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관조의 예술, 예술은 다 그렇다 [공연]

차진엽 안무/연출 <몽유도원무>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글 입력 2024.07.0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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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해오름극장 뒤편에 위치해있다. 작은 규모라고 하기엔 크고, 또 크다고 하기엔 작은 정도의 무대이다. 이번 국립극장 레퍼토리 공연인 <신선>과 <몽유도원도>는 2년 전 더블빌로 초연되었다. 이번 두 작품을 같은 시기에 올리며, 초연과 달라진 개선점을 찾아볼 수 있다. 필자는 이번 공연만 보았기에, 처음 감상하는 입장에서 리뷰를 남겨보고자 한다.

 

먼저 <몽유도원무>는 현대무용수이자 안무가 차진엽이 국립무용단과 함께 만드는 작품이다.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걸작이자 한국 산수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몽유도원도’ 작품을 모티브로 한다. 안견의 그림을 보면, 그림 왼편의 현실 세계와 오른편의 이상 세계는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그의 작품에서 얻은 영감을 토대로 자연과 삶에 대한 감상을 차진엽만의 방식대로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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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무대 위에는 직사각형 모양 비단이 내려와 있다. 그 배경을 채우는 건 다름 아닌 무용수들, 그림자를 활용하여 소수의 무용수가 복제되어 다수의 무용수를 만들어낸다. 화폭에 담긴 그림처럼 검은색으로 보이는 무용수들의 그림자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그 앞을 봇짐을 맨 농민으로 보이는 무용수가 지나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여러 봉우리의 산을 굽이굽이 넘듯 걸어가고, 배경 역할을 하고 있는 무용수들은 뭉쳤다가 흩어져 헤엄치기도 하고, 뒤집은 엉덩이는 산의 봉우리가 되기도 하고, 굴곡진 팔은 바람과 나무가 되어 풍성한 그림을 구현해 낸다.


잠시 뒤 어느새 모두가 등 뒤에 봇짐을 매고 흰 의상을 동일하게 입고 걷는다. 함께 산을 굽이굽이 오르며 끝없는 삶의 여정을 그려낸다. 까만 뒷 배경에 무채색 의상을 걸친 무용수들은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한 기분, 그리고 그림의 왼쪽 세상인 이상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설정을 재현한다. 국립무용단의 토대는 한국춤에 있기에 현대춤 안무가와의 협업이 서로 절충된다고 예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한국 창작춤과 현대는 그 경계가 거의 흐려지고 있고, 오히려 현대춤과 한국춤이 섞였을 때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한국춤의 곡선미나 굴신의 포인트들이 더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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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던 무용수들은 자신의 봇짐을 한 자리에 모아두고, 마지막 남은 한 무용수가 이어진 봇짐을 끌고 무대 뒤로 들어간다. 무대에서 음악은 별다른 멜로디 없이 베이스로만 밑바닥부터 찬찬히 음정을 쌓아가고, 고요하면서도 묵중한 저음이 삶의 무게를 찬찬히 쌓아가는 듯하며 금세 어둑어둑해진 밤이 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극에 몰입하게 한다.

 

무릎과 허벅지 사이 근육에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나오는 한국무용 특유의 굴신은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며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심상을 이끌어낸다. 더불어 몽유한 분위기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자연의 긴장감을 유발한다. 몽유도원도 또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기에, 무대 전반적으로 자연이 주는 치유감과 깨끗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무대 뒤편에서 길게 늘어지는 활옷을 걸친 한 남성이 한 마리의 학처럼 무대 뒤편을 누빈다. 아주 천천히 발을 내딛으며, 고상한 아우라와 함께 모두를 걸음걸이만으로 압도한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가야금 소리에 맞추어 흰색 활옷은 초록색 조명에 의해 물들기 시작한다. 이때의 시각적 효과는 마치 흔들리는 오로라를 연상케 한다. 또한 반대편에서는 긴 막대기를 어깨에 걸친 한 남성이 등장하고, 노을이 지는 바다에 떠가는 한 척의 돛단배처럼 유연하게 이상의 세계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이어지는 최호종의 솔로 파트는 한 마리의 독수리처럼 이목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바닥의 효과 또한 일종의 거울처럼 비치는 효과를 주어 물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처럼 보였으며, 정말로 물 위에서 춤을 추는 듯 흐름이 끊기지 않는 춤사위를 선보인다. 많은 훈련 시간으로 단련된 몸은 인간의 모습보다는 동물의 야생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처럼 보였다. 관능적인 그의 움직임으로 국립무용단의 무용 실력 위상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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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후 뒤쪽 무대에서 애어 벌룬을 다리에 이끌고 등장하는 여성 무용수 또한 이상 세계에서 상상할 법한 동물을 연상케 한다. 마치 달팽이처럼 초록색 의상을 입고, 다채로운 이상 세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동물은 감정적이고 본능적이라는 특징이 있지만 이와 더불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생명체로서 일종의 물아일체가 되는 모습을 표현한다.

 

자신의 몸보다 큰 풍선 위에서 앉기도 하고, 그 속으로 숨기도 하고, 1막에서보다 더욱 부드럽고 자유로워진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뿐만 아니라 촉각까지 감각의 확장을 이루어낸다. 1막은 현실적인 바뀌지 않는 단단한 돌 같았다면, 2막에서는 톡 하고 건들면 물결이 치는 듯한 환상적인 세계, 전기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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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버전에서 ‘몽유도원도’를 보면, 느림의 미학이 떠오른다. ‘복잡함 속 단순화’, ‘단순함 속 복잡함’, 하나의 화폭 또한 멀리서 보면 단순한 풍경화 같아 보이면서도, 가까이서 봤을 때 작가의 고군분투한 인생의 굴곡, 비단에 그려진 먹과 붓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하다.

 

하나의 붓 터치 안에 작가의 고민과 생각이 담겨있을 것이며, 단순함 속에 복잡함을 숨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몽유도원무’ 또한 그렇다. 검정과 흰색으로 하나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장면들은 무용수들이 산을 굽이굽이 오르며 그들의 끝없는 여정의 노력이 만들었고, 2막의 채색화를 보는 듯한 다채로운 색감과 움직임들은 오히려 단순한 동작들로 구성되어 색감이 일종의 착시 효과처럼 우리의 눈을 화려하게 만든다.


누구나 끝이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를 때 정상보다는 과정을 느끼는 것처럼, 자연을 오랜 시간 동안 바라봤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차진엽의 <몽유도원도>는 조선시대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재현하는 데에만 치우쳐지지 않고, 한 편의 사람 이야기로 새롭게 풀어내었다.

 

산을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필자의 눈에는 물이 보였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물 같은 삶, 비로소 관조하였을 때 보이는 여러 산 봉우리들과 주위의 사람들, 마지막 장면에서 분홍빛 옷을 입은 무용수와 초록빛 의상을 입은 무용수가 어우러져 하나의 꽃을 피우고, 다채로운 색감의 옷을 걸친 여성 무용수가 처음 봇짐을 메고 걸어갔던 길에서 또 다른 길로 나아가는 모습까지 목적지 없이 계속되는 길의 여정, 몽유도원도의 여정을 그려내었다.



사진 출처 : 국립극장

 

 

[이다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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