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완벽한 날이란 무엇일까 - 영화 '퍼펙트 데이즈'

반복과 변주
글 입력 2024.06.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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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중,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어떤 날을 완벽하다고 인식할까?


한번 이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갈 준비를 한다. 매일 똑같이 동전을 가지고 나가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 음료를 하나 뽑아 마신다. 그리고 작은 차를 운전해 도쿄 곳곳의 공공화장실을 돌며 청소한다.


청소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열심이다. 금방 더러워질 텐데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동료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변기며 세면대며 할 것 없이 꼼꼼하게 닦은 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은 거울까지 이용해 비추어 가며 확인한다. 다 떨어진 휴지를 채울 때도 휴지 끝부분을 세모나게 접어 깔끔하게 정리한다.

 

점심시간에는 항상 똑같은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서 매번 같은 공원으로 향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고,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오래된 사진기에 담는다. 그리고 다시 오전과 같은 일을 시작한다.


일을 마친 후에는 공공목욕탕에 찾아가 몸을 깨끗이 씻는다. 그리고 단골 가게에 들어가 가벼운 안주를 곁들여 술을 한 잔 마신다. 가게 주인은 굉장히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며,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술을 가져다준다. 그 역시 말은 하지 않지만 편안한 모양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문고본 책을 읽는다. 누워서 읽다가 이내 잠이 오면 스탠드를 끄고 잠에 든다. 그리고 또다시 어제와 같은 하루의 반복.


휴일도 마찬가지로 정해진 것처럼 똑같은 일정의 반복이다. 자전거를 타고 빨래방에 가 밀린 빨래를 한다. 오래된 사진관에 찾아가 필름을 맡기고, 필름을 교환하고, 미리 맡겨 인화된 사진을 찾아온다. 낡은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다 문고본 책을 한 권 산다. 단골이 된 술집에 찾아가 항상 먹던 안주와 함께 술을 한잔한다. 그리고 또다시, 청소부로서의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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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위와 같은 히라야마의 일상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여준다. 초반에는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긴장하며 영화를 보다가도, 이내 무던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에 저도 모르게 맥이 풀린다.


그런데 여기서 이 영화의 장점이 드러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어느 날은 이 부분을 생략하고, 어느 날은 저 부분을 늘려서 보여주며, 어느 날은 또 다른 부분이 생략되고, 또 늘어난다. 그렇게 호흡이 적절하게 조절되면서, 보는 입장에서는 지루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정말 그의 일상을 함께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큰 틀의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소한 변수 역시 그의 삶에 관객을 몰입시키는 요소다. 어떤 날, 히라야마는 청소하다가 누군가가 숨겨 놓은 쪽지를 발견한다. 그 쪽지 안에는 빙고 판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는 그 쪽지를 버리려다가 마음이 바뀐 듯 펜을 꺼내 다음 수를 표시한 후 쪽지를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또 어떤 날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찾는 공원에서 같은 시간 점심을 먹는 여성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철없는 동료 때문에 생전 가본 적 없던 레트로 바에 가서 카세트테이프를 구경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들은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의 신(Scene)을 보다 다채롭게 보이도록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특징이 있다면, 이 변수들이 어디까지나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은 그의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상황은 짧은 일탈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의 큰 틀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똑같다.


이때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나 자신의 일상이다. 집에서 학교 또는 직장, 그리고 다시 집, 또다시 학교나 직장을 오가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 사실 우리의 일상도 이렇게 큰 틀을 벗어나지 않은 채, 작은 변수들로 조금씩 변주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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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수를 대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에서 나는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반복되는 일상에 변수가 나타났을 때 누군가는 짜증을 느낄 수도,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 특히나 히라야마처럼 매일 짜인 듯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흘려보내고 똑같이 다음 날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일상을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게 보내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 다음번이 언제냐며 투정하는 조카에게 오늘은 오늘, 다음번은 다음번이라며 현재를 사는 모습까지, 그 모든 것들이 일상을 지루해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변수에는 스트레스를 받던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영화의 제목인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일상을 의미할 수도 있겠다. 일상 속 딱 하루, 정해진 듯한 완벽한 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씩은 다른 하루하루, 그리고 그런 날들을 물 흐르듯 보내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언제든 완벽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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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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