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분절된 순간을 삶으로 엮어내는 힘 – 영화 ‘퍼펙트 데이즈’

불완전한 ‘지금’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찾는 나날들
글 입력 2024.06.2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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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을 대표하는 개념 중 ‘와비-사비’라는 단어가 있다. 다도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불완전하고 단순한 것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와비’와, 시간의 흐름이 드러나는 데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사비’가 합쳐진 말이다.


와비사비에 따라 낡고 흠집이 난 것, 울퉁불퉁하고 비뚤비뚤한 것, 누군가의 애정과 취향이 담긴 오래된 것들은 모두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지닌다. 불완전하고 소박한 것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낡고 바래진 것들은 숨기고 고쳐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들로 여겨진다.


와비사비는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일 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불완전하고 영원하지 않은 삶의 일면을 받아들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의 소중함과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불완전하고, 단순하고, 낡고 바래진 것들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완벽해지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와비사비’는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와도 상통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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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는 매일 마주하는 풍경과 우연히 스치는 인연들을 모두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담는다. 영화 속 히라야마의 하루는 루틴으로 가득 차 있다. 아침 준비 장면과 일하는 모습은 모두 그동안 얼마나 반복되었을지 짐작조차 안 될 정도로 군더더기 없다. 이른 아침에도 별다른 알람 소리 없이 매번 창 밖의 빗자루질 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허리춤 가득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니면서도 맞는 열쇠를 찾기 위해 헛손질 한 번을 하지 않는다.


몸에 배어 있는 듯 반복되는 그의 하루가 지루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그가 그만큼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마주하는 풍경과 그 안의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차피 더러워질 것’이라며 동료가 말을 얹어도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히라야마의 일상 속 작은 즐거움 중 하나는 매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는 것이다. 일본어로 ‘코모레비’라 불리는 그 장면은 오로지 그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찰나의 순간에 반짝이는 그 풍경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는 히라야마의 모습은, 연속되는 영상과 달리 찰나를 기록한 사진처럼 그를 스쳐 간 인연과 풍경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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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순간순간 변화하듯, 영화 속 히라야마가 마주하는 풍경과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떠나간다. 영화 안에서 한 순간에 나타났다가 또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는 인연과 풍경들은 다소 허무하고 씁쓸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히라야마의 애정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존재하고 변해가는 풍경과 관계 속에, 정작 히라야마 스스로는 깊숙이 속해 있지 못한다. 조카 ‘니코’에게 말했듯, ‘다양한 세계’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 히라야마의 세계는 외부와 순간 단위로 단절되고 연결될 뿐, 연속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도 히라야마의 집은 조카 니코가 갑작스럽게 머무른 며칠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히라야마 혼자만 생활한 듯 보인다. 히라야마가 청소하는 도시의 공중화장실도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어디에나 있지만, 그곳을 청소하는 히라야마는 다른 이들에게 쉽게 의식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더럽게 여겨지고 배척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라야마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덧없게 느껴지는 분절된 순간들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엮어낸다. 절대로 영원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욱 소중한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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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저 스쳐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언젠가 찰나에 바뀌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에 집중하면서 그 안에서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낸다. 히라야마가 찾아낸 순간의 아름다움은, 오랫동안 함께 했을 고독과 상처들을 넘어 오직 ‘지금’에 집중하고 눈 앞의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겼던 그였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국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어차피 변해버릴 것이라며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해가는 순간 속에 반짝이는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충분히 소중히 여기는 태도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분절된 순간을 하나의 삶으로 엮어내는 힘은 지금을 오롯이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히라야마는 누구보다 ‘지금’을,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비록 그는 아날로그적인 생활방식을 이어가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영화 역시 히라야마가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 어떤 시간들을 거쳐 지금의 생활을 이어오게 됐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을 사는 히라야마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오롯이 그 순간에 존재하는 히라야마를 그리는 방식에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들었던 것이었다. 카메라가 히라야마의 생활에 굉장히 밀착된 화면들을 보여줌에도 히라야마는 서사 안의 인물이라기 보다는,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한 매개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컨대 앞서 언급했던 와비사비와 같이 일본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나 가치관들과 관련된 개념들을 히라야마를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것처럼 보였다. 물론 편견에서 비롯된 섣부른 경계일 수도, 그저 또 다른 이방인으로서 독일인 감독의 눈에 비친 도쿄와 일본인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제된 연출 속에서도 너무나 낭만적으로 표현된 어떤 개념들을 볼 때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의 메시지와 배우들의 연기가 와닿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마지막 롱 테이크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흡입력이 있었다. 동이 트는 도로 위에 이어지는 히라야마의 클로즈업 샷에는 복잡하게 섞여 있는 다양한 감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둘 수 없듯이, 눈 앞의 순간들은 어떻게 해도 붙잡을 수 없다. 그렇게 무력하도록 찰나인 ‘지금’에 대한 아쉬움도, 그럼에도 눈 앞에 있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그 표정 안에 모두 녹아 들어 있었다.


‘순간’의 가치이자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기에 그 감정이 더욱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각기 다른 자신만의 세계에서 ‘순간’의 소중함을 발견하는 모두에게 이 영화가 위로이자 공감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완벽해지는 나날들을 이어갈 수 있기를, 찰나같이 스쳐 가는 순간들로 반짝이는 삶을 엮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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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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