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쩌다 시에 꽂혀서는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6.2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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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는 상대방의 취향뿐만 아니라 그 깊은 애정의 근원도 궁금해한다. “왜? 어쩌다 좋아하게 된 거야?” 이 질문은 생각보다 답하기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겠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 술술 나오겠지만, 평소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이라면 “그러게…”로 뜸을 들이고, 머리를 열심히 굴려 소중했던 시간을 되짚어 보기도 할 것이다. 혹은 너무 많은 사연이 있어,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충분할지 망설이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해졌고, 페이지를 넘겼다.

 

첫 장을 읽었고, 다음 장을 읽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나는 슬픈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한 삶은 아니기에, 어떠한 이야기에도 슬픔과 시련이 담겨있지만, 그 크기가 너무 크다면 버겁다. 이미 우리의 인생은 때로는 허구의 이야기들보다 더 예측불가능하고 잔인한데, 굳이 삶에 휴식을 주기 위한 독서 시간에 감당 불가능한 우울함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눈에 보였다. 가족의 상실을 겪은 주인공이 애도의 시간을 보내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한 권의 책에 묘사될 것 같았다. 주인공이 점차 나아질 거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책 속 그의 눈에서 계속 차오르는 눈물, 입안이 자꾸만 말라 국물에 적셔 겨우 음식을 삼키고 그마저도 게워 내는 행위, 무기력한 겸이. 아, 그 아이의 이름은 겸이다. 겸이의 감정들이 내게로 전해져 힘들었다.

 

 

엄마 안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엄마 걱정中

 


하지만, 독서를 중단하기에는 시가 겸이에게 어떨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첫 장을 읽었을 뿐이지만, 이미 이 허구의 인물은 원래 알던 사이 마냥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계속 페이지를 넘겨 읽어갔다. 겸이는 이사 간 집의 책장에서 우연히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을 발견한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겸이가 시를 읽으며 느끼는 감정들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져서, 시를 읽는 동안 엄마를 기다리며 애태우던 그의 유년 시절 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도 그려졌다.

 

겸이는 그날따라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밤 열한 시가 돼서야 엄마가 돌아왔다. 불안한 마음이 현실이 되어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보고 잠을 못 이뤘을 아이에게 그날 밤의 어둠이 얼마나 길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안쓰러웠다.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 엄마 걱정中

 

 

겸이는 이 연을 읽으며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저 눈물 소진하고 나면

햇살에 반짝, 자체 발광하겠지

 

 

겸이에게 시는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지만, 현재의 감정을 표출하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그는 종종 사물을 관찰하며 공상에 빠졌다. 어느 날은 오래된 나무를 보며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텨왔을지 궁금해했다. 감정이 있었다면, 어떻게 눈물을 흘렸을지 궁금해했다. 비가 오는 날을 틈타 눈물을 흘리고, 다시 날이 개면 햇빛에 반짝 빛나겠다는 생각에 이르며 자신 또한 나무처럼 슬픔의 기간을 갖다 보면, 반짝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시를 읽고 쓰며 겸이는 자신을 알아갔다. 점차 기운을 내다가도 엄마와 관련된 사물을 보다가,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다, 문득문득 슬픔이 몰려오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젖은 마음을 말려가고 싶어 했다. 용감한 아이였다. 몰려오는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며 한껏 맞이했다.

 

김소월 시인의 ‘개여울’을 읽고, 가도 아주 가지는 않을 거라는 엄마의 위로를 비로소 이해하기도 하고,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을 읽으며 간장 속에 몸을 담그고 죽어가면서도 알들을 껴안고 보호하는 꽂게에, 저물어가면서도 남겨질 자신을 걱정했던 엄마를 대입해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겸이는 살아간다. 슬픔과 더불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행복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죄책감을 덜2어내고,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이 이야기가 무서웠던 이유가 “현실적인” 아픔이었다면,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현실성 때문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의 끝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흘러가는 일상, 소원하던 아빠와의 빠른 관계 회복, 어느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겸이는 슬픔이 다가올 때 어떻게 대처할지 알게 되었고, 아빠와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여전히 나는 이 이야기가 슬프고, 화가 난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착한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찍 일어났을까.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은 일어나고,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하기에, 겸의 시간을 따라가며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했다.

 

겸이는 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시는 가슴에 작은 냇물을 만든다. 온갖 감정들을 냇물에 실어 보내자, 시가 온몸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뻗어나간다." 이런 표현을 하게끔 만드는 대상이 나에게도 있을까?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 어쩌다 그렇게 사랑하게 됐나요?”

 

좋아하는 이유조차 몰랐냐며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사랑하게 된 것들의 이유를 생각하며 한순간 더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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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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