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리로 선명히 목격하는 악 [영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글 입력 2024.07.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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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집.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시놉시스의 구절이 맴돈다. 초반부부터 묘사되는 루돌프 회스 가족의 세상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집 앞 마당 정원에는 빨강, 분홍, 노랑 빛깔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다. 그들은 따뜻한 햇볕이 드는 오후에 사람들을 초대해 차를 마시고, 아이들은 정원 수영장에서 웃으며 뛰어놀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의 집과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갈라놓는 것은 높고 굳건하게 서 있는 회색 벽뿐이다. 벽 하나를 두고 바깥에는 지옥, 안에는 마치 왕국 같은 집이 자리한다. 집은 벽 너머로부터 빈틈없이 보호받는 장소다. 담장 안에서 자신은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라며 웃고 만족스러워하는 헤트비히를 본다. 가족이 구축해 놓은 완벽한 꿈의 왕국을 바라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소름 끼치다 못해 혐오스럽다.

 

물론 그들 역시 모르지 않는다. 담장 밖에서 자행되는 학살과 쉴 새 없이 들리는 비명 소리의 존재를 알고 있다. 아이들과 배를 타고 놀던 강에 뿌연 물이 떠내려 오면 물에 닿은 아이들을 다급하게 비누로 씻긴다. 코와 입에서 재처럼 보이는 검은 덩어리가 나오면 물로 흘려보낸다. 보이지 않는 척, 들리지 않는 척 일관하며 일상에서 죽음을 지워낸다.

 

그렇게 그들의 귀에는 정원에서 노래하는 새소리와 잔잔한 바람 소리만이 들리게 된다. 모든 것을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있음에도 그 집을 평생 동안 꿈꿔오던 곳이라고 말하게 된다. 지위와 권위를 과시하고 치켜세우기 위해 많은 이들을 그 집의 정원에 불러들이게 된다.

 

타인의 죽음과 비명에는 아랑곳도 없이 그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고작 전출 따위다. 담당 구역의 변경으로 인해 완벽히 가꿔놓은 고아한 왕국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터전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 외에는 신경 쓸 대상도,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악을 집어삼켜 일말의 죄책감도 참혹함도 느끼지 못하는 탓이다. 평온한 얼굴로 가스실의 설계도를 보며 회의하는 이들. 아름다운 정원에 방해가 되는 잡초를 골라서 뽑아내듯, 사람들을 손쉽게 분류해서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들. 아무렇지 않게 학살을 저지르는 이들은 끔찍하고 가혹하다는 말로 채 설명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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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단 한 번도 참혹한 피해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비추지 않는다. 수용소의 굴뚝에서 밤낮없이 피어오르는 연기와 종일 들리는 총, 폭탄, 비명 소리로 대체한다. 사운드로 모든 것을 감각하고 귀와 피부로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보고 듣고도 자신의 우아한 세계를 영위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그 어떤 것보다 악을 선명하게 목격하도록 만든다.

 

더해, 이미지 대신 사운드를 택하며 묻는다. 우리는 어떤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가야 하는가. 들려도 들리지 않는 척 애써 무시한다면,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점점 무뎌진다면, 결국 그 소리를 완전히 잊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면 평범한 누구나 가해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의 후반부,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소녀의 모습만이 105분의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온기와 따뜻함이다. 간악무도한 존재도 인간이지만 순수한 사랑과 희망을 실천할 수 있는 존재도 역시 인간이다.

 

악을 피해 어둠이 드리웠을 때를 틈타 사과를 숨겨놓던 작은 소녀의 움직임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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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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