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설령 변하지 않는 것이 저주일지라도 - 와이키키 브라더스 [영화]

임순례,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글 입력 2024.07.0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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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차 생소한 와이키키의 빛나는 해변을 바라며 힘차게 나선 청춘의 두 발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아마도 그들이 꿈꿔온 와이키키 해변과는 전혀 달랐을, 누추하고도 보잘것없는 현실의 삶과 어른의 세계는 빛나던 한때의 마음을 참 쉽게도 비참하게 만든다. 그토록 바라고 꿈꿔오던 이상이 무너진 순간, 사람은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거짓 세뇌를 속삭이며 이상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할까. 어쩌면 영화 속 누군가처럼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른 채, 그저 목석처럼 가만히 서서 꿈을 바라왔던 빛나던 지난날을 회상할 수밖에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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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한때 한국의 비틀즈가 되리라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던 젊은 청춘이었으나, 가라오케와 노래방의 보급으로 인해 설 자리가 없어진, 그렇기에 어두운 나이트클럽에서 술에 취한 사람들의 유흥을 위한 배경으로 일하고 있는, 이전보다 조금은 낡아진 청춘들이다. 이제는 한 가정의 아버지뻘이 된 이들을 ‘청춘’이라 칭하는 이유는, 그 모진 세월의 풍파 안에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나마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경이의 표현이랄까.

 

그렇다 할 변변한 무대 없이 유흥업소들을 전전하던 이들은 ‘웬만하면 마주 하기 싫었던’ 고향 수안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게 된다. 어디든 좋으니 수안보만 아니면 된다던 성우의 목소리가 내내 가슴에 남는다. 가슴 속 희망만을 가지고, 막상 손에는 아무것도 쥐지 못한 이전의 모습과 그대로이기에 빛나는 첫 마음가짐이 있었던 그 자리로 분명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생계를 위해 그 비루한 몸으로 고향 수안보에 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고향은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노래를 참 잘 불렀던, 성우의 강렬했던 첫사랑은 억척스러운 야채 트럭 사장이 되어있었고, 같은 꿈을 꾸던 친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회인들이 되어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성우를 보며 ‘너는 예술을 하기에 늙지 않는다’며 너스레를 떨지만, 성우는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누군가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두 사람 모두의 얼굴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과연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알 수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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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동지인 밴드의 멤버들 또한 현실에 몰두하지도, 이상에 온전히 매료되지도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 술과 도박, 그리고 여자에 손을 뻗게 된다. 적지 않은 세월의 흐름 안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은 성우뿐이다. 그는 언제나 한결같이 꼿꼿한 자세로 음악을 대하고 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너는 행복한가’ 하며 묻는 친구의 질문엔 끝내 답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성우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꿈을 포기할 수 없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꿈을 꾸는 것만을 해왔던, 다른 선택지 따위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을 꿈만 꾸며 살아왔던 성우에게, 꿈이란 이제 그다지 낯설지 않은 관성과도 같은 삶의 일부가 되었을 것.

 

그렇기에 그는 계속 추억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 꿈과 이상의 괴리 안에서 혼란해하는 지금의 '살아냄'보다 내가 가장 찬란하고 의미 있었던, 인생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과거의 어린 순간들을 말이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고, 아직은 미숙해도 모든 게 완벽해지리라는 천진한 낙관이 있었던 그때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그가 진정 바라는 건, 어쩌면 빛나는 성공이 아닌 그때의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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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의 작은 무대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가 생계를 위해 어느 난잡한 룸살롱에서 비로소 나체가 되었을 때, 취한 채로 벌거벗고 춤을 추는 누군가의 난장의 외곽에 서서 처음 텅 빈 표정을 짓게 되었을 때, 존엄 없는 누군가와는 전혀 다른 상태에서 그들과 같은 행색이 되어야만 했을 때, 어렸을 적 나체로 바다에서 뛰놀던 과거의 추억이 그의 옆을 지나간다. 같은 나체의 행색이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성우의 현상황이 이리저리 뒤섞인다. 그 때와 같이 나체의 상태, 그때와 같이 음악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희비는 극명히 교차한다.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저주일까. 이 장면에서 성우가 떠올렸을 어떤 문장을 감히 유추해 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이 설령 저주일지라도, 그의 꿈이 이제는 낡아빠진 관성이 되어버렸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를 계속 응원하고 싶다. 그의 꿈을 응원하고 싶다. 수안보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진 성우는 그의 첫사랑에게 여수로 떠나기로 했음을 전한다. 여수 바다를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는 그녀. 이어지는 장면은 아마도 여수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바다 이미지를 배경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제는 3인조가 된 와이키키 밴드와 첫사랑의 무대이다. 단언컨대 그 무대는 이들이 영화를 통해 보여준 무대 중 최고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한번 더 그들의 낡고 지루한, 외곽의 삶과 꿈이 만들어낸 무대를 보고 싶어졌다. 행사 전문 가수 너훈아와 땜빵 엠씨 이엉자처럼, 한 때는 대한민국의 비틀즈와 퀸이 되기를 천진하게도 단언했지만 실패한, 영원히 ‘일류’는 될 수 없을지언정 발붙이고 있는 그 자리에서 가뿐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들이 되기를. 설령 음악을 그만둔다 해도, 혹은 음악을 계속한다 해도, 영원히 청춘일 그들의 삶을 무턱대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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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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