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삶이란 이름의 햇살 - 퍼펙트 데이즈 [영화]

빔 벤더스, <퍼펙트 데이즈>(2023)
글 입력 2024.06.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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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이웃의 빗자루 쓰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개고, 식물에 물을 주고, 양치를 하고, 매일 입는 작업복을 입고, 현관문을 닫은 뒤 보이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꺼내 마신다. 차에 올라타고, 운전 하고, 일 하고, 가끔 마주치는 세상의 모습에 눈길을 빼앗겼다가, 다시 일에 몰두. 일이 마무리 되면 자전거를 타고 목욕탕에 가고, 목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주 가는 단골 식당에서 식사 한 뒤, 집에 돌아와선 독서. 그리고 취침.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는 겨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의, 딱 이만큼의 영역을 유지하는 누군가의 삶이자 이야기다. 하지만 그 깊이는 계속해서 깊어진다. 삶이라는 긴 직선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그 위치를 항상 손으로 짚어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바쁜 누군가들과는 다르게, 영화는 인물이 지금 현재 위치한 그 지점에 함께 선 뒤 한없이 정중한 태도로 그의 삶을 그 자체로 바라본다.

 

히라야마라는 인물이 꾸려나가는 그만큼의 삶, 그리고 그가 정성껏 꾸린 삶에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내는 미지적인 타인, 마지막으로 지금 ‘현재’의 위치에서 결합되는 그 모든 것들의 총체와 결국 그 모든 것의 총체는 곧 누군가의 삶이 아닌 우리 모두의 삶이라는 것까지. <퍼펙트 데이즈>가 성실히 꾸린 아주 좁은 영역에서의 삶은 이런 방식으로 넓혀진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 숨 쉬고 있는 삶의 느린 속도감을 아주 숭고할 정도로 공들여 바라보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다시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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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이다. 이웃의 빗자루질 소리에 깨어 하루를 시작하고, 성실히 노동하고, 약간의 취미 생활과 함께 고요했던 하루를 고요하게 마무리 하는 삶. 딱 그 정도의 삶의 루틴을 지키는 그에게 있어 루틴의 모든 순간은 소중하기 그지없다.

 

특히 노동을 대하는 히라야마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그의 행위는 마치 수행처럼 느껴질 정도로 숭고하다. 청소 도구를 직접 제작할 만큼 정성을 담고, 잘 닦이지 않는 부분엔 거울을 비추어 확인할 만큼 완벽을 추구한다. 동료 타카시의 말처럼, 공공 화장실은 ‘깨끗이 치워봤자 금방 다시 더러워질’ 공간이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그 몇 평 남짓의 비루한 공간을 성실하게 닦고, 쓸어낸다. 주어진 삶의 영역에서 지켜내야 할 자신의 것들을 소중히 지키고 행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은 지리멸렬하게 느껴지는 노동의 순간들을 삶 그 자체로 느껴지게 한다.

 

공공 화장실이라는 공간. 그 공간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그곳은 지금과 같은 첨단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옷을 벗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또 원시적인 공간이다. 계급과 지위, 제도, 자본 따위의 것들이 주로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인간 모두가 동일해지는 세상 안 유일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공공 화장실이라는 세상 안 유일의 공간을 소중히 하는 히라야마는 자신의 직업이 가진 숭고함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노동이란 세상 안에서 주어진 오롯한 자신의 몫이자 수행이고, 더 나아가 삶 그 자체이다. 영화는 그의 노동의 순간들을 아주 길게 포착한다. 히라야마가 그 수행의 순간을 숭고히 하듯, 영화 또한 그의 삶의 행위를 정성스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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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야마의 삶은 아날로그의 느리고 지루한 속도감을 유지한다. 그는 자신의 좁은 방과 삶을 긍정하고, 일상의 지루함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사람이며,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도 조금씩의 다름을 기쁘게 파악하고 수용하는 사람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카세트테이프를 수집하고, 수동 필름 카메라로 순간의 세상을 담고, 인화한다. 모든 것이 즉시 이루어질 수 있는 데도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아주 공들여, 천천히 마주 보고자 한다.

