 준다. 작은 변화라기보다는, 그의 삶을 함께 해주는 동반자가 생겼달까. 함께 집을 나서고, 함께 캔 커피를 마시고, 함께 카세트 테이프를 골라 노래를 듣는다. 나뭇잎 사이의 햇빛만을 담아내던 필름 카메라에는 니코가 들어오고. 10분 만에 나오던 목욕탕은 20분으로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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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함께 집으로 귀가하며.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 이라고 외치는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갈까. 세상에는 여러가지의 삶이 있고, 모두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 라고 말하는 히라야마는. 어떤 삶들과 가장 가까울까. 혹은 어떤 연결되고 싶지 않은 삶이 있는 걸까. 그리고 나는 어떠할까. 어떤 삶들과 가장 가깝고 멀까. 혹은 가까워지고 멀고 싶은 것일까.

 

히라야마의 삶과 아주 연결되었던 니코는 곧. 엄마에게로 돌아간다. 깊은 속 사정을 알 순 없으나, 여동생을 안아주는 히라야마의 눈물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눈 앞에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삶이 있고.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삶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있다. 니코가 떠나버렸어도, 여전히 히라야마의 삶 속엔 니코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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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하던 단골 선술집 여사장과 전남편의 모습을 보고서는.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 맥주를 세 캔이나 사고, 애써 끊어왔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선 신나게 기침하고 있을 때. 히라야마에게 전남편이 다가와 담배 한 대를 빌리며 말한다.\

 

"그림자와 그림자가 만나면 더 짙어질까요?"

 

히라야마는. 직접 해보자-고 말한다. 가로등 아래에서 둘의 그림자가 겹쳐지자 "겹치는 순간 짙어지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하는 히라야마. 정말 그럴까? 아마 그러지는 않을 텐데-라는 내 생각의 끝에서는 결국 부끄러움만이 남는다. 중요한 건 '정말 짙어지는지'에 대한 정답이 아니지 않는가. 어떻게 믿을 것인가의 문제. 교집합을 까맣게 칠하고, 중첩되는 부분을 빗금을 치듯. 히라야마는 겹쳐지는 '순간' 짙어진다고 믿었고 보았다.

 

그러니 그는 순간의 짙음을 향유하는 삶.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와, 틈새로 쏟아지는 햇빛, 그리고 일렁이는 그림자를 사랑한다. 여전히 필름 카메라로 순간을 담고, 돈보다는 카세트 테이프가 지니는 의미를 지킨다. '지금'을 충만하게 살아가는 연습. 노숙자와 알 수 없는 연결을 느꼈던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니나 시몬의 이 나오며 클로즈업되는 히라야마의 얼굴은.... 웃음과 울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드리우는 일출에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표정과 눈빛. 삶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것이야말로 삶이 아닐까. 삶의 모든 순간의 농축. 히라야마를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다. 나의 삶과 히라야마의 삶이 겹쳐지는 순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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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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