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임] 그리고 우리는 뉴진스의 춤을 함께 추기로 했다

대표님의 수동 알고리즘으로 만난 세상 요란한 급발진 모임에 관한 짧은 역사
글 입력 2024.07.0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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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전주 한옥마을에서.

 

 

나는 어디 가서 내 이야기 하는 게 싫다. 나는 뭐든 아는 척하는 게 좋고, 뭘 잘 몰라서 망가질 거면 아예 재밌게 망가져서 모임의 분위기를 이끄는 게 좋다. 어색하게 혼자 앉아 있거나 바보가 되는 게 싫다. 이건 숫기가 없어 뭘 잘 주도하지는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한 혐오에서 올라오는 일종의 방어 기제다.

 

나는 보통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엠비티아이가 E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말을 많이 하고, 잘 웃는다. 하지만 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내가 못 하는 것도 못 한다고 말은 하지 그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오프라인 모임에 신청했다. 이로써 아트인사이트 내 모임은 두 번째로 참여하는 거였다. 방법은 대표님이 사전에 신청받은 내용을 기반으로 ‘잘 맞을 것 같은 사람들’을 모아 4개월 동안 함께하게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수동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멤버 추천이랄까.

 

영화에 대한 모임이었다. 나는 이런 모임에 관해 약간 우려를 갖고 있기도 한데, (이제는 과거가 된)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내 모습에 너무 도취되어서, ‘누가 영화를 더 많이 봤나’ 배틀을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면 나보다 훨씬 영화를 잘 보는 사람들을 만나버려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지옥에 빠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통 내가 만났던 모임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했다. 근데 첫 모임부터 내가 생각한 공식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매 모임이 급발진의 연속이었다.

 

 

 

1차 급발진 – 술 마시러 가기


 

처음 만나는 날에 나는 너무너무 지쳐 있었다. 그땐 다른 모임도 동시에 진행 중이었고, 언제나 일 벌이기 좋아하는 내 습관 답게 매일 저녁 스케줄이 다 차 있었기 때문이다.

 

모임 장소와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는 탓에, 나는 제일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근데 웬걸, 만나기로 했던 장소인 카페 내부가 너무 어두웠다. 아… 시작부터 꼬이네, 속으로 생각하며 얌전히 달달한 라떼를 시켜 먹었다. 커피 맛은 장난 아니게 좋았다.

 

어두운 아우라를 내뿜으며 4인석 자리에 혼자 앉아 눈치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들어왔다. 머리가 아주 곱슬곱슬한 사람이었다. 오… 커피를 시키고 오겠다고 했다. 저녁에 커피 괜찮아요? (이미 나도 커피 먹고 있음) 네 저 오늘 아트인사이트 마감이에요. 그러더니 커피를 홀짝 마신다. 커피 맛이 기가 막힌다며 놀랐다. 아 개웃기다, 느낌 좋은데?

 

이어서 차례로 사람들이 도착했다. 모두 일을 하고 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황이었다. 무슨 일 하세요? 전 미술관에서 일해요, 전 언론사 인턴하고 있어요. 우와 다양하다. 일은 어떠세요? 저 오늘 그만뒀어요~ 오.. 상상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렀다. 도저히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없는 대화였다. 그런데 너무 유쾌하고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별것 아닌 대화거리였는데도 미친 듯이 웃었던 기억 뿐이다. 어느 정도로 웃었냐면, 나중엔 너무 웃겨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다른 사람과 엠비티아이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웃겼던 적이 있었나…?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너무나 이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나는 근처에 아는 바에 가서 술 한잔 마시자고 했다. 첫 급발진이었다.

 

 

 

2차 급발진 – 영화제에 감


 

사실 영화 모임을 시작하며 구상 해두고 있긴 했으나 실제로 이뤄질 줄은 몰랐던 것이 바로 영화제 방문이었다. 마침 활동 기간과 전주국제영화제 개최 기간이 겹쳐서 제안한 것이었다. 예전에는 주변의 친한 친구들과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다.

 

보통 모임이 결성되고 처음에는 모두들 새로운 것에 대한 흥분과 의욕이 넘친다. 그래서 이런저런 제안에 모두 호의적인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각자 생활과 할 일에 파묻혀 금방 잊히기 마련이다. 꺼진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는 건 혼자서 하기엔 정말 버거운 일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는 이런 상황에서 입을 싹 닫기 시작했다.

 

그렇게 입을 싹 닫고 있던 중 채팅방에 메시지가 왔다. ‘저희 숙소 예약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니 진짜로 가는 거였어? 알고 보니 출품한 작품이 있어 원래 영화제에 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부랴부랴 전주 방문 계획을 세웠다. 이거야 말로 정말 ‘급발진’이었다. 이 모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비가 퍼붓던 전주 거리와 문에 구멍이 뚫려 있던 지나치게 ‘빈티지한’ 한옥 숙소, 그리고 밤새워 마시던 술과 너무 정신이 없어 바뀐 우산이 기억난다. 피곤한 상태로 본 영화들이 생각보다 좋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래도 자주 방문했던 영화제인데, 이렇게 기존 방식과 다르게 접근했던 건 처음이다. 어떤 분기점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경험.

 

 

 

3차 급발진 – 뉴진스 춤을 추기로 함


 

갑자기 뉴진스? 그렇다. 마지막 모임을 진행했던 날 우리는 뉴진스 춤을 함께 연습하자고 약속했다. 나를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놀랄 것 같은데, 나는 대학교 새내기 시절 외에는 절.대. 누군가의 앞에서 춤을 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춤을 좋아하는 두 멤버였다. 아~ 춤추고 싶다, 우리 춤출까요? 뭐 할래요? 저 뉴진스 하고 싶어요. 누구 할래요? 전 솔직히 하니 ㅎㅎ. 그렇게 멤버가 정해졌다. 어째 딱 이번 활동은 네 명이서만 해서 인원수도 딱 맞았다.

 

나는 춤을 정말 못 춘다. 그래서 춤을 싫어하는 척했지만, 사실 나는 예체능에 관심이 많다. 이렇게 춤을 추기로 결정한 것은 나에게는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처음에도 말했듯 나는 내가 잘 모르고 못 하는 분야와 관련된 것은 절대 남 앞에서 하지 않는다.

 

이번에 내가 뉴진스의 춤을 추기로 결정한 것은 뭐랄까, 4개월 동안 쌓은 모임 멤버들과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도 쉽게 용인되고 받아들여질 것 같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나를 뉴진스로 이끌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아직 부끄러워서 말하지는 못하겠다. 언젠가 또 다른 후기로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놀기만 했느냐? 절대 아니다. 우리는 한달에 한 챕터씩 영화 촬영 기법에 관한 책을 읽으며 서로 토론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달 영화를 한 편씩 보고 분석하기도 한다! 보통 4개월 이상 지속되는 거면 나에겐 제법 끈기 있게 하는 것이다. 싫어도 하고 좋아도 한다. 아니 사실 싫지는 않다. 피곤해도 하는 거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중요한가?


 

잘 모르겠다. 사람은 만나 봐야 아는 거고, 사람은 서로 이유 없이 싫어하거나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경우엔 너무 좋았다. 내가 일구어 온 삶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과 생각을 나누며 신선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편안하고 포근해지는 모임이었다.

 

사람과의 교류가 그리운가? 대표님의 수동 알고리즘으로 사람을 만나봐라. 긍정적인 자극을 찾을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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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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