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이란 소동과 잔상 – 퍼펙트 데이즈 [영화]

글 입력 2024.06.28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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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하고 단조로운 일상의 장면


 

도쿄의 청소부, 히라야마. 모든 것이 시끄럽게 돌아가고 날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에서, 그의 일상은 적막하고 단조롭기만 하다.

 

그는 길거리를 청소하는 동네 아주머니의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깬다. 가꾸는 식물에 정성스레 물을 준 후, 가볍게 단장하고는 외출 준비를 마친다. 나가기 직전 잊지 않고 챙기는 필름 카메라. 그에겐 공원에서 점심을 먹으며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반짝이는 햇빛을 찍는 취미가 있다.

 

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잠시 보고 작은 파란색 차에 올라탄다. 차에서 그날 출근길에 들을 올드 팝 카세트 테이프를 고르는 루틴도 빠질 수 없다.

 

음악을 들으며 운전해 근무 장소인 공용 화장실에 도착한 그는 청소를 시작한다. 일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책을 읽다가 잠에 들고 꿈을 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빗자루 소리에 깨 아침을 맞이한 그는 다시 위와 같은 하루를 반복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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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주인공 히라야마를 따라다니며 그의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를 담았다. 그의 하루는 매일 똑같기 때문에, 영화 중반부터 관객은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그가 어떤 동선을 밟을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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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의 일상에도 불쑥 끼어드는 타인으로 인해 몇 가지 사건이 발생한다. 젊은 동료 청소부 타카시의 여자 친구가 히라야마의 볼에 갑작스레 입을 맞춘다던가, 화장실을 이용하는 누군가가 틈새에 끼워둔 종이를 발견해 서로 빙고 게임을 즐긴다던가, 오랜 시간 만나지 않았던 조카가 가출해 그의 집으로 찾아와 연을 끊다시피 한 여동생과도 재회하는 등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사건은 작은 소동으로 끝날 뿐 궁극적으로 그의 일상을 다른 방향으로 틀지 않는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독특한 형태의 로맨스나 우연으로 시작한 운명적인 우정 혹은 절절 끓는 가족애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들은 그저 한 순간 서로의 곁에 존재했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히라야마에게 남는 것은 막연히 ‘함께했었다’는 잔상이다.

 

 

 

소동과 잔상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다섯 가지 구성 단계가 있다고 배웠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발단과 전개만을 오간다. 이 영화에는 발단과 전개 뒤에 마땅히 따라붙어야 하는 또렷한 위기, 절정, 결말이 없다.

 

어릴 때 타인의 삶을 소설로 훔쳐보며, 난 막연히 우리의 인생도 발단, 전개 이후에는 스펙타클한 위기, 절정 그리고 결말이 온다고 믿었다. 세상 대부분의 이야기는 약속한 듯 그런 서사를 보여준다.

 

때문에 새로운 인물이 하나둘 히라야마의 인생에 끼어들 때 ‘이제야 위기, 절정 그리고 결말 부분, 즉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려나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나를 포함한 관객이 기다렸던 ‘진짜 이야기’를 펼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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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화는 ‘진짜 이야기’란 히라야마가 살아가는 일상의 장면들과 같다고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무수하게 끼어드는 소동에도 고독한, 분명 순간 반짝였음에도 후에는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는, 특별할 것 없고 약간은 지루하고 심지어 허무하기까지 한 것이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진짜 이야기’라고.

 

 

 

아름답고도 허무한, 코모레비


 

청소부인 히라야마는 확대경을 사용해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곳의 오물까지 닦는 등 화장실 청소에 열과 성을 다한다. 젊은 동료 청소부 타카시는 ‘어차피 더러워질 거 왜 그렇게 열심히 닦느냐’고 그에게 묻는다.

 

히라야마는 타카시와 달리 순간의 반짝임을 믿는 사람이다. 아니, 순간의 반짝임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 역시 화장실이 어차피 더러워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히라야마는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순간의 반짝임을 보기 위해 오늘을 산다. 꼭 오늘만 볼 수 있을 순간의 아름다움, 코모레비를 포착하기 위해 그는 몸을 일으키며, 나갈 채비를 하고, 상의 앞주머니에 필름 카메라를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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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뜻하는 일본 단어.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여느 날과 같이 작은 파란색 차를 타고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비춘다. 그가 선곡한 노래는 Nina Simone의 Feeling Good.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웃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의 시야는 동이 트는 주황빛으로 가득 찼다. 오늘도 오늘의 해가 떴다.

 

곧 사라져 버릴 이 찰나가 너무 허무해서, 그래도 볼 때마다 벅차오르게 아름다워서, 그는 울며 또 웃는다.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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