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쿄 화장실을 청소하는 웃수저의 일상 - 퍼펙트 데이즈

영화 <퍼펙트 데이즈>
글 입력 2024.06.26 18: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잘 만든 영화란 무엇일까. 각자가 정의 내리는 잘 만든 영화란 다 다를 테지만, 나에게 잘 만든 영화란 명확하다. 주인공의 아픔을 나까지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현실로 돌아와서도 그 주인공의 삶이 떠오른다면, 그 여운이 지속된다면, 그것이 잘 만든 영화다. 생전 처음 보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2시간 동안 천천히 완전히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은 스토리텔링과 배우의 연기라는 영화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영화는 시각적 매체이기에 미장센과 영상미가 중요할 수도, 청각적인 매체이기도 하기에 음악도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결국 누군가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고 관객은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퍼펙트 데이즈는 나에게 완벽한 영화였다.
 
 

7.jpg

 
 
빗자루 쓰는 소리. 해가 뜨기도 전부터 길거리를 청소하는 누군가의 소리에 주인공은 눈을 뜬다. 식물에 물을 주고, 양치를 하고, Tokyo Toilet이라고 쓰인 작업복을 입고, 커피 한 캔 뽑아 차를 몰고 화장실로 출근한다.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함께. 다음 날에도 빗자루 쓰는 소리에 눈을 뜨고 커피 한 캔 뽑아 화장실로 출근한다. 퇴근 후에는 매번 가던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매번 가던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고 집에 돌아와서는 책을 읽다 잠에 든다. 그리고 종종 필름 사진을 현상하러 가기도 하고 나무 앞에서 쉬며 하늘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게 그의 일상이다.

그의 일상 속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아침 빗자루 쓸고, 음식점 주인은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고, 목욕탕에 가면 항상 할아버지 두 분이 계신다. 항상 그 시간에 그 자리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반복하는 나와 참 비슷하다. 새삼 세상 모두가 그런 비슷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구나 싶다. 반복되는 특별치 않은 그런 일상들…

재미없는 하루다. 매일 비슷한 일상이라니. 이게 일상에 대한 내 생각이다.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따분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데, 매일 같은 사람을 보고 같은 경험을 하는 하루들이라니.

이런 생각을 하는 나와 다르게 주인공인 그는 일상을 그의 스타일대로 재미있게 보낸다.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해석한다. 쓰레기처럼 보이는 종이를 버리는 대신 슬쩍 열어본다. 열어보니 누군가 격자무늬를 그려 둔 것이 아닌가. 그는 그 빈칸에 슥 표시하고 있던 자리에 꽂아 둔다. 그리고 다음 날 확인한다. 누군가 거기에 추가로 또 표시해 두었다. 그렇게 모르는 이와 쪽지를 주고받으며 그만의 재미있는 이벤트를 생성한다.

그뿐이랴. 좋아하는 사람의 전남편이 암에 걸렸다며 그에게 하소연한다. 그림자가 겹치면 색이 진해지는지, 그런 사실도 모르고 세상을 떠난다며. 그는 함께 심각해하는 대신 천진난만하게 그림자밟기를 제안한다. 나이 지긋이 들었음에도 공원에서 그림자를 밟으며 하하 호호하는 그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지만 괜스레 마음이 시큰하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사람들도 사실은 마음속에 다 그런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다들 참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마 이날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글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전남편이랑 그림자밟기 놀이를 했다니깐.’
 
과묵하고 진지한 그가 실제로 이런 말투로 말하진 않겠지만 그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 대신 재미있는 일들을 위주로 설명할 것이다. 일상을 재미있게 보려는 그의 시선에 나는 왜 새로운 것들로 재미있게 보내려는 욕심을 부리려 했나 싶다. 대신에 나도 일상에서 일어났던 심각한 일들을 재미있게 해석했던 경험을 떠올려 본다. 예컨대 진짜인 줄 알고 당할 뻔했던 보이스피싱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한다든가, 지하철에서 쓰러진 이야기를 쓰러졌더니 자리를 양보받았다며 재미있는 일인 듯 풀어내는 것 말이다.

