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카프카의 사후생이 예술과 세계 사이에 던지는 질문 - 베냐민 발린트,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카프카는 누구의 것인가?
글 입력 2024.07.0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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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포함한 예술작품들은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 오롯이 창작자의 것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작품에 대한 법적인 권리는 당연히 창작자에게 있지만, 그 작품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그 작품의 행방을 결정하는 일은 결국 그 작품을 향유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그 과정에서 창작자와 소비자의 이해(利害)와 의견이 달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을 거치며 예술작품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평가가 당대의 그것과는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경우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창작자의 생각이나 결정에 대해 명확하게 알기 어려워지면서, 정작 작품의 창작자는 그 작품의 거취와 작품에 대한 해석에 관여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위대한 예술가로 현대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수많은 이들의 경우가 그랬고,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 <소송>, <성> 등 의미심장하게 해석되는 천재적인 작품들과 함께 세계 문학사에서 독보적인 캐릭터성을 구축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의 소설이 그랬듯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가진 아이러니와, 권위 간의 힘 겨루기와 이해관계 속에 배제되고 무력해지는 개인의 모습을 재현한다.


프란츠 카프카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모든 공책, 원고, 편지 등 자신의 그림과 글을 전부 태워 달라고 부탁하는 쪽지를 남기지만, 그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브로트는 오히려 나치의 위협 속에서도 카프카가 남긴 것들을 모두 챙겨 팔레스타인으로 망명해 오고, 이후 가족처럼 지냈던 자신의 비서 에스테르 호페에게 그 모든 문서를 증여한다.


에스테르 호페 역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두 딸들에게 이를 모두 증여하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독일의 마르바흐 아카이브가 문제를 제기하며 긴 소송이 시작된다. 이 소송에는 각 국가 간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다른 한 편에서는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막스 브로트 유산의 상속자로서 에바 호페 개인의 삶과 감정이 녹아들어 있었다.


베냐민 발린트의 논픽션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카프카의 이야기들을 닮은 카프카의 유고에 관한 소송 과정을 다각도로 풀어내며, ‘카프카’를 경유해 예술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와의 관계에 대한 오랜 질문을 다시금 우리 앞에 던져 놓는다. ‘카프카는 누구의 것인가.’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 표지.jpg

 

 

카프카의 유고를 둘러싼 기나긴 논쟁과 소송에 대해 살펴보려면, 막스 브로트와 프란츠 카프카의 관계에 대해 먼저 살펴봐야 한다. 막스 브로트와 프란츠 카프카는 외형적인 이미지도, 성격도, 글을 쓰는 방식도, 대부분의 것들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독일어를 사용하는 프라하의 유대인으로서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무엇보다 막스 브로트는 프란츠 카프카의 재능에 열광하는 독자였다. 그는 카프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와 관련된 것을 ‘병적인 수준으로’ 수집했고, 스스로의 작품을 저평가하는 카프카에게 창작과 출판을 끊임없이 독려했다. 카프카의 사후, 브로트는 자신의 모든 문학적 유산들을 없애 달라는 카프카의 부탁에 따르지 않은 채 카프카의 유고들을 편집해서 출판하고, 카프카의 문학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 여생의 대부분을 헌신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생전 단 하나의 문학 비평에만 작품이 언급될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던 카프카는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연구되는 작가가 되었다. 책 속에서 ‘사후생’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카프카와 카프카의 작품들은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처럼 세계 문학계에 새롭게 등장하고 추앙받으며 아직까지도 그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카프카의 명성이 그가 완성하지도 않았고 출간을 허락하지도 않았던 텍스트들에

의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아는 카프카는 브로트의 창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브로트는 카프카의 마지막 부탁을 배신함으로써 그의 유산을 두 번

-한 번은 물리적 소멸로부터, 또 한 번은 무명성으로부터-구해냈다.

카프카의 사후 명성은 브로트의 소행이었다. 

유다가 없었다면 십자가 수난도 없었으리라는 말이 있다. 

브로트가 없었다면 카프카도 없었으리라는 말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카프카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브로트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카프카를 읽을 때 브로트처럼 읽게 된다." 

 

- p.193

 

 

브로트가 카프카의 작품을 다루고 카프카를 해석하는 방식은 사실 많은 연구자들에게 지탄받았다. 그는 카프카의 유고를 자의적으로 편집해서 출간했고, 카프카를 유대 문학의 맥락에서만 해석하고자 했다. 그는 카프카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그 배경에 그 개인의 욕망과 시온주의에서 비롯된 민족주의 사상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가 카프카의 ‘사후생’에 한 기여는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카프카의 의지나 바램과는 전혀 다는 방향으로 전개된 그의 ‘사후생’ 속에서 그를 접하고 이해하고, 해석해 왔을지 모른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설정처럼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 없이 전혀 다른 존재로서 삶을 살게 된 사후의 카프카는 진정한 ‘카프카’라고 할 수 있을까?


