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에 대한 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7.01 05: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글에 대한 글은 마르지 않는 샘일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가 지니는 의미, 특별히 글이 잘 써지는 시간, 선호하는 갈래, 자주 등장하는 대상... 활자들과 붙어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록 내가 쓰고 있는 대상보다도 글 자체에 대한 나름의 가치관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한동안 현생에 치여 글을 쓰지 못하다가, 차라리 쓰는 걸 현생으로 편입시키자는 묘수를 부렸다. 좋은 기회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일주일에 한 편의 오피니언을 기고할 수 있었고, 어느덧 에디터로서는 마지막 오피니언은 발행하게 될 순간을 맞게되었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나의 글쓰기를 회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adult-1850177_1280.jpg

 

 

미취학 아동 - 정말 태초로 돌아간다면, 내가 처음 글을 쓰게 된건 우리 나이로 6살인가 7살 때 한글을 막 뗀 순간부터였다. ㄷ을 뒤집어서 극을 바꿔놓고 ㅎ은 머리 한참 위에 모자를 덜렁 씌워 두던 시절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사실' 위주로 기록하는 일지를 썼는데, 이건 다분히 엄마의 영향이었다. 알아듣지도 못할때 부터 매일 잠들기전 책을 읽어주던 것, 일지는 스스로와의 약속이라며 나는 하지도 않은 약속 이행을 강요하던 것이 그땐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너무 감사하다. 


초등학생 - 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부터는 사건에 대한 감상이 주를 이루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세대까지 통용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초등학교를 다닌 2010년대에는 당연하게 숙제 중 하나가 일기쓰기였고, 담임선생님들이 일기를 검사하고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이 숙제를 정말 싫어해서 온갖 별명을 다 붙여 동생이나 친구 이름으로 한줄을 채우거나 날씨 얘기만 주구장창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반면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흥에 겨워 날아가는 필체로 몇장씩 일기를 썼다. 그렇게 500원 짜리 얇은 노트로 신발상자 두세개를 채웠고, 가보 처럼 간직하고 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일기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던 비밀도 없고 순박했던 시절이 있었던가 하면, 언제부터인가 일기장을 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등교를 했던 것 같다. 누가 볼세라 일기장을 서랍에 고이 넣고도 자물쇠를 거는 대신 주어를 생략한다던가, 반어법을 쓴다던가 엉뚱하게 내용을 비틀어 사춘기의 알량한 마음을 숨겼었다. 하지만 훗날 책상위에 번듯이 놓여있는 동생일기장에서 유혹을 느꼈을 때, 남의 마음을 훔쳐 보는건 정말 일도 아니란 것을 알게되었다.


중학생 - 중학생때도 역시 일기를 썼지만, 과업지향적인 글쓰기에 더욱 열중했던 것 같다. 특히 독후감으로 꽃을 피웠다. 1학년 때 김만중의 '사씨남정기' 독후감으로 교육감상을 받으며 물꼬를 트고나서 국어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많은 독후감 대회에 글을 냈다. 그 중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일제강점기 당시 여학생이 쓴 일기에 대해 감상을 써보라는 것이었는데, 일본을 찬양하던 그 기록이 검열에 대한 방패막인지 세뇌의 결과인지 도통 판단이 어려워서 내 글도 모호하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리고 1인 1책 쓰기 활동을 통해 소설과 시를 묶어내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낸 소설에는 '데쟈뷰'에서 착안한 SF물과 4대 성인인 예수,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나누고 니체가 천상계의 비서인 만담형식의 소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득할 뿐이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문예영재원에 다니며 나름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Project 당신_서간문'으로 기고한 "님에게 쓰는 편지"라는 글은 청자를 언젠가의 나로 두고 쓴 편지글인데, 이게 바로 영재 시험 때 제출한 글이다. 지금 쓴 글 사이에서 큰 이질감이 없는 걸 보면 그간 딱히 성장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전교생의 졸업앨범에 들어가는 축사를 쓰는 큰 영광도 누렸다. 누가 그걸 봐,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적어도 나는 졸업앨범을 버리지 않을 이유를 그 안에 새겨둔거니 그거면 만족한다.

 

고등학생 - 보고서, 자소서 뭐 그런 형식적인 글을 많이 썼다. 그래서 '글에 대한 글'을 생각하기 전까지는 고등학교 시기는 글과의 단절기라고 생각했는데 딱 하나 마음으로 쓴 글이 있었다. 바로 라디오 사연이다. 야간자습을 마치고 또 기숙사에 딸린 자습실에서 나머지 공부를 하다 방에 돌아오면 피로하다는 감각이 내 정신을 옴싹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생각은 또 얼마나 많을 시기인가. 잠에 들려고 누우면 잡다한 생각을 사연으로 갈무리하는 작업이 머릿속에서 펼쳐져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렇게 자면서 쓴 사연을 그 다음날 보내고 나면 설렘으로 이삼일을 보낸다. 작가님이 손을 봐서 사연이 읽히면 이게 내 사연이 보낸게 맞나, 긴가민가 할 때도 있었다. 대게는 부정과 자조를 모두 걷어낸 희망찬 사연으로 재탄생했다.

 

일기는 거의 주술장 같이 쓰였다. 감정 동요가 크게 올때만 선택적으로 일기장을 펼쳤는데 그 때마다 '제발'이라는 단어는 거르지 않고 등장했던 것 같다. '제발 잘하자'라는 말은 나중에 후회할 것 알면서 지금 그런식으로 방자하게 시간을 보내지말라는 자기 암시였다. 간혹가다 입시 후의 20살의 로망을 적어두기도 했던 것 같다. 그 로망은 실제로 20대가 되어보니 로망이 아닌 것들이 있었고, 나름대로 실현시킨 것들도 있다.


현재 -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는 글쓰기 교양 수업도 듣고 서평, 전시 서문, 오피니언 등 다양한 글들도 쓰고 있다. 사실은 아직 내가 원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영영 이를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경지는 바로 솔직해지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프로페셔널하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용기있는 사람들 같다. 날 모르는 불특정 누군가가 내 허심탄회한 글을 보고 공감하고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 있지만 그 대가로 내 주변인에게 나라는 사람을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는게 아직은 어렵다. 내가 남의 복잡한 사정을 내 문제로 비화시키는 걸 꺼려하는 만큼 내 속내를 남에게 보이는 건, 나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더불어 결례를 저지르는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

 

그래서 오피니언을 쓸 때도 자전적인 일보다는 브랜딩, 책, 작품에 관한 이야기로 나라는 사람을 필터링 해 보여주었다.

 

이번엔 에디터로서 마지막 글인 만큼 나의 이야기를 조금 꺼내보았다. 경지에 도달하는 담력이 생길때 까지 계속해서 글쓰는 삶을 위하여. 우리의 동행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임지영.jpg

 

 

[임지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9.0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