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정상인이고, 누가 비정상인인가? - 펀치드렁커드 [만화]

글 입력 2024.07.0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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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읽을만한 웹툰이 없는지 무한히 스크롤을 내리다가, 어딘가 익숙한 그림체의 한 작품에 시선이 걸렸다. 제목은 <펀치드렁커드>. 제목의 뜻을 바로 이해할 순 없었지만 묘하게 끌리는 느낌에 작품을 눌러봤다. 작가의 이름을 보자마자 익숙한 이유를 알았다. 작가 이름은 ‘고태호’. 그리고 나는 이 작가의 이전 작품들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었다. <방백남녀>, <당신의 과녁>이라는 작품인데, 인간 내면의 심리를 세밀하게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작품 <펀치드렁커드> 역시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를 자세히 보여주며 생각을 곱씹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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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드렁커드> 공식 소개 글을 보면 이렇다.

 

 

“정신건강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 도민수, 하지만 그는 오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그러던 와중 해마다 열리는 병원 야유회에 책임자로 참여하게 되고 갑작스러운 폭설로 인해 환자들과 휴게소에 고립되고 만다. 이에 함께 갇힌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는데…”

 

 

폭설로 인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정신과 의사, 정신병동 직원 및 정신질환 환자, 시민들이 한 공간에 갇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이 내용만 봐도 환자와 시민 사이 몰아치는 갈등이 예상되지 않는가?

 

자신들을 ‘일반인’이라 확신하며 ‘환자’로 명명된 사람들을 철저하게 구분 짓고 배척한다. 정신이 아프고, 약을 먹고, 케어를 받는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무시하는 행동을 보인다. 본인들이 지닌 편견, 차별, 혐오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반인’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환자’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일까? 폭설에 갇혀 함께 생활하는 동안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다. 결코 저 ‘환자’들의 처지와 ‘일반인’의 상황이 다르다고 단정 지을 수 없음을.

 

작품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누가 정상인이고, 누가 비정상인 인가. 정신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비정상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상인인가? 적어도 이 작품 안에서는 자신의 아픈 점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사람과 아픔을 아직 인지하지 못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사람만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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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웹툰 '펀치드렁커드' 3화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정신 병동에 있는 분들이 더 용감한 것은 아닐까. 자신의 아픈 부분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에 스스로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아픈 부분이 약점이라 생각하며 최대한 들키고 싶지 않아 숨어버린 약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혐오에 기인한 차별은 서로를 배척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자신의 아픔을 더 꼭꼭 숨기게 만든다. 내 아픔을 인정하는 순간 차별하던 대상이 내가 되기에. 그러므로 나의 아픔을 들키기 않기 위해, 더욱 필사적으로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사람을 나누고 ‘정상’이라는 이름 뒤에 숨기 때문에 약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되뇌었던 ‘누가 정상인이고, 누가 비정상인 인가?’에 대한 생각은 작품을 읽는 내내 고민했는데, 나는 꽤나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그저 개인이 겪어온 상황이 다를 뿐, 그 누구도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나눌 수 없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모호하며, 나 또한 정상이 되었다가 비정상이 될 수 있으므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법은 그 경계를 나누지 않고 나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작품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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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웹툰 '펀치드렁커드' 40화

 

 

아마도 저흰 실패하게 될겁니다.

수십 번? 수백 번? 아니면 수천 번을 말이죠.

의존하고 있던 걸 끊어낸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니까요.

그럴 때마다 수십 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몇 번이 되든 기회를 줍시다. 스스로에게.

언젠가 이겨낼 그 단 한 번을 위해.

 


인생은 어쩌면 온전한 나를 지켜내기 위한 과정의 연속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지만, 순식간에 혹은 나도 모르는 순간 잠식되듯 무너지고는 한다. 설령 그게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다고는 한들, 무관한 일이 아님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저 인정하지 않았을 뿐 내 안은 곪아가고 있었을 수도 있고,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해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도 아니다.

 

애초에 강한 사람은 없다. 절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넘어졌는지가 아닌, 넘어졌을 때 어떻게 일어나는 지다. 넘어졌다고 그대로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는 게 아니다. 툭툭 털고 일어나 어디를 다쳤는지 보고,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며 기다리자. 언젠가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기를. 그 과정이 꽤나 아프고 고단할지라도 시간이 걸려도 결국에는 상처는 아물 것이다. 그러니 넘어져도 괜찮다고, 아파도 괜찮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말해주자. 언젠가 이겨낼 그때를 위해.

 

폭설로 인한 고립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 스릴러일 것이라 생각했던 <펀치드렁커드>는 들춰보면 심리 치료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그 때문에 참 많은 생각을 곱씹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나를 투영해서 보게 될 때 독자였던 나 역시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더욱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는데,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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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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