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 새들의 무덤 [공연]

연극 <새들의 무덤>
글 입력 2024.06.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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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조명이 꺼지지 않은 무대 위로 한 남자가 올라온다. 일을 하기 위해 극장을 찾은 듯 보이는 그 남자는 이리저리 무대를 살핀다. 때마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던 그의 머리 위로 깃털이 내린다.

 

아장아장 걷는 새끼 새를 바라보던 그는 새의 몸짓에 매료되어 어디론가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남자의 지난 과거이다. 자유로이 나는 새의 궤적은 개인의 역사를 훑는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을 것 같던, 이미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어떤 순간들은 하얀 새의 움직임을 따라 차분히 떠오른다.

 

연극 <새들의 무덤>은 갑자기 나타난 새끼 새를 따라가며 자신의 기억을 되짚는 주인공 오루의 이야기다. 그가 겪어낸 개인의 역사는 한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리며 넓혀진다.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이제는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 이야기들은 연극을 통해 비로소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즉각반응] 새들의 무덤 포스터 0429.jpg


 

<새들의 무덤>이 짚어가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흐름 안에는 오루라는 생동하는 인물과 그의 삶이 있다. 부모님을 여읜 다섯 살의 오루는 후에 탁월한 청년 미싱사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선박 용접을 하는 중년의 어른이 된다. 한 개인의 삶은 시대의 변화의 안에서 격동하고, 성장한다. 그 개인의 흐름 안에는 1968년 군사정권부터 민주화 운동, 서울 올림픽, IMF 외환위기, 세월호 참사라는 한국의 기억이 있다.

 

그 격동의 시대 안에서 인간은 언제나 시대와 같이, 어쩌면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자본가인 아버지에게 분노하며 소리치던 수필은 어느새 자본가의 언어와 행위를 내뱉는 사람이 되었고, 그런 수필을 비난하던 판수 또한 빈민촌 철거에 앞장서는 탐욕적인 자본가가 되었다. 자본과 제도에 이리 저리 휩쓸려 흔들리는 인간들의 모습은 한국의 근현대사가 겪어온 변화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다섯 살의 천진했던 오루도 자신의 가정과 공장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뱉어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시대의 변화는 개인의 역사와 삶에 아프게 상처를 남긴다.

   

 

[즉각반응] 새들의 무덤 1.JPG


 

그렇게 계속되는 오루와 새의 여행, 결국 그 마지막은 도저히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은 꼭 붙들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기억에까지 다다르고 만다. 가고 싶지 않다고, 뭘 더 떠오르게 하려는 것이냐고 울부짖는 그를 끈질기게 이끄는 새가 여전히 있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엔 가장 소중한 ‘딸에 대한 기억’이 있다.

 

격동하는 한국의 근현대사, 성장을 위해서라면 영혼보다 자본과 제도를 쉽게도 앞장세우던 그 흐름은 결국 2014년에 도착한다. 이제껏 오루를 이끌었던, 그 귀엽고 아장아장 걷던 새가 곧 그의 딸 도손임을 깨달을 때, 지금까지의 긴 여정이 남기고 간 여운이 남는다. 무덤처럼 어둡게 가라앉아있던 아픈 기억들은 새와 오루의 여정을 통해 비로소 올려졌다.

 

연극 <새들의 무덤>은 마주하고 싶지만 결코 붙잡을 수는 없기에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의 기억과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붙잡고자 한다. 그렇게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는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지금 여기서, 그들과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극장에 앉아 새들이 함께 날아가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의 감각, 극장 안에 있는 모두가 함께 같은 것을 느끼고 있다는 그 현장의 감각은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다.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곧 희망이다.

 

 

[차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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