재미있게 보면 재미있게, 심각하게 보면 심각하게, 해석하는 대로 살아가는 법이다. 나는 앞으로도 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8.jpg

 
 
그는 나무와 식물을 좋아한다. 벽에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에 늘 미소를 띠고, 나무 옆에 자란 작은 새싹을 조심스레 가져와 키우고, 나무 사진을 찍으니 말이다. 거름을 토대로 자라나는 생명체들을 보며 화장실 청소를 하는 그에게는 그것들이 희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커가는 푸른 줄기들을 보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나무를 좋아하는 그는 나무처럼 묵묵히 그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과묵하지만 포용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동료는 매번 지각이다. 그래도 늦은 동료에게 화내지 않는다. 묵묵히 화장실을 청소한다. 그것도 아주 세심하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거울로 비춰가며 뽀득뽀득. 어린 동료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며 대충 청소한다. 그런 말에도 그는 묵묵히 일한다.

그런 동료가 어느 날은 데이트 비용을 마련하려고 주인공이 모아둔 카세트테이프를 팔자고 음반 가게에 데려가 멋대로 팔아버리려 한다. 나였으면 짜증 낼 만도 한데, 대신 그는 지갑을 열어 가진 돈을 몽땅 준다. 다 줘버린 그는 매번 가던 음식점 대신 유통기한이 언제인지도 모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그래도 그는 싫은 티 하나 내지 않는다.
 

2.jpg

 
 
그는 오늘도 출근한다. 노래와 함께. 그런데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차오른다. 애써 눈물을 참아보며 입가엔 미소를 띠고 묵묵히 운전한다.

그는 왜 출근하다 눈물이 났을까.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며 그는 실로 조용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기보단 참고 있었던 사람인 것이 아닌가 했다. 그가 자주 입을 열지 않고 꾹 닫았던 것은 과묵한 성격이라기보단 꾸욱 참고 있던 것이라고. 오늘은 참기 힘든 날인가 보다.

나는 괜찮은데, 남들은 괜찮지 않다며 평온한 하루에 불쑥불쑥 비수들이 꽂힌다. 나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재미를 찾아가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말이다. 도움을 준 나의 손을 더럽다고 느끼는 타인의 시선. 진짜 ‘그런 일’을 하는 거냐는 가족의 말.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젊은 동료의 말, 어디서든 일할 수 있을 젊은 동료의 갑작스러운 퇴사, 그로 인해 밤늦게까지 일을 하지만 그만둔다고 어디 갈 데 없는 나이 든 나 자신. 동생은 깔끔하고 비싸 보이는 차를 타지만 허름한 나의 자동차와 집.

나름대로 웃기게, 가볍게 해석하고 있었는데 타인이 그렇지 않다고 인식시키는 순간 무거운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조카와 동생이 떠나고 난 뒤 집 앞에 홀로 남아 고개를 떨군다. 좋게 포장하려 해도 마음 아픈 것은 마음 아픈 것이다.

그런 말과 상황들이 출근하다 갑작스럽게 차오르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일상을 보낼 것이다. 그런 일상 중 어떤 날은 항상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 중 하나이기도, 어떤 날은 누군가와 헤어지는 날이기도, 어떤 날은 오랫동안 보지 않은 사람이 찾아오는 날이기도, 어떤 날은 갑자기 차오르는 감정에 흐를 것 같은 눈물을 참는 날이기도 하다.

눈물이 흐르는 날이라고 해서 구린 하루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 하루마저 나의 하루다. 그렇기에 어떤 날이라도 소중한 나날들이며 오늘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하루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모여 퍼펙트 데이즈인 것은 아닐까.
 
 
[이유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7.01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