카프카의 유고 소송에 참여한 이스라엘 측과 독일 측도 카프카를 그들의 이해관계 안에서 읽어내고, 카프카에게 각자가 원하는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와 그 이후 세대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민족적 응집력을 높일 매개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서 카프카의 작품들을 소유하고자 했고, 독일에게 카프카를 ‘뺏길 수 없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문학은 역사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독일인들에게 중요한 뿌리가 되어 주었다. ‘독일’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독일어 작품을 남겼던 뛰어난 예술가와 철학자들, 그리고 그들의 유산은 공동체를 묶어주는 정신적인 버팀목이기도 했다.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는 카프카의 작품을 이러한 독일 문화의 뿌리를 계승한 ‘독일 문학’으로 분류했고, 아카이브 컬렉션으로서 카프카를 분류하고, 연구하고, 전시하고자 했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카프카의 유산을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음을 내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카프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삶과 작품 전체를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속할 수 없는 ‘디아스포라’로 존재했다. 그는 독일어를 너무나도 완벽히 구사하는 유대인으로서(동시에 히브리어나 이디시어를 할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 온전히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글조차 오롯이 소유할 수 없음에 좌절하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무엇에도 소유되지 않는 자유를 찾고자 했다.


프란츠 카프카는 작품을 통해 거시적인 이해관계 아래 무력해질 수 밖에 없는 개인에 주목했고, 그럴듯해 보이는 권위가 가지는 역설과 모순, 인간 밑바닥에 깔린 본질적인 욕망과 불안을 짚어냈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기울어진 해석과 소유욕으로는 물리적으로 그의 작품을 점유할지언정 그를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고, 오히려 그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들을 재현하게 될 뿐이다.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는 이렇게 썼다. "예술은 결코 소유물이 아니다.

후원자의 소유물도 아니고, 심지어 예술가들의 소유물도 아니다."

본 소송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유욕이 약했던 남자가 남긴 예술 유산을 소유하려고 하는 자들의 정체를 폭로했다. 라이너 슈타흐는 카프카에 대해 이렇게 쓴다.

"그가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어 기뻐했다는 일화는 그의 일생에서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그와 달리 이스라엘과 독일에서 카프카의 상속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카프카가 그들의 것이 아님을 잊고 있었다.

굳이 관계성을 따지자면, 그들이 그의 것이다."

 

- p.313

 


카프카 유고의 소유권에 대한 소송이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예술과 그것을 둘러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 예술은 무엇에 의해 온전히 소유될 수 있을까? 우리가 점유하는 예술 작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책 속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감정과 관계 속에서 카프카와 그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의미 부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과도하게 기울어진 해석은 타당성과 효용성을 가질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예술을 그것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맥락에서 벗어나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완전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무향실 안에만 존재하는 예술이 어떠한 의미에서는 순수한 것일 수 있어도, 그것을 ‘예술’로 오래도록 존재하게 하는 반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무향실 밖에서 만들어진 예술을 무향실 안에서만 감상하고 해석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불가능한 일이다.


예술과 예술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세계 안의 수많은 권위와 주체들은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의미나 가치는 한 방향으로만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기의 이들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의 매커니즘을 한 꺼풀 한 꺼풀 정밀하게 벗겨내고 분석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명확하게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관점이나 입장으로만 예술을 다루고 이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과 넓은 맥락에서 예술과 예술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들은 더욱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그렇기에 우리 곁의 예술을 그것을 둘러싼, 우리 역시 함께 속해 있는 세계에 비춰 바라보는 시각에 균형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사후생을 뒷받침하고 마주하는, 남겨진 우리의 몫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책에 언급된 것처럼 카프카의 유고를 둘러싼 소송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고, 카프카의 사후생도 여전히 세계와 함께 변동하며 이어지고 있다.


카프카가 떨어뜨린 나뭇잎들이 어떤 바람을 타고 어느 곳으로 향할지, 그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카프카의 사후생이 단지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그가 이해받고자 했던 혹은 드러내고자 했던 어떤 것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이를 통해 그가 지금이라도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프란츠 카프카는 오래 전에 땅 속에서 잠들었고 법정의 소란도

이제는 잠잠하겠지만, 그의 글이라는 떨어진 잎들, 흩어진 종잇장들은,

거처가 어디든, 여전히 우리와 함께 바스락거리고 있다."

 

- p.325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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