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임] 책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

글 입력 2024.07.05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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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서 관심사 기반 오프라인 모임을 연다고 했을 때 '공연'과 '도서'를 선택했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공연이긴 했지만,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짧게 독서 모임을 했을 때 좋았던 기억이 있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도서 모임에 배정 받았다.

 

첫 만남에는 가볍게 책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책을 선정하기에 앞서 서로의 독서 취향이나 습관을 파악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2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이지만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만큼 성공률이 높은 소모임이 없는 것 같다. 어떤 종류의 책을 읽고 싶은지, 평소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책 소비나 독서 습관은 어떻게 되는지 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첫 모임을 가졌다.

 

네 명이서 돌아가면서 추천 도서 2권을 가져오면 나머지 인원이 읽고 싶은 책을 투표하여 그달의 책을 정했다. 딱히 계획한 건 아니지만, 문학 2권과 비문학 2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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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책,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 독서 모임의 장점 중 하나는 자발적으로는 절대 읽지 않을 것 같은 종류의 책을 읽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에겐 로맨스 소설이 그런 종류다. <노멀 피플>로 잘 알려져 있는 샐리 루니의 신작 로맨스 소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는 사실 제목부터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아마도 평생 읽은 로맨스 소설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내게 로맨스라는 장르는 책으로 접하기에 낯선 장르다. 실제로 읽으면서 다소 고역인 부분도 있긴 했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각자가 등장인물에 대해서 느낀 점들이 달라서 흥미로웠다. 심리 묘사가 무척 많고 감정적으로 농밀한 소설이다 보니 각자가 어떤 인물에 더 이입했는지도 달랐다. 같은 소설을 읽어도 감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책, <화씨 451> - 두 번째 책은 내가 좋아하는 SF 장르였다. 특히 <화씨 451>은 전부터 SF 쪽에선 자주 회자되곤 하는 고전 중 하나였다. 책은 기대보단 세계관 구축이 허술했고 ‘방화수’라는 설정 말고는 지금 시대에 읽기에 특별히 새로울 건 없었지만, 모임은 정말 재밌었다. 책을 불태우는 세계에 대한 책이라니, 독서 모임에 이보다 더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는 책이 있을까. 우리는 이 시대에 독서의 의미가 무엇인지, 특히 모든 사람들이 독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열렬하게 토론했다. (신기하게도 항상 절반으로 나뉘곤 했다) 양쪽 다 각자의 의견과 이유가 설득력 있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책에 대해 토론을 하니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책, <다빈치가 된 알고리즘> - 독서 모임에서 처음으로 읽게 된 비문학. 예술과 인공지능에 대한 이슈는 나도 최근에 굉장히 꽂혀 있던 주제라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때 역시 책의 내용을 넘어서 인공지능이 예술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여 예술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미래를 가정으로 한 토론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이 엇갈릴 때도 있었다. 누군가가 의견을 말하면, 더 도전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보다 깊은 사고를 요구했다. 꽤나 치열한 토론이었던 만큼 지적 유희가 가득했다. 혼자 책을 읽으면서는 확장할 수 없었던 영역까지 생각이 뻗어나가는 경험이었다. 이날 이후로 예술에 대한 내 정의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네 번째 책,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 마지막 책은 내가 고른 책인데, 모임을 돌이켜 보니 사회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뤄본 적은 없는 것 같아 사회인문학 책을 골랐다. 평소 장애학에 관심이 많다 보니 모임원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책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역시나 토론이 더 재밌었다. 장애를 넘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 책에서 거론된 ‘서사편집권’에 대한 생각, 최근 이슈들에 대한 토론까지.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

 

우린 서로에 대한 정보는 끝까지 잘 몰랐지만, 그럼에도 친한 사람들한테조차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곤 했다. 책에서 거론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책을 넘어서 (사실상 책이랑도 별 관련이 없는) 다양한 주제를 놓고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펼쳤다.

 

그게 책이라는 매체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책은 영상 매체에 비해 더 적극적인 감상을 요한다. 그렇기에 더욱 개개인의 감상이 들어갈 여지가 많다. 책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속 깊은 이야기를 술술 꺼낼 수 있는 요상한 유대감이 생기곤 한다. 책 한 권이 던지는 질문과 시사점은 무궁무진하다. 혼자 읽으면 자신만의 세계에서 혼자 답하고 끝나겠지만, 다른 이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넓은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독서 모임에 배정되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4개월이었다. 이어지는 또 다른 4달 동안의 독서 모임이 기대된다.

 

 

[황연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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