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콜팝을 먹다가 문득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글 입력 2024.06.3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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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최고의 간식 중 하나는 바로 ‘콜팝’ 치킨이었다. 우리 동네에만 국한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특별한 이벤트에는 항상 이 콜팝이 동원되었다. 가령 매 학기마다 학급 임원 선출이 끝나고 나면 보통 반장이나 부반장이 학급에 콜팝을 돌리는 게 관례였고, 소풍이나 운동회 등의 행사에도 종종 이 콜팝이 간식으로 제공되곤 했다.


생일파티도 역시 이 콜팝을 파는 치킨집에서 모이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일단 다 같이 치킨집에 모여 콜팝과 케이크로 생일 축하를 하고, 선물 교환식 후에 뒤풀이로 근처에 있는 방방(우리 동네에서는 방방이라 불렸다)에 가서 노는 것이 코스였는데,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는 방방이 노래방으로 대체되었던 듯싶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대단히 비싼 음식은 또 아니었지만, 기본 백 원 선에서 시작하던 학교 앞 문방구의 불량식품 시세와, 분식집에서 파는 5백 원짜리 컵 떡볶이에 비하면 콜팝은 분명 초등학생에겐 굉장히 고가의 간식이었다. 하루 용돈이 기껏해야 천원 남짓이었던 시절에 3천 원에 육박하는 콜팝을 먹기 위해서는 최소 3일은 용돈을 쓰지 않고 아껴야 감당 가능했기 때문이다. 3일 동안 컵 떡볶이의 유혹을 참고 마침내 얻어내는 따끈한 콜팝의 온기와 그 맛은 내게 마치 그 시절 유행했던 <마시멜로 이야기> 속의 퀘스트와 다름없었다.


세월이 흘러 중학생이 되고 또 고등학생이 되면서 용돈의 단위가 바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폭이 넓어졌고, 자연스레 다양한 맛을 경험하게 되면서 콜팝은 더 이상 내게 대단한 감흥을 주는 음식이 아니게 됐다. 마침내 3일을 참지 않아도 별 고민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간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굳이 찾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떠들썩하게 생일 파티를 하는 문화 역시 점점 자취를 감췄고, 학급 임원이란 대입에서 가산점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 그 누구도 간식을 돌리거나, 돌리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 우연히 그 치킨집을 방문했는데, 그 시절 생일 파티 사진들이 가득 붙어있는 벽면을 보고 잊고 지낸 추억이 떠올라 괜히 아련해졌다. 치킨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나를 포함해 익숙한 얼굴들을 찾아보았는데, 분명 당시에는 꽤 친한 사이였기에 파티에 초대되었을 텐데도 생일 당사자인 친구의 이름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사진을 찍어 문자를 보냈던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치킨집이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한 줄기 추억으로 남은 사진들 역시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우연히 그 시절 사진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굳이 추억을 소환하지 않았던 것처럼, 또 한참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늘 그랬듯 굳이 기억하지 않고도 잘만 살아왔다.


그러던 며칠 전 익숙하게 배달 앱을 뒤적이며 메뉴를 고르는데, 보통의 한 끼를 먹기에는 부담스러워 적당한 간식을 찾다가 패스트푸드점에 파는 콜팝을 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콜팝의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저렴했다. 그 맛이 여전히 변함없는 것처럼 가격 역시 그 시절과 다름없던 것이다. 혹시나 싶어 어린 시절 먹던 브랜드의 가격 역시 확인해 봤는데, 거의 2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물가가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가격 상승 폭이 크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3일을 참아 겨우 손에 쥐었던 그 콜팝이 이렇게 가성비 넘치는 간식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기도 잠시, 이 모든 것은 사실 3천 원에 대한 내 인식 변화로부터 기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팝의 절대적인 맛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나의 주관적인 입맛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콜팝을 처음 접한 그 시절에 나는 누군가 갑자기 돌리는 콜팝에 굉장히 행복해졌고, 3일 동안 참아내고 얻은 그 존재가 기대하던 맛 이상으로 소소한 성취감을 주는 보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콜팝을 먹는 지금의 나는 이를 통해 대단한 행복을 느끼기는커녕, 솔직히 거의 아무런 감정적 변화를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집을 두고 굳이 카페에서 작업하기 위해 값을 지불하는 행위에 대해 전혀 거리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 원은 굉장히 우습게 느껴진다. 그러니 음료 한 잔 값보다 저렴한 콜팝에 놀랄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스스로 어른이 되었다고 크게 자각하지 못했는데, 콜팝을 먹다가 문득 3천 원쯤은 별거 아닌 것처럼 느끼는 내 자신이 꽤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흔히 성인 하면 떠올리는 술 담배도 아니고 고작 콜팝 하나를 사면서 어른으로서의 자아를 발견했다는 것 자체로 왠지 어이가 없는데, 이를 자각하는 내 마음이 갓 성인이 되었을 때 느낀 설렘보다는 왠지 모를 씁쓸함에 가깝다는걸, 스물에 나는 아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행복의 기준치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보다 아는 만큼 무뎌지는 것에 가깝다는걸, 더이상 콜팝 하나에 아주 소박한 행복 하나조차 느끼지 못하고서야 알게 되었다. 고작 콜팝 하나에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 어린 내가 상상하던 행복한 어른처럼 매일 콜팝을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그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는 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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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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