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혼자인 게 편한 사람들 - 혼자 사는 사람들 [영화]

글 입력 2024.06.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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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진아는 언제, 어디서나 늘 혼자다. 혼자 밥을 먹고, 출퇴근을 하며, 퇴근 후에는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홀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외출하는 그녀의 귀에는 늘 이어폰이 꽂혀 있고, 그녀의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돼 있다. 진아의 삶에는 타인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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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는 혼자가 더 편하다.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불편하고, 그들과 관계를 맺는 일은 피곤하다. 진아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은 채, 언제나 혼자인 그녀의 삶을 꽤 능숙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잔잔하고 고요한 그녀의 삶에 갑자기 여러 불청객들이 찾아온다. 매일 같이 말을 거는 옆집 남자.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진아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신입사원 수진. 그리고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갔음에도 엄마의 유산을 모두 상속받은 아버지. 1년 전 집에 돌아온 진아의 아버지는 딸인 진아가 자신의 외로움을 알아주기를, 자신을 돌봐주길 바란다.


진아의 일상에 균열을 내는 이 세 불청객들을 진아는 있는 힘껏 외면한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옆집 남자를 무시한 채 지나치고,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수진과는 거리를 둔다. 유산 상속 관련 서류 작성 등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아버지와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는다.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혼자가 되려는 진아는 감정이 결여된 사람처럼 보인다. 무표정한 표정과 무미건조하고 사무적인 말투.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감정을 쏟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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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는 진아가 독립적이고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 관계에 미숙한 사람이었음을, 감정이 결여된 것이 아니라, 되려 자신의 감정을 너무 많이 외면하고 억누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불청객들과의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며 억눌려 있던 그녀의 감정은 돌연 터져버리고, 그녀는 무너지고 만다. 실적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우수 상담원이었던 그녀는 갑작스레 찾아온 환청 증상에 카드 명세서조차 제대로 읽어내리지 못하고, 직장을 도망치듯 떠나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사과할 것을 소리치며 요구한다.


폭풍 같았던 하루 끝에, 그녀는 돌연 깨닫는다. 혼자가 편했던 게 아니라, 자신이 지금껏 타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해 외면해 왔다는 것을. 자신은 혼자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혼자 잘 사는 척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진아는 처음으로 관계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한다. 얼마 전 퇴사한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의 마음을 외면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타인 없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잘살고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오만함을 고백한다. 진아는 그렇게 수진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그와 이별한다.


혼자 사는 자신을 걱정해달라고 채근하는 아버지에게는 과거 자신이 집에 설치한 거실 CCTV로 그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진아는 그것이 자신이 아버지를 걱정하는 방식임을 밝히고, 아버지에게 ‘그 정도 사이’로만 지내자고 덧붙인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지만, 화면 모니터 안에 그를 가둠으로써 자신에게 상처 준 아버지와 억지로 마주하지도 않는다. 혹시나 모를 위급상황에 나서는 보호자. 그렇게 진아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며,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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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마주하고 정리한 진아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인다. 영화는 그렇게 달라진 진아의 모습을 통해 관계를 대하고 정리하는 보다 성숙한 방식을 이야기한다.

 

진아는 자신의 옆집에 새롭게 이사 온 성훈을 통해 관계를 대하는 자신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된다. 진아에게 말을 걸던 옆집 남자는 집안에서의 사고로 홀로 죽게 되고, 그의 시신은 무려 일주일이 지나서야 ‘쿰쿰한 냄새가 난다’는 진아의 신고로 수습된다. 1인 가구의 쓸쓸한 죽음, 고독사였다. 그리고 그 집에 이사 온 성훈은 그 집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던 옆집 남자의 제사를 지낸다. 몇몇 이웃들도 성훈과 함께였다. 그의 넋을 기리고, 그를 진정으로 추모하는 성훈의 모습을 진아는 조용히 지켜본다. 타인에게 자신의 곁을 조금도 내주지 않았던 진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게 성훈은 타인을 바라보고, 존중하며, 함께하는 자신의 삶을 진아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진아는 수진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마주하고,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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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일면 편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혼자의 삶에 놓인 저마다의 고독과 외로움을 ‘혼자 사는 사람’인 진아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며 결국 세상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는 없으며, 우리는 우리 곁에 놓인,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수많은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혼자임을 자의로 혹은 타의로 택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각자의 외로움을 삼켜내는 수많은 ‘혼자인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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