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름, 물고기 코이의 세상

글 입력 2024.07.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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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취업 수업의 마지막 즈음이었다.

 

딱 일 학점이 모자라 가볍게 들었던, 패논패 수업에서 교수님은 '코이'를 소개해 주셨다. 사실 '코이'라는 물고기를 처음 들어 본 건 아니다. 어항에서 자라면 5cm, 수족관에서 자라면 15cm 강물에선 25cm까지 자라는 신비한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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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삶을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코이의 법칙'에 빗대어 말씀해 주셨다.

 

더 큰 세상을 누비라고, 취업이 아니더라도 많은 곳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 내가 모르는 곳, 더 넓은 세상을 다니면서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한 번씩 그저 흘러가던 매일의 삶에 무료함이나 위압감이 느껴질 때, 사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지 잘 모르겠다. 비관적인 마음이 한 번씩 든다. 결국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생에서 이렇게 아등바등 열심히 살 것까지야. 그냥 적당히 내가 사는 작은 원 안에서 만족할 수는 없을까. 거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다 있는데, 난 왜 자꾸 어항 안 물고기처럼 물 밖으로 뛰어오를까.

 

어디를 보고 있길래 매일 두 눈을 꿈뻑 뜨고 뻐금 숨을 쉬며, 작은 꼬리에 힘을 주고 헤엄치는 걸까. 작은 코이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안정을 추구하지만, 매번 벗어났다. 도전을 추구하지 않지만, 매번 도전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어릴 적 돌아다니며 무전기를 쓰는 선배들이 멋있어 보여 시작한 방송반 일은 마음 한편에 계속 남은 추억 마냥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방송국원 일을 하게 만들었다. 하나를 하면 끝까지 하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많은 걸 해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많은 경력을 만들고 싶어 이것저것 했다. 그 든든한 배움들이 나를 안정감 있게 만들어줬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제작보다 나는 조금 더 안정적인 방송국이 더 좋았다. 하지만 내가 판단했을 때, 방송과 보단 영화과를 적는 게 더 유리했다. 지난날의 안정감에 안주해 내가 오만했다. 하고 싶은 방송 일이지만, 일단 대학교는 가야 했다. 재수라는 도전은 너무 큰 것만 같아서 유리한 방향을 찾았다. 늦게 영화과를 생각한 만큼 더 영화를 좋아하려고, 더 솔직하게는 면접관에게 영화에 진심인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했다. 울산에서 부산을 오가며 학원 다니다, 입시 원서를 쓰기 시작한 날에 대구로 학원을 바꾸고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입시 때는 많은 서울, 경기, 지방을 대개 혼자 돌아다니며 면접을 보고 글을 쓰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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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엔 더 많은 경험이 욕심나서 영상 제작단에 들어갔다.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경험 삼아 많은 편집을 했다. 웹 예능이든 영화든 뭐든 늘 열심히 했다. 아직 잘 몰라서 느리기 때문에 요령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내보일 수 있는 건 꼼꼼하게 정성으로 만든 영상 하나였다. 사회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사회는 경력을 바랐다.

 

나는 돈 대신 소중한 경험을 얻었으니 돈 보다 좋은 것이라 생각한 스무 살. 미래의 내가 안정적일 수 있게, 그때의 배고픈 도전을 했던 것이 아닐까. 근데 그 미래의 안정은 스물네 살에도 쫓고 있다. 아직도 마음 한쪽에 남은 게 있다. 스물한 살의 대학교 2학년생인 나는 그 당시 곧 3학년인데 이제 와서 과를 방송으로 바꾸면 너무 늦은 걸까 고민하다 결국 바꾸지 못한 것. 그때 너무 늦었다 생각하고 도전하지 않은 내가 아쉽다.

 

지금도 코이는 여전하다. 큰 물고기가 되고 싶지만, 커가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혼자 서울에 살아보고 싶어, 계획을 세워두고 아등바등 매일을 일하며 살아가 보기도 했다. 서울에서의 매일은 낭만 같았지만, 그 속에는 서울에서 살기 위한 매일 같은 노력이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안정적인 도전은 여전하다. 새로운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이루고 싶었던 걸 이뤄내는 도전. 그래도 서울에서의 경험 덕분에 삶을 살아가며 많은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결국 도전은 성공이든 실패든 경험이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보단 많은 도움을 준다.

 

근데 가끔 작은 어항으로 돌아가 가장 안정적이게 살고 싶다. 때로는 혼자 사는 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악착같이 서울에 가서 일하려는 이유도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서울에서 뭘 하고 싶은지도. 분명 있었는데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게 일이 있었는데 흐려진다. 가족이랑 있을 때 행복하면서, 좋은 꿈도 꾸면서 왜 안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데, 난 왜 더 큰 곳을 바랄까. 뭘 위해서. 내 인생은 딱 한 번인데. 삶의 목표가 뭘까.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이렇게 사는 것일까? 나는 미래에 뭐가 될까. 나를 돌고 돌며 생각하다 보니 길이 동그랗게 엉킨 실이 됐다.

 

그러다 "인생의 의미는 자기가 어떻게 채워가냐에 따라 달려 있다"라는 말을 봤는데, 보는 순간 그냥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생이라 생각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생각해 보면 매일의 일상이 잘 살아가고 있는 거였는데, 미래를 너무 생각하다 보니, 현재가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참 안정적인 매일을 행복한 매일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상상은 미래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 현재의 나는 아주 평화로운 매일을 살고 있으며, 좋아하는 글을 쓴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내 짝꿍과 아주 다정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서. 제철 음식을 한껏 맛보고 좋아하는 향과 생각을 즐기면서. 딱 하나 미래의 내가 안정적이길 바라, 지금 누리고 있는 안정을 불안으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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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다하는 사람들의 용기의 넓이가 부럽다. 나는 아직 그런 용기가 부족해서 늘 상상한다. 잘 될지 안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뭐든 나를 믿고 도전.

 

한없이 여행을 하며 그 느낌을 글로 쓰는 상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고 경험하는 상상, 가족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는 상상, 배우고 싶은 것들을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배울 수 있는 상상.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찾아 끝없이 발전하는 상상. 그냥 내가 잘하고 싶어서 생각하는 모든 불안을 접어두고 평안에 이른 상상. 걱정 없는 삶을 상상. 안정적인 게 좋아서 도전에 천천히 뜸을 들인다. 그러나 뜸은 결국 식는다.

 

여름, 코이의 세상은 상상으로 가득하다.

 

무지 더웠던 초여름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멍하니 있다 마주한 '코이의 법칙'. 다시 끔 큰 강물로 뛰어든 것 같았다. 햇살이 들어오는 물의 반짝임, 숲이 비친 투명하고 넓은 강물. 강물을 안아줄 만큼 코이는 커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또한 상상이다. '커졌다'가 아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의 확실하지 않지만 확신하는 미래형. 아직은 미래에 대한 물음표만 가득한 호기심의 작은 물고기 코이.

 

사실 불완전해서 더 완벽한 코이의 어린 여름. 지나서 다시 끔 이 글을 읽었을 땐, 풀 내음이 날 것 같은 코이의 생각.

 

코이는 커서 뭐가 되고 싶은 걸까?

 

 

[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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