 

디지털 시대라고 말하기도 낯부끄러운 첨단의 시대 안에서 히라야마는 이처럼 아날로그를 닮은 느린 삶을 살아낸다.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물리량을 뜻하는 아날로그는, 존재하는 사물의 ‘진짜’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디지털이 0과 1 둘 중 하나로의 극단을 선택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아날로그는 0과 1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을 연속적으로 표현한다. 히라야마는 모든 것이 극단이기에 지금 현재의 과정은 쉽게 무시되어지고 마는 디지털의 시대 안에 존재하면서도 자신의 삶의 과정을 오롯이 바라보고 이를 온전히 아날로그의 것으로 꾸려나가는, 속세와 욕망의 저편에 위치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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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기 삶의 어떤 것들을 숭고히 바라보는 히라야마에게도 삶의 균열들은 존재한다. 몇 평의 공간, 몇 평의 일터, 겨우 이만큼의 삶의 영역을 살아내면서도 그는 자기 안에 매몰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기꺼이 그 균열들을 맞이한다. 그것들을 마주하곤 웃는다. 그토록 성실히 ‘자기 안’의 것들에 몰두하다가도 순식간에 타인과 세상의 이상한 균열들에 쉽게 매료되어 시선을 준다. 그가 세상의 것들에 매료되는 순간, 그 순간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나 이외의 아주 미지적인 어떤 것들의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과 경이의 얼굴. 그런 것들은 언어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히라야마의 마음에 깊이 남아 꿈이라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재현된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의 하루임에도 그것이 매일 전혀 다른 것임을 느끼게 하는, 히라야마의 세상을 향한 경이의 순간들은 내가 꼽은 <퍼펙트 데이즈>의 명장면들이다.

 

<퍼펙트 데이즈>의 또 다른 탁월한 지점은, 히라야마가 지내온 영화 이전의 삶의 맥락이 영화가 진행하고 있는 현재의 순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히라야마가 조카 니코와 함께 해를 마주 보며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는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영화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간단한 문장은 <퍼펙트 데이즈>가 지켜온 현재의 시제를 더욱 공고히 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 순간의 모습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쉬운 존재가 아니다. 지금의 존재는 과거의 어떤 것들, 기억들, 경험들이 연계되어 만들어진 일종의 ‘결과물’이자 과거로부터 도달한 ‘도착점’이다. 영화는 히라야마의 이전 삶이 그를 어떻게 이곳에 다다르게 했는지, 그래서 정확히 과거로부터 흘러온, 현재라는 ‘결과물’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지 않는다.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가 그의 누이동생을 만나는 장면을 삽입하여, 지금껏 관객이 그에게 가지고 있던 인물의 모호함을 일순 해소하기도 한다. 히라야마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오열한다. 그의 사연들은 끝내 정확한 언어로 서술되지는 않지만, 그의 감정적 폭발은 그의 과거가 결코 가볍지 않은 기억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영화는 그가 누이동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관객을 독특하고도 느린 히라야마의 세계에 매혹되게 하더니, 누이동생을 만난 장면을 통해 돌연 그에게도 사연이 존재하는 일반의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가 지내온 과거의 사연 그 자체의 내용보다, 그가 과거의 생을 통해 얼마나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는지를 들어냄으로써 영화는 지금껏 지켜낸 ‘현재’의 시제를 여전히 유지한다.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히라야마라는 인물이 가진 복잡한 내면을 장황한 설명 없이 순간적으로 설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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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는 히라야마라는 개인과 세상을 분리하기도, 연결하기도 하는 동시에 그의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기도, 연결하기도 한다. 그 횡단의 오고 감이 결국 삶이라는 것을, 그토록 미지적이고 명징하지 않은, 희미하고 갈팡질팡한 삶이 곧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화는 장황한 언어 없이 깨닫게 한다.

 

완전히 분리되지도, 연결되지도 못하는 인간과 삶의 아이러니와 그럼에도 존재하는 나와 세상은 지금, 여기에서 끝없이 넓어지고 있다. 어쩌면 숭고할 정도로 삶에 대한 소중한 태도가 느껴졌던, 그렇기에 조금은 벅찬 마음이 들었던, 영화 <퍼펙트 데이즈>다.

 

 

[차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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