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반복, 그리고 변주 - 퍼펙트 데이즈

찰나에게 바치는 존엄한 춤
글 입력 2024.06.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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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얼렁뚱땅 흘러간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날아갈 듯 그 자리에 꼭 붙어 있으며. 시간은 나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흐르는 기준이 뜨고 지는 해가 아닌 할 일의 진행 상태가 된 지 오래다. 시차가 뒤섞인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그러니 세상은 더더욱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금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만이 내가 감각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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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내보이는 풍경은 단정하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마치 한 명의 수행자 같다. 가장 거시적인 차원에서 행하는 일상 의식. 일어나 이불을 개고, 싱크대에서 양치를 하고, 정해진 자리에 놓인 열쇠와 동전을 챙겨 밖으로 나와 하늘을 확인한다.

 

매일 같은 캔 커피를 뽑아 마시고, 공공화장실을 청소하고, 나무 그늘 아래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퇴근 후에는 목욕탕을 가고, 식당에 오자마자 물을 한 잔 마시고, 밤에 책을 읽다가 잠든다. 이 일련의 행위는 내일도 모레도 반복된다. 해가 뜨고 지듯이.


그의 취미도 그에 의해 ‘행해진다’. 아침마다 식물에 물을 준다.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는다. 밤마다 독서등 아래서 책을 읽는다. 필름 카메라로 나무를 찍는다. 이를 위해서 새싹을 캐고, 테이프와 책을 사고, 필름을 현상하러 간다. 그는 세상을 탐미하고 아날로그를 고수하면서 실재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려 한다.

 

이 역시 루틴처럼 단단히 뿌리내려 그를 구성하는 일부분으로서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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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날씨가 매일 달라지듯이, 음악과 책은 평생 다 접하지 못할 만큼 무수하다. 나무의 풍경도 햇살과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 똑같은 사진이란 없다. 예술적 변주는 역설적으로 반복을 유지하는 힘이다. 반복의 형식이 지루함이 아닌 안정감으로 느껴지게 한다. 잔잔하고 고요한 일상과 성격이지만 그 스스로는 아름다움으로 요동치는 내면이 된다.


그런 히라야마도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사람은 그의 인생 통틀어 가장 도발적이고 강렬한 변주 같다. 옆 벤치에 앉은 사람처럼 느슨하게 연결되기도, 함께 일하는 동료나 갑자기 찾아온 조카처럼 기존 일과에 뚜렷한 균열을 내기도 한다.

 

사람은 그에게 예기치 못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너무 많은 말을 하게 한다. 늘 가던 식당이 아닌 집에서 컵라면을 먹게 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평온할 것 같은 그에게 전화기 너머로 화를 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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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를 웃게 하기도 한다. 어제와 똑같은 집이지만 조카가 깰까 봐 조심조심 걷게 하고, 동전을 더 챙겨 캔 커피를 두 캔 뽑게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찾아온 친구를 바라보며, 단골 술집에서 주인의 노래를 들으며 미소 짓게 한다.

 

혼자서도 온전한 하루를 보낼 줄 아는 히라야마지만, 그가 숭고하리만치 행하는 일과는 다른 사람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게끔 마련한 토양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과를 반복한다는 건 그 토양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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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사람이 한번 뛰놀고 지나간 자리는 더 단단해진다. 감정이나 추억 같은 발자국도 남는다. 그렇게 다시 수행처럼 행하는 반복은 현재로서 새롭게 다가온다.

 

반복은 숱한 과거를 지나온 지금, 찰나에게 바치는 가장 존엄한 춤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이러한 사유를 설명하기보다, 느낄 수 있도록 그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묵묵히 보여준다.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 구의 17개 공공화장실을 진정한 공공을 위한 시설물로 실현하고자 기획된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건축가와 최정상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해 3월에 완료된 이 프로젝트를 기념하고자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에게 단편 영화 제작을 의뢰했다. 하지만 빔 벤더스는 지금의 도쿄를 찍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편 극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역제안하며 영화가 탄생했다는 후문.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건축물과 도쿄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은 덤이다.

 

7월 3일 개봉.

 

 

[문